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방울토마토를 먹다
'이걸 그 가격에 산다고?'
동료 두 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차마 말리지 못하고 매장 밖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16알 방울토마토 가격이 2,160엔이라니.
일본 출장을 갔다. 긴자 식스 백화점 지하 1층에는 방울토마토 전문점 오스믹 퍼스트(OSMIC FIRST)가 있다. 제일 저렴한 것은 150g, 16알 2,160엔(오늘 기준으로 한화 19,720원)이고 비싼 건 10만 원이다. 매장 손님은 나 밖에 없었고, 나는 방울토마토를 카드로 긁었다. 숙소로 돌아와 3명이서 5알씩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서로 말이 없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속으로 '이걸 그 가격에 사는 일은 또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방울토마토는 '맛있었다'. 토마토 당도가 보통 6~7인데 오스믹 퍼스트 제품은 11이라고 한다. 11이면 당도가 딸기와 같다. 그러면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 달콤한 걸 먹고 싶으면 딸기 만 원어치 사 먹으면 될 텐데. 굳이.
사람은 굳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지불할 때가 있다. 상품 가격은 유용성과 원가에 비례하지 않는다. 상품을 판매하고 사는 것은 복잡하고 치밀한 심리게임이다.
여기, 상품 가격을 10배 올릴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개별화다.
상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분리해 놓는 것이다. 다이슨 청소기를 사면 헤드, 모터 달린 본체, 액세서리, 거치대, 충전기가 해체되어 있다. 비싼 화장품도 본품, 리필, 스펀지, 파우치, 사용설명서가 각각 포장되어 있다. 개별화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제품을 완전하게 접하는 순간을 지연시킨다.
열쇠공이 고장 난 문을 30분 넘게 낑낑거리며 고치면 '수고했다'라고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5분 만에 뚝딱 고치면 오히려 '별거'아닌 일이 되어 불평을 듣는다고 한다. 개별화는 상품에 추가로 시간과 노동력을 더하게 만든다.
또 다른 이점은 구성요소를 주목하게 만든다. 이것은 비싼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이 청소기 하나에 이렇게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구나.' '이거와 이거를 결합하는데 이런 방법을 적용했구나.' 시각과 촉각으로 작게 나눠진 요소들이 소비자 손을 통해 하나의 상품이 된다. 조립하면서 우리는 이런 착각에 빠진다. '물건은 분명 하나 샀는데 여러 개를 산 느낌이다.' 그렇다면 방울토마토는 어떻게 개별화할 수 있을까? 하나씩 포장하면 된다.
두 번째, 이야기 붙이기다.
애인과 헤어져 울고 있는 여동생을 위해 만들었다는 '마스카라'. 본드를 개발하려다 실수로 태어난 '포스트잇'. 감자튀김이 두껍다며 불평하는 손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 만든 얇은 감자칩. 뉴욕 13번지 3번가 모퉁이 약국에서 시작했다는 키엘 화장품.
제품 탄생 계기가 담긴 한 줄 이야기는 제품 신뢰도를 급격히 높인다. 이야기는 진위여부를 떠나 제품을 현실감 있게, 진정성 있게 느끼게 한다. 또 흥미로운 이야기는 기억하기도 쉬워 널리 퍼진다. 이야기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그렇다면 방울토마토에는 어떤 이야기를 붙여야 할까?
오스믹퍼스트(osmic first)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붙였다.
단맛을 약속하는 기적의 토마토
수확량 중 불과 0.1%
시마네 대학과 공동연구로 흙을 연구하던 중... 고밀도 미생물이 들어간 병충해에 강한 좋은 품질 개발. 오스믹 소일이라고 부르는 자체 개발 한 흙에서 재배.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흙에서 살아남은 '기적의 토마토'라니. 한 범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포장은 무거울수록 좋다.
다이소에는 포장 서비스가 없다. 봉투는 대, 중, 소 별도로 판매하는데 이마저 선택의 문제다. 반면 명품 시계, 보석은 제품보다 포장이 더 무거운 경우가 종종 있다. 쇼핑백에서 제품을 꺼내 리본을 풀면 서랍형태로 끼워진 박스가 나온다. 겉 박스를 열면 다시 광택 나는 두꺼운 박스가 있다. 가끔 천으로 만든 더스트백이 한 번 더 있기도 하고, 제품을 덮고 있는 카드나 라벨, 설명서가 한 층을 이루기도 한다.
오스믹 퍼스트에서는 패키지 종류가 세 가지다. 토마토 당도에 따라 그랜드 퀸, 퀸, 프린세스로 나뉜다. 그랜드 퀸은 검정 박스에 금박으로 여왕 얼굴이 새겨져 있다. 가장 저렴한 프린세스 제품은 하얀 박스이고 방울토마토를 먹는 공주 옆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스믹 퍼스트 역시 방울토마토를 구매하면 붉은 리본이 묶인 두꺼운 박스와 쇼핑백, 리플릿을 준다.
심리학에서 '체화된 인지 오류 (Embodied Cognition Theory)'가 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인지)은 촉각, 후각과 같은 감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조슈아 애커먼, 크리스토퍼 노세라, 존 바그는 촉각이 판단(생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험을 하였다. 실험 참가자에게 54명 이력서를 보여주고 평가하도록 하였는데 무거운 클립보드에 끼워진 이력서를 가벼운 이력서보다 더 '진지하고 무겁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무게는 가치에 영향을 끼친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가상 자산 비트코인을 반짝반짝 광이 나는 두꺼운 금화로 표현한다. (만약 비트코인을 깃털로 표현하면 계속 가격이 오를 수 있었을까?)
돈으로 무거워 보이는 것 또는 무거운 것을 구매하면 적어도 손해는 아닐 거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무겁게' 받은 쇼핑백을 '힘들여' 집에 가져왔을 때 그 가치란. 우리는 힘을 들인 것에는 그 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2만 원으로 망원동 시장에서 방울토마토 한 박스를살 수 있다. 이것을 개별적으로 담고 포장해서 근사한 이야기를 붙이면 16알을 2만 원에 팔 수도 있다. 매출 10배가 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무조건, 어떤 식으로든 완성된 제품은 다른 제품과 명확히 구별되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차이는 '다름different'이며, '좋음 good'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차이를 만들지 못하면 공들여 만든 가격이 한순간 거짓이 된다. 감기약보다 쓴 토마토, 세계 최초 네모난 토마토, 꼬리가 달리 토마토, 주인 닮은 토마토. 뭐라도 있으면 된다.
명품을 파는 것과
사기를 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도쿄 오스믹 토마토 언박싱 영상과 맛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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