전 재산 65만 원, 이 남자의 여행법

혹은 치욕 법(Feat 타이항공 라운지)

by 박민우

내 통장 잔고는 웬만한 스포츠 경기보다 박진감이 넘친다. 자이로드롭을 닮았다. 곧, 죽겠군. 바닥에 쾅! 꺄악, 안 돼. 닿을랑, 말랑! 아슬아슬, 다시 솟구친다. 솟구친 액수가 65만 원. 원래는 십만 원대 초반이었다. 씨티은행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땀이 삐질삐질.

여행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볕만 쪼이며 지내야 맞다. 화분에서 고요히, 앙상하게, 어쩔 수 없이 자라는 로즈메리처럼…


“항공 마일리지를 이번에 안 쓰면 날아가야 해서 치앙마이에 갈 건데, 갈래?”

이 말에 나는 심장이 쿵, 모처럼 쿵했다.


“제 항공권은 제가 끊을게요!”

“그래도 되겠어?”

살아났던 심장이, 금세 쪼그라들었다. 아냐, 끊는 김에 내가 끊을게. 그 말을 기대했다. 65만 원에서 다시 십만 원을 써야 한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편도 값이 무려 십만 원이다. 태국의 공휴일이 끼어서 그렇다. 괜히 간다고 했다. 65만 원 남자는 방에서 로즈메리랑 놀았어야지.

동행하는 이 남자는, 내가 모시는(?) 태국 형님이다. 사실 이 형님 덕에 방콕에서의 삶이 가능했다. 키다리 아저씨라고나 할까? 영국계 회사 회계사로 연봉도 1억 가까이 된다. 집이 여러 채 있는데, 그중 안 쓰는 방이 내 것이 됐다. 내가 출연한 세계 테마 기행을 보여준 이후로, 나를 국민 연예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부자로 오해할 수도 있어서, 굳이 출연료까지 밝혔다. 굉장히 실망하더라. 내겐 감지덕지 출연료로, 글을 쓰는 거지가 됐다.

형님이랑 가면 밥값, 방값이 굳는다. 어떻게 이 기회를 놓쳐. 자기 밥값은 자기 카드로 칼같이 나눠 계산하는 요즘 친구들에게, 나는 벌레처럼 보일 것이다.

“라운지 서비스는 동반 1인도 가능해!”


공항에서 스타벅스를 찾다가, 타이항공 라운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본인만 됩니다. 비회원은 1300밧(47,00원)입니다.”


또 식은땀이 났다. 형님, 제가 안 될 거라고 했잖아요. 식은땀은 왜 또 나오고 지랄이야.

“아뇨 저는 됐어요. 라운지에서 식사하세요. 원래 아침 안 먹어요.”

“아냐, 나도 배 안 고파.”

“아니, 그러지 마시라고요. 그냥 드세요, 제발, 좀!”

“1300밧 있어?”

“…”


아, 진짜 안 들어가도 된다고 했잖아요, 형님은 지갑을 꺼냈다.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거지 한 마리는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1300밧을 꺼냈다. 나는 억울하다. 16시간 공복, 간헐적 단식을 매일 실천 중이다. 라운지는 빈자리가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그냥 들어와도 되는 vip들이다. 입장료를 낸 사람은 나뿐이다. 아무것도 안 먹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신문 읽을 소파가 필요할 뿐인 사람들이다. 부자들은 공복을 즐기며, 흘러나오는 빵 냄새에 인상을 썼다.

1300밧 있어?


그 말이 맴돌았다. 내 지갑에는 2300밧이 있다. 있어도, 있다고 말해선 안 되는 2300밧이다. 치욕이란 감정이 밀려오고 있다. 먹는 거에 집중하면, 5만 원 정도의 슬픔으로 끝난다. 빵 세 접시, 죽 한 그릇, 커피 한 잔, 주스 한 잔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아몬드 크루아상을 씹는데, 당장의 치욕이 희미해질 정도로 맛있다. 나는 기형적인 존재다. 마흔일곱에 누군가의 돈으로 아몬드 크루아상을 씹고 있다. 원래 저도 아침 안 먹어요. 자존심을 챙길 문장은 그것뿐이다. 나의 굴욕은 구체적이다. 존재와 통장 잔고가 일치한다. 미래를 대비하며 사는 이들과 아예 다른 인종이다. 내 발버둥은, 손에 잡히는 실체다. 모든 걸 걸고 하루를 산다. 네가 맞아. 나는 나의 어깨를 주무른다. 천천히, 천천히! 치욕도, 빵도 천천히. 빨리 털어내려는 욕심이 화를 부른다. 아주, 잠깐의 통증일 뿐이다.

아몬드 크루아상을 한 개 더 집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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