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omato is 40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white Nov 28. 2023

성공의 맛 게이샤 커피와 토마토 바질 샌드위치

성공, 성장, 성과의 관계

승진이 빨랐다. 들어가는 회사마다 인정받았다. 높은 연봉도 받았다. 나름 행복했고 후회 없는 30대였다. 주위에서 성공한 젊은 사업가, 대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위아래로 똑똑한 사람이 모였다.   

  

30대 만난 사람들은 일로 얽힌 관계였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돈, 시장, 투자 이야기였다. 이직을 앞둔 직원은 얼마나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지, 스타트업 대표는 회사 가치와 투자이야기를 했다. 동료와 밥을 먹으면 아파트, 주식, 코인이야기를 한다. 꼭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3명 이상 모이며 누구나 한 마디씩 거들며 흥미를 잃지 않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주말에 본 소설책, 단풍이 물든 가을, 어렸을 적 꿈을 말하는 것은 암묵적 금기다.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 또는 비전문가처럼 보이기 딱 좋은 주제였다. 가끔 회사에서 꿈을 이야기하면  ‘언젠가 자막 없이 영화 봐야지’라는 결심처럼 기약 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보다 더 성공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복에 겨워 그러는 듯이 쳐다보거나 농담으로 치부했다.



나에겐 ‘성과’를 내는 것과 ‘성공’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이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렇게 일한 지 10년. 집에 돌아오면 풀지 못한 숙제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객관식이면 대충 찍어 넘겼을 것인데 이건 주관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내가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동안 다른 사람을 위한 집을 지었지만 내 마음의 집을 짓는데 실패했다. 마음이 제대로 눕지 못했다. 밤마다 어둠 속에서 내 집에 내가 들어가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앞에서 서성였다. 어느 날 합정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 표지에 적힌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 인간의 품격, 2015, 부키(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에서 오랜만에 카페라테와 토마토바질 샌드위치를 시켰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동시에 주문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책을 볼 예정이라 뜻이었다.



소명을 끌어안는 사람은 자기실현을 위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톱니바퀴

책에 의하면 인간은 두 개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성취, 건설, 생산하기를 바라는 나와, 자신의 나약함을 인지하고 겸손하게 평화, 소명, 선함을 찾는 내가 있다. 1950년까지만 해도 인간이란 '뒤틀린 목재'와 같아서 성찰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의 지향점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달과 능력주의, 각종 미디어 등장으로 경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나는 대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 나는 돈을 번다'라는 삼단 논법으로 귀결된 메시지가 뒤덮인 세상을 본다. 아무도 겸손, 희생, 덕, 선함, 인내, 만족을 말하지 않는다.


인생 절반은 남의 기준에 맞춰 성공을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내면의 성공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사회적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 믿었다. 성공 척도는 돈과 명예다. 그런데 이것은 끝이 없는 목표였다. 돈을 벌면 벌수록 돈을 쓴다. 아니면 돈이 돈을 벌게 만든다. 이것은 획득과 소비가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된다. 수단이 목표가 되니 속도가 멈추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톱니바퀴는 점점 커지고 사람들은 이것을 명예, 영향력이라 부르는 것 같았다.


책 영어 제목은 road to character, 인격으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투쟁의 길이다. 이 길에 들어서야만 지식이 아닌 지혜를 얻고, 옳은 것에 대한 내적 성취는 진짜 자존감을 준다.

 

성공의 맛, 게이샤 커피

게이샤 커피를 선물 받았다. 부엌 천장에 있는 커피 도구를 3개월 만에 꺼냈다. 커피콩을 가는 칼리타 핸드밀, 무인양품 드리퍼, 여과지와 주전자. 그리고 먹다 남은 크림치즈와 선드라이 토마토를 찾아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과테말라 엘 인헤르또 게이샤 guatemala el injerto geisha
도구를 가지고 힘을 쓰는 것, 성공


성공成功은 사전적 의미로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힘 력(力)과 장인 공(工)이 합쳐진 단어다. 장인이 힘을 들여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 성공이다.


책에서 만난 글귀가 생각난다.

“이성은 일을 할수록 거만해지기 쉽고, 육체는 일을 할수록 겸손해지기 쉽다.”


성공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힘을 들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인정과 돈, 평판은 성과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현실을 마주 볼 수 있는 태도가 성장이다.


이 커피에서는 부드러운 오렌지 향이 났다

 

 바질페스토와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 샌드위치와 커피


게이샤 원두를 핸드밀에 넣고 톱니바퀴를 돌려 가루로 만든다. 물을 끓여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어버린다.



나는 드디어 오늘, 성공했다.



영상에는 <인간의 품격> 책 리뷰와 베이글 샌드위치 만드는 방법을 담았습니다.


https://youtu.be/_nyax7n8UcE?si=RZKVFPZ-8GZP0qAo


매거진의 이전글 몸에 좋은 토마토 매일 먹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