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에 갇힌 세대에게 픽사가 전하는 위로
영화를 보기 전날,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삼체’를 처음 봤다. 하늘에 별들이 가득 떠 있고, 마치 윙크하듯 반짝이며 모스 부호 같은 신호를 보내는 장면에서 첫 회가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본 픽사의 『엘리오』가 그 장면과 묘하게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무언가 하늘과 우주, 신호와 연결이라는 테마가 내 안에서 스치듯 겹쳐졌다.
영화 속에서 날아다니며 도움을 주는 카드 뭉치가 나오는데, 마치 LLM AI 같았다. 어느새 너무나 익숙해져서,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도구. 그러다 너무 의존하는 것 같으면 바보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무언가.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의 시대의 궁지 같기도 하고, 위로 같기도 했다.
DNA를 복제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체로 이런 설정은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마련인데, 엘리오에서는 유토피아 느낌이었다. 나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고,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나 대신 내 자리를 너무나 잘 지키고 있는 복제 나. 이제껏 본 그 어떤 복제 이야기보다 밝고, 따뜻하고, 위로가 있었다.
그 복제품을 만드는 장면도 마치 생지 반죽을 쪼물 딱 거리듯 손으로 주물러서, 오븐에 넣어 빵 굽듯이 금방 구워내는 장면에서는 감탄. 또 감탄.
엘리오가 한쪽 눈에 안대를 붙이고 등장한다. 상처받았다는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삐딱하게 보게 되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소외되었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엘리오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 대신 내 자리를 너무나 잘 지키고 있는 복제 나를 우연히 보게 된다. 결국 문제는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무언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고, 안대를 벗고 나서야 양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하고, 노력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장면에서 감탄. 또 감탄.
안대라는 이런 장치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써먹다니, 픽사는 역시 픽사다 하면서 감탄. 또 감탄. 크으.
문득 이 시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떠올랐다. 소셜미디어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보고, 이상향을 쫓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 안에 머무는 그 모습.
엘리오는 하늘을 향해, 외계인을 향해 "나를 데려가 줘" 신호를 보내는 한 어린아이로 그걸 은유한 것 같았다.
그래,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다. 그들이 잘못한 걸까? 부모가 잘못한 걸까? 세상이 잘못한 걸까?
그 모든 걸 따지기 전에,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조차 벅찬 세대가 되어버렸다.
엘리오가 그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 네가 있는 자리에서, 아주 작게라도… 회피를 마주하고 진짜 유토피아를 맞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