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잘 되는 한국 식당을 가 봤더니
태국에서 자리 잡은 한국 맛집은 본촌 치킨이에요. 본촌치킨? 들어보신 적 있나요? 대부분은 잘 모르실 거예요. 해외에서 오히려 더 유명한 프랜차이즈죠. 위키백과를 뒤져 봤더니 2002년 부산에서 1호점을 열었더라고요. 특이하게 미국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요. 뉴저지부터 시작해서 캘리포니아, 뉴욕 등 미국 전역에서 장사를 하네요. 본촌 치킨이 방콕에 들어왔어요. 전 망할 줄 알았어요. 내로라하는 한국 치킨들이 망하거나, 답보 상태라서요. 저에겐 솔직히 '듣보잡' 치킨이었으니까요. 줄을 서더라고요. 왜 잘 되는 거지? 궁금해서 줄을 서서 들어갔죠. 치킨집에서 순두부를 파네요. 교자는 또 뭐고, 타코야끼는 뭐예요? 왜 일본 음식이 있는 걸까요? 사장한테 좀 따질까요? 궁금해서 미국 본촌 치킨은 뭘 파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요. 맨해튼에서 한 번 먹기는 했는데, 그땐 치킨만 먹었으니까요. 미국 본촌 치킨은 잡채, 비빔밥에 새우 딤섬까지 파네요.
눈치채셨나요?
치킨집에선 이것만 팔아야 한다.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현지인 눈높이에서 메뉴를 정하네요. 손님은 한국 치킨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맛있는 게 중요한 거죠. 손님 입장에서 반가운 메뉴면 되는 거예요. 다양한 메뉴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네요. 십 년 넘게 방콕에 머물면서 느낀 태국 사람들의 취향
첫째, 양보다는 다양성
같은 쌀국수여도 베트남과 태국이 많이 달라요. 베트남은 한국 사람처럼 우직하게 한 그릇이면 돼요. 육수가 깊고, 고기만 가득 올라가면 되죠. 태국은 안 그래요. 어묵, 미트볼, 생선 껍질 튀김, 바삭한 과자, 고기, 내장 등이 올라가 줘야 해요. 한 그릇 안에서도 여러 맛이 공존해야 해요. 지루함을 못 견디는 거죠. 맛도 맛이지만, 식감까지 욕심을 내요. 그래서 꼭 바삭한 뭔가를 올려 줘요. 식당의 메뉴가 다양하면 훨씬 유리해요. 여러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양은 딱히 안 많아도 돼요. 각각의 메뉴가 확실히 맛만 있다면요. 설렁탕, 삼계탕, 냉면 집 등은 태국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둘째, 차가운 음식 노, 뜨거운 음식 예스
더운 나라니까 냉면 같은 차가운 음식이 많을 것 같죠? 후식은 차가운 걸 선호해요. 그런데 식사류는 차가운 음식이 거의 없어요. 카오채라고 찬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있기는 한데,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MK 수끼는 태국에서도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죠. 메뉴판을 열면 한국 사람은 당황부터 할 거예요. 어묵이 이리 종류가 많을 필요가 있나 싶죠. 네모난 거, 물고기 모양, 동그란 거, 국수 모양 등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어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 고기, 각종 채소, 생선들이 그림책 같은 메뉴판에 빼곡해요.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다. 다양한 걸 한꺼번에 먹을 수 있다. 이런 매력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았죠.
셋째, 비싸도 돼, 멀어도 돼. 대신 특별해야 해
태국 1인당 국민 소득이 7천 달러(2018년 기준) 좀 넘어요. 우리나라가 3만 달러가 조금 넘죠(2020년 기준). 우리나라가 네 배 정도 더 벌어요. After you라는 유명한 빙수집이 있어요. 우리나라 설빙 포지션이죠. 웬만한 빙수는 다 만 원이 넘어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3만 원 이상인 거죠. 손님으로 바글바글해요. 우리나라 설빙도 방콕에 들어왔어요. 파타야에 있던 건 망했는데, 방콕 설빙은 여전히 잘 돼요. 멜론 딸기 치즈 빙수가 무려 420밧. 우리나라 돈으로 15,900원. 이걸 기꺼이 사 먹는다니까요. 요즘 스페셜티 커피가 슬슬 늘어나고 있어요. 한 잔에 만 원 하는 드립 커피도 잘만 팔리더라고요.
넷째, 사장님들이 째째해도 괜찮아요
비싸도, 맛이 없어도 일단 먹어요. 네, 다시 안 오지만요. 장사하기 편하지만, 긴장감을 늦추면 서서히 망하기도 쉽죠. 그리고 사소한 거에 감동 잘해요. 이 나라가 공짜 문화가 박해요. 우리는 잘 퍼주잖아요. 마트에 가도 1+1 행사가 흔하잖아요. 이 나라는 3+1, 4+1 행사가 훨씬 더 흔해요. 웬만해선 하나를 거저 안 주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나요? 그래서 오히려 한국식으로 잘 퍼주는 장사가 먹힐 거예요. 사장 인심 한 번 좋다는 이야기 듣기가 쉽죠. 태국에는 없는 손님 얼굴 기억하기, 이름 기억하기, 이름 기억하고 뭐 하나 더 주기 등등이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올 거예요.
다섯째, 아기 같은 천진한 구석이 있음
다 큰 어른들도 인형을 좋아해요. 귀신 얘기에 오십 줄의 덩치 남자가 벌벌 떠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네, 그런 나라가 태국입니다. 차에도 주렁주렁 인형을 달고 다녀요. 흰머리 가득한 '거의 할아버지가'가요. 캐릭터, 인형, 재밌는 인테리어를 유난히 좋아해요. 우리 기준으로 조금 유치해도 괜찮아요. 태국 사람들은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인테리어를 싸구려로 하는 건 또 안 돼요. 태국 인테리어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디자인은 한국에서도 많이들 배워 가더군요. 비싼 곳은 확실히 비싼 느낌을 줘야 해요. 이 정도면 먹히겠지? 대충 생각하시면 큰 코 다칩니다. 제가 전문 사업가도 아니라서, 장사를 하다 보면 울화가 확 치미는 정부 규제 같은 건 몰라요. 돈 있는 소비자가 많다는 거, 그들은 지갑을 언제라도 연다는 거, 고급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거. 그것만은 확실하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손가락 운동이 뇌에 그렇게 좋다네요. 저는 이렇게 매일 자판을 두들기면서 노후 대비를 합니다. 치매야 물렀거라. 훠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