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지 않는 것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혼자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휴대폰을 바꾸던 날, '와, 어른 진-짜 좋다.'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아스팔트 바닥에 일부러 떨어트린다거나, 손에 있던 휴대폰이 미끄러져 물이 찰랑거리는 세면대 혹은 변기에 빠지는 연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니. 휴대폰 바꾸기라는 연출 의도가 너무 뻔해 '어쩔 수 없었다, 실수였다'라는 혼신의 연기까지 더해야 하는 때가 대부분이었던 미성년자 시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 동안 고장 난 휴대폰을 사용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 내게 연출, 각본, 주연까지 모두 맡은 일인극이 없이도 휴대폰을 턱턱 바꿀 수 있는 어른의 자유는 매우 달콤한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통제와 억압의 순간에 가장 분노한다. 거기에 권위가 더해진다면 그 분노는 배가된다. 자신과의 약속과 스스로 정한 규칙이 많은 내게, 자유를 침해받는다는 건 나를 향한 불신과도 같다. 가만히 둬도 엇나가지 않고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텐데 나를 못 믿는다는 느낌은 노여움을 낳는다. 그러다 어학이라는 목적 하나만 가지고 떠난 영국에서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영국에는 나를 향한 판단의 시선이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자신을 '판단받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걸 느꼈다. 같은 청바지에 몇 장 안 되는 티셔츠를 매일 돌려 입어도, 염색을 못해 투톤이 되어버린 머리를 산발하고 다녀도, 영어'만' 공부하러 한국에서부터 영국까지 왔다고 해도, 우리 집안 사정이 좋은지, 나쁜지, 둘 다 아니라면 어떠한지 묻지 않았다. 물론 영어가 서툰 조그만 아시안 여자애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있었겠지마는, 아무도 그걸 내게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머릿속 깊숙하게 다가온다. 이를 마음에 새기고 나부터 자기 결정권에 대한 요소는 화두로 삼지 않을 것. 판단받지 않을 자유를 위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내가 원하는 자유의 정의대로 세상을 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