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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달토끼 Dec 14. 2020

출산드라 구피

마이펫의 이중생활


<구피를 분양받은 첫날 모습>


 “아이고, 얘네 또 새끼 낳았어. 이번엔 10마리야.”

 친정에 있는 물고기 구피들이 또 새끼를 잔뜩 낳았다. 구피는 새끼를 매우 자주 낳는데 그 속도가 햄스터 급이다. 그때마다 기쁨 반, 걱정 반. 엄마, 아빠는 새끼를 낳을 때마다,

 “너희 집으로 이제 데려가지 그래.”라고 말씀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슬쩍 숨는다.


 3년 전 자수 공방에 프랑스 자수를 배우러 다녔다. 활동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딱 맞는 취미라 공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자연스럽게 친해진 자수 선생님이 유럽여행을 가면서 키우던 구피들을 우리 집에 잠시 부탁하셨었는데, 구피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구피가 돌아다니며 그 조그만 입으로 먹이를 먹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선생님 역시 그 구피들을 공방 회원으로부터 분양받으셨다고 했다.


<새끼를 낳고 있는 어미 구피>


 우리 집에 구피들을 데려오기 전에는 참 설렜다. 어항을 미리 마련하고 마트에서 구피들이 숨을 수 있는 모조 물풀도 사왔다. 구피들은 새 어항이 맘에 들었는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새끼 12마리를 낳았다. (구피는 난태생으로 수정란이 모체의 밖으로 나와 산란되지 않고, 모체 안에서 부화하여 나온다.) 그 사실을 자수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그래? 어머, 너 네 집터가 좋은가 봐. 구피 돌봐준 보답으로 그 새끼들은 가져도 돼.”라고 하셨다. 구피가 새끼를 참 자주 낳는 동물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때는 길조라며 신나서 펄쩍 뛰었다. 결혼 초였고 안 그래도 동물을 기르고 싶었는데 참 잘됐다며 좋아했다. 처음에는 다른 일을 해도 온갖 신경이 어항을 향해 있었다. 먹이를 줄 때 혹시나 새끼 구피들이 못 삼킬까 봐 손으로 갈아서 주는 정성도 들였다. 우리가 가까이 가면 구피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 이제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를 보고 반기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달라고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았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도 달려들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어항 앞에 아예 의자를 두 개 갖다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곤 했다. 구피가 얼마나 자랐는지 매일 체크도 하고 물도 자주 갈아 주었다. 어렸을 때도 물고기들을 집에서 기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는 거의 엄마가 관리하셨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많아,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기초지식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물고기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적이 있었지! 어느 날은 초밥을 사다가 먹는데 괜히 구피의 친구를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먹은 적도 있다.

 “오빠(남편을 아직 오빠라고 부른다), 구피가 쳐다보는 것 같아.”

 “너도 그래? 눈 마주치고는 미안해서 못 먹겠어. 뒤 돌아 앉아서 먹자.”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의 모습은 마치 위선자 같았다. 그렇게 아낀다던 구피들을 친정으로 보내다니... 그렇게 된 나름의 핑계가 있긴 하다. 일단 구피가 가끔 어항 밖으로 뛰어내려 죽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마음도 아프고 둘 다 겁이 많아 처리하기가 버거웠다. 그런 와중에 남편과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울 일이 생겼고, 그 핑계 삼아 친정에 갖다 줬다. 처음엔 며칠만 맡기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보다 엄마가 더 잘 돌봐줄 것 같았다. 동생도 동물을 좋아해서 어항 구경을 즐겼다. 괜히 구피들도 친정집에 가니 더 생기 있어 보였다.

 구피들은 그렇게 친정에 이사 간 후, 새끼를 더 열심히 낳았다. 어머, ‘너네도 친정이 더 편하지? 그렇지?’ 틈만 나면 새끼를 낳으니 새끼 구피 건지는 전용 국자와 새끼 구피 어항이 따로 생겼다. 안 그러면 성어들이 치어들을 먹어 치우니 분리해주어야 한다. 몇 개월 뒤 치어 어항에 마릿수가 너무 늘어 포화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그 어항의 사진을 찍어서 핸드폰 터치펜으로 한 마리씩 점찍어 체크를 하며 세보았다. 하지만 100마리가 넘고부터는 힘들어서 못 세었다. 101마리 강아지도 아니고 101마리 구피? 아빠는 수컷과 암컷을 분리하자며 고민을 많이 하셨다. 결국 엄마는 지인 몇 분에게 치어를 몇 마리씩 나누어주고, 아빠는 직장에 데려가서 원하는 만큼씩 분양시키셨다. 나도 친구들에게 분양하려 했으나 이미 그들은 구피가 새끼를 많이 낳는다는 소문을 들은 후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 후 친정에 매번 오는 정수기 세척 기사님도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15마리 데려가셨다. 그리고 성어들만 남겼다.


 친정으로 구피들이 이사 가고 처음에는 엄마가 먹이 주는 당번이셨다. 그 후엔 동물을 사랑하는 동생이 본인이 주겠다고 나서서 먹이 당번을 한동안 했었다. 매일 어항 상태를 꼼꼼히 체크 하고 말동무도 되어 주는 등 좋은 ‘구피 아빠’였다. 하지만 취업 후에는 바빠져 아빠가 그 역할을 대신 맡으셨다. (이상하지만 물을 갈아주며 구피 똥 치우는 당번은 안 바뀐다. 계속 엄마의 임무이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구피들이 하나, 둘 죽기 시작했다. 물을 갈아주고 며칠이 안되 물 색깔도 뿌옇게 변했다. 계속 물을 갈아주어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모든 식구가 ‘구피들이 병이 걸린 게 틀림없어. 오래 살았지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구피 먹이를 주는 모습을 봤더니, 구피에 대한 사랑이 과해 먹이를 너무 많이 주고 계셨다. ‘아, 먹이가 남아서 물이 썩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에 적당한 먹이 양을 알려드렸더니 그 후엔 물이 깨끗하게 유지되었고, 더는 구피들이 죽어 나가지 않았다.


 앞으로 구피 키울 계획이 있는 분들을 위해 몇 년간 습득한 지식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1. 구피의 평균 수명은 2년에서 5년이라고 한다. 작은 몸집에 비해 오래 사는 편이다. 물 갈아주는 것 외에는 해줄 것이 없어서 물고기를 키울 계획이라면 구피를 길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새끼를 많이 낳는다는 것과 가끔 물 밖으로 뛰어내려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2. 배가 불룩해지고 허리가 굽으며 다른 구피와 다른 행동을 보이면 이틀 내에 새끼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한다.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암컷 구피가 새끼 낳을 것 같은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3. 큰 구피들은 치어들을 먹어치울 때가 있어서 어항을 분리해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치어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찾아보니까 본능에 충실한 개체이기 때문에 입에 들어가는 크기는 다 먹는다는 얘기도 있고, 눈이 나빠서 새끼를 먹이로 착각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가끔 먹어주는 것이 개체 수 유지에 도움이 될 것도 같다.)


4. 먹이는 하루에 새끼손톱 반 만큼만 준다. (너무 많이 주면 물이 금방 썩어 구피들이 죽을 수 있다.)


5.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구피는 물 밖으로 뛰어내린다. 어항의 개체 수가 너무 많거나 새로 물을 갈아줄 때이므로, 물을 가득 채워 주지는 않는 것이 좋다.


 한동안 새끼를 안 낳더니 구피들이 며칠 전부터 새끼를 10마리씩 매일 낳아서 다시 어항 하나를 꺼내 분리를 시켰다. 요즘 태어난 치어들도 언젠가 다른 집으로 분양되겠지? 가끔 그 어항을 보고 있으면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너네 조상님들은 프랑스 자수 공방 회원님 – 공방 선생님 – 우리 집을 거쳐 여기 우리 친정까지 왔단다. 먼저 태어난 형제들은 60집쯤으로 나뉘어 분양되어 살고 있지.’ 친정에 갈 때마다 구피들을 보는데 언젠가 구피들이 모두 분양되거나 죽게 되면 허전할 것 같다. 이 마음을 아시면 엄마는 ‘그럼 다시 가져가서 키우지!’하고 말씀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말은 안 했지만... ‘구피들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되 새끼는 둘만 낳아 잘 기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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