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특별해질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골몰한 것은 스스로를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부 나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잘하고, 못하는 것들이 고만고만하다 생각했다. 나의 무난함은 대개 인간관계 안에서 두루 잘 지내는 일엔 탁월했지만, 어드멘가 멈춰 서서 돌아보면 거기엔 내가 없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위해 순간마다 자국을 남겼다 생각했는데, '자기소개서'라는 다섯 글자 앞에서야 조약돌이 아닌 빵조각을 떨어뜨렸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길을 잃었다고 주저앉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과거를 더듬어야 했다. 그래야 최소한의 시행착오로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유사하다 여겼던 건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운 좋게 나와 비슷한 친구들에 둘러싸여 그 간극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 보자마자 첫눈에 사랑에 빠진 영화 <헤어질 결심>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이거 무조건 천만 관객 달성한다. 너무 좋다. 또 봐야지.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을 보러 영화관을 다섯 번이나 찾았다. 그중 두 번은, 올해 꼭! 봐야 하는 영화니 함께 보자고 아직 관람하지 않은 친구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내게 손이 잡혀 질질 끌려들어 와 영화를 보곤, 재밌긴 한데 네가 왜 이만큼씩이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나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나는 좋아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나의 장점은 '사랑하는 것'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장점으로 바꾸면 쉬워진다. 사랑하면 된다. 좋아하면 그 자체로 잘하게 된다.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
저는 봉준호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을 정말 존경해요. <기생충>을 보면서 이 시퀀스의 리듬은 장인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고, <헤어질 결심>도 소름 끼치게 좋았어요.
한 번은 봉준호 감독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결혼식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자기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려고 노력했던 마음이 너무 느껴졌어요. 제가 삼각김밥을 만들든 칼럼을 쓰든 영화를 만들든 거기엔 제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건 누구에게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만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에요.
영화라는 상을 잘 차려서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표인 것 같아요. <스펙트럼〉이라는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돈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지금 마음이 편안해진 것도 있어요. 어릴 때는 '나를 증명해야겠어!'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람이 뭐 하나에도 잘 휘둘리고 힘들어져요. <벌새〉가 운 좋게 잘 되면 서 그런 조바심이 떨어져 나갔어요. 사실 〈벌새>를 준비하면서 바닥도 많이 쳤거든요. 마음 졸이고 애가 탄다고 꼭 결과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스펙트럼>을 준비할 때는 관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선사할 것인가, 거기에 집중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어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후에도 이 마음을 잘 지키고 싶어요.
<창작형 인간의 하루> 인터뷰집, 김보라 감독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