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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달토끼 Nov 18. 2020

올케는 읽지 마시오.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없는 천사


 

<동생의 신부감을 찾습니다.>


 오늘도 내 동생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뽂았다. 아무리 열심히 꾸며도 그게 그거 같은데, 계속 파마를 한다. 옷도 거기서 거기, 머리 스타일도 그게 그거 같다. 난 이 모든 말을 해주기는 어려워서,

"헤이, 마이콜(아기공룡 둘리의 뽀글머리 친구 마이콜)!" 하고 놀려주는걸로 대신하고 말았다.


 다섯 살배기 시절, 위층에 뚱뚱하고 힘이 센 같은 유치원 친구가 살았는데 난 맨날 그 아이한테 맞고 살았다. 나도 한 대 때리고 싶어도 그 애한테는 오빠가 있어서 무서워 포기하고, 울며 부모님께 이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아이는 항상 오빠랑 손잡고 다녔다. 그 남매가 깔깔대고 웃고 있는 장면을 보면 너무도 부러웠다. '나도 친구 같은 오빠가 있었으면...'. 나는 어느 날부터 기도를 매일 했다. '저에게 예쁜 동생을 선물해 주세요.'라고. 우리 엄마는 몸이 약하고 바쁘셔서 둘째는 전혀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하도 심심하니까 동생을 달라고 기도해서인가? 드디어 동생이 생겼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이루어진 건 처음이라 너무 놀라웠다. 그건 마치 나에게 기적과 다름없었다. 그때 신앙심이란 게 처음 생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느님은 진짜 계셨어! 내 기도를 듣고 계셨어, 엄마!"


 동생을 기다리던 9개월이 너무 설렜다. 마지막 달은 엄마가 출근도 안 하시고 같이 놀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기적이라며 감사해왔던 날도 끝이 났다.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일주일 동안 외할머니댁에 머물러야 했는데, 엄마랑 처음 떨어져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한 번도 못 본 동생이 밉게 느껴졌다. 나와 엄마를 갈라놓다니... 나는 집에서 할머니 댁으로 갈 때 아무도 몰래 엄마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물건 하나를 갖고 갔다. 그 건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오래된 엄마 베갯잇이었다. 나는 늘 엄마와 잘 때 베개에 달린 레이스를 만지며 잠들곤 했다. 잘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 꼭 쥐고 울며 잤던 기억이 난다.


 동생을 처음 보러 집에 내려온 날, 너무 화가 났다. 엄마, 아빠 침대 옆에 놓인 내 침대에 동생이 누워있었다. 엄마는 내가 동생과 같이 자면 잠을 못 자고 키 안 클 걱정에 작은 방에 나를 위해 예쁜 새 침대를 사놓으셨다. 예쁘고 맘에 들었지만, 동생이 누워있는 그 침대가 더 좋아 보였다. 며칠 밤이나 밤에 몰래 안방에 들어가 동생 옆에 누워있다가 들켜서 내쫓기길 반복했다. 엄마, 아빠랑 같이 누워있는 동생에게 질투가 나기 시작했던 순간이다. 그래도 낮에는 예뻤다.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보고 싶어서 항상 엄마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얼굴도 쭈글 거리고 내 인형보다 안 예뻤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살도 오르고 귀여워졌다. 내가 모든 걸 해보고 싶어서 우유 먹이는 법도 배우고, 기저귀 가는 법도 금방 배웠다. 유치원 친구들에게도 매일 동생 자랑을 해댔다. 그땐 아마 동생을 살아있는 인형처럼 생각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걷기 시작하고는 많이 싸웠다. 그 조그마한 아이와의 대결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동생에게 화가 엄청 났었던 기억이 몇 번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다. 한 번은 똥 냄새가 진동하길래 킁킁거리며 코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동생이 기저귀를 벗어던지고 안방 바닥에 똥칠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조용했던 동생이 일을 벌였다. 한 손으로는 침대를 붙잡고 발로 노랗고 질펀한 똥을 굴리면서 촉감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 너 뭐해!" 라고 소리를 질렀고 동생은

 "우애애앵" 울기 시작했다. 동생이 울기 시작하면 앰뷸런스가 지나가듯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날 동생의 똥 냄새는 잘 사라지지 않아서 하루종일 맡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발로 침대 위에 올라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본 장면 그대로 생생하다. 지금도 동생을 놀릴 때마다 나오는 얘기이다. 또 한번은 동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때린 날에 대한 기억이다. 9살 때였는데, 그러니까 동생은 3살 때였다. 여름방학 숙제로 EBS 방학생활을 열심히 보며 채워놨는데, 그 위에 색연필로 그림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하는 건 다 따라 했으니, 그 책에 자기도 뭔가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동생은 조용하다 싶으면 꼭 이렇게 일을 벌였다. 그 장면을 보고는 도저히 내 화를 주체할 수 없었고 말도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동생 허벅지를 가격했다. 하, 손을 떼자마자부터 나는 후회를 했다. 동생 허벅지 위에 빨간 단풍잎 모양 그림이 박혔다. 동생은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엄마한테 난 엄청 혼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여린 아기 살이라 흐려지기는커녕 점점 더 빨갛게 부어올랐고, 그 후로는 절대 동생을 때릴 수 없었다. 그 작은 몸에 무얼 한 거지 난, 며칠 동안이나 너무 미안했고 내가 싫었다.


 남들에게 난 내가 내 동생 다 키웠다고 거들먹거리며 말하고 다니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보고 착하다 그러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축구선수 박주호 딸을 보면서 '저렇게 동생들에게 잘하는 아이도 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동생이 유치원에 다닐 때, 유치원 선생님이 엄마를 소환하셨다. 동생이 한구석에서 턱을 괴고 있길래 선생님이 동생에게 왜 그러고 있나 물어보시니,

"누나가 너무 무서워요." 그랬단다.

그때는 동생이 예쁘기도 했지만 나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조금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고 엄격하게 굴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이니,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돼서 그랬나 싶다. 괜히 한글 가르치겠다고 일부러 나서서 동생에게 숙제를 많이 내주고, 숙제 안 해놓으면 혼내주고 그랬다. ‘ㄱ’ 가르치고 ‘ㄴ’ 가르치면 ‘ㄱ’을 잊어버리니, 그걸 참을만한 사람은 박주호 딸 나은이 말고 누가 있을까? 솔직히 비밀 하나를 더 얘기하면, 동생이 갓난 아기였을 때 등에 그 애를 업고 무리하게 뛰다가 바닥에 놓친 적이 있다. 그 일 때문에 한글을 못 배우는 바보가 되었나 싶어서 더 다그쳤던 것도 같다. 내가 벌인 상황이니, 어떻게든 책임져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보다 더 귀엽고 예쁜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강하게 작용해서 차갑게 대한 건 아닐까? 그런데도 동생은 나를 너무 좋아하고 따랐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동생을 야단치다가 포기하게 되면 나에게 부탁하실 때도 많았다.

"네가 동생에게 얘기해봐. 누나 말은 잘 듣잖아."

 동생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다니고 싶어 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워터파크 갈 때도, 시내에 나갈 때도 따라간다고 졸랐다. 귀찮을 때도 많아서 나는 도망 다녔고, 동생은 끝까지 따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동생을 계속 밀어냈고, 동생은 그래도 좋다며 따랐다. 그런 동생의 노력이 있어서 다른 집과 비교했을 때 더 우리 남매가 친해졌을 수 도 있다. 비밀 얘기도 엄마보다 나한테 먼저 했고, 뭐 하나를 살 때도 엄마보다 내 조언을 잘 들었다. 성인이 된 후도 싸울 때를 기억해 보면 항상 내가 짜증을 내서 동생이 토라진 것뿐이지, 동생이 먼저 못되게 군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은 맛있는 건 꼭 두 개를 사서 날 주곤 했는데 동생이 가장 좋아하던 닭꼬치도 그랬다. 꼭 내 것까지 두 개씩 사 와서, 하나는 미리 동생이 먹고 남은 하나는 냉장고에 두었다가 나를 주었다. 밤늦게 학원 다녀온 후 내 몫으로 남긴 닭꼬치를 봤을 때마다 정말 감동했었다. 그런데 남겨준 닭꼬치가 항상 완전한 하나가 아니었다. 엄마한테 들어본 바로는 동생이 나를 기다리다가 너무 먹고 싶어서 "한 입만 더 먹을까?" 하고 한 입 먹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또 조금 베어먹고 넣어놓기를 반복하다가 남은 것이란다. 동생은 마르고 힘이 없어서 누굴 나 대신 때려주지는 못했지만, 내 적군이 나타난 날이면 항상 같이 욕을 해주며 내 편이 되어주었다. 심심하다고 하면 알쓸신잡의 대가인 동생이 세상 신기한 얘기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내가 슬프거나 힘들 때는 본인의 목숨줄 같은 용돈을 모아서 필요한 선물도 잘 해주었다. 성인이 되어 첫 월급을 받았을 땐 수습 때라 많지도 않았을 텐데, 혼나면서 야근까지 하며 번 돈을 나와 남편 용돈까지 챙겨 나눠줬다.


<동생이 준 첫 용돈>

 하느님이 내가 빌어서 주신 첫 선물이라 그런지 동생은 나에게 그렇게 한결같이 천사같이 대해줬다. 동생은 사랑을 나눠 주는 법을 미리 알고 태어난 게 분명하다. 한글만 내가 먼저 배웠지, 동생보다 뒤늦게 알게 되는 게 참 많다고 느낀다. 동생 세례명이 대천사 미카엘인데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어제 엄마, 아빠가 나이 꽉 차가는 동생 결혼 걱정을 벌써 하시길래, 같이 고민해봤는데 솔직히 동생이 결혼을 하면, 누구랑 해도 아까울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이왕이면 이 근처에 살면서 평생 자주 보고 지냈으면 좋겠다. 어제 엄마 말 듣고부터 동생이 갑자기 멀리 장가갈까 봐 불안하다. 이제부터라도 나도 천사같이 동생에게 잘해주어야겠다. 아, 집 근처 사는 예쁘고, 착하고, 건강한 아가씨를 좀 수소문해보며 보답을 해야겠다. 동생이 그런 아가씨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신나게 살기를 바라니까. 음, 이렇게 우애 좋은 남매라는 것을 알게 되면 미래의 올케가 싫어할까?

"어디 예쁘고 착한 우리 동생 신부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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