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미노 칠레 Nov 04. 2016

푸에르토 나탈레스 2007

학창 시절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생활 속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지구는 둥글다.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은 올라가고, 극지방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더 추워진다는 사실은, 해가뜨면 환해지고, 해가지면 어두워진다는 것처럼 당연하다.


이미 충분히 남쪽 지역인 푸에르토 몬트에서 배를 타고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당연히 그러리라는 '점점 더 추워질 것' 이라는 명제에 대해서 피부는 반응한다. 뱃길 양안 육지는 매서운 바람과 빙하,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맞는 거다.


나비막 페리 3박4일 마지막 날,  갑자기 주위 상황이 급변한다. 매섭던 남국의 바람이 한순간 잦아들고, 따뜻한 볕이 내리쬔다. 자연스레 3박 4일 내 갑판에만 나오면 껴입고 있던 두꺼운 파카를 벗는다. 여행자들이 웅성이며 선수로 쏠린다. 멀리 수평선 끝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밝은 지역에 조그만 마을이 아득히 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참… 살만한 지역을 기막히게 찾아내고, 그런 곳에 정착한다.

푸에르토 몬트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은 시베리아와 비슷한 위도와 기후로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다. 남극, 그린랜드 다음으로 빙하가 많은 곳이다. 구글 위성 사진을 찾아보면, 하얗게 빙하고 덮혀있는 지역이다. 그런 인적이 없는 지역을 거의 1000km를 훨씬 남쪽으로 지나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온화한 기후조건을 갖춘 지역이 나타난다는 것이 혼란스럽다. 오랫동안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을 믿고 있다가,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이 진실로 밝혀졌을 때처럼 당혹스러움이다.


물론,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주어진 헌법적 권한 내에서 행정권을 행사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아줌마가 거의 모든 인사권을 행사하고, 산업구조조정을 결정한다는 놀라움에는 그 이전 어떤 놀람도 그냥 그저 그런 정도로 강등돼 버린다.


2007년

오래전 나비막페리를 타고 왔던 그곳을 항공편과 버스를 통해 다시 찾는다. 푼타아레나스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3시간 올라가면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한다. 달리는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파타고니아 평원에는 소떼들, 양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파타고니아 팜파스

픽업 나온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반쯤 땅속을 파고 들어가 앉은 참호 같은 형태다. 실내는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채 마감이 끝나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저곳에 배치된 양털 가죽과 묘하게 조화롭다. 호텔 정면 외벽은 잔디 뗏장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완벽히 하나 된 느낌이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이 먼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찾아오는 모든 여행객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트레커들의 성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 여행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탐험에 앞서, 이 도시에서 쉬면서 필요한 식품, 비품을 챙기고, 지친 체력을 끌어올린다. 춥고 긴 겨우내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지만, 남국의 여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 조그만 도시에는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로 생기가 넘친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감이 높은 호텔 덕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여행의 피곤함은 실한 웰컴 드링크와 스낵으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원기를 회복하면서 절로 흥이 생긴다. 아이들 재롱잔치로 즐거움은 배가 된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들 때가 대부분이다.  지나 보면 또 그때가 좋았다 하는 시간들도 참 많다. 특히 학교에 메이지 않고, 성적 걱정이 없던 그 나이 때 얼마든지 더 여행을 다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늘 남는다.

 

갈고 닥은 노래실력을
관객앞에서 맘껏 뽐내보아요..


아이들 재롱잔치도 끝났겠다, 이젠 저녁시간이다. 1킬로 정도야 껌이지... 구경도 할 겸 걷자. 반도 못 가서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싶다. 남국의 저녁 바닷길 1킬로는 만만히 볼거리가 아니다. 둘러 덴다고 사내애들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말에, 와이프... 자기는 무슨 죄냐고... ㅠㅠ

푸에르토나탈레스 광장 주변으로 바베큐 식당, 이태리 식당,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아이들은 만만한 스파게티, 그리고 어른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바다에서 나온 싱싱한 해산물을 맛본다. 남국의 평범한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즐긴다.

   

이제 시간은 저녁 11시 반, 아직 밤이라 칭하기 어색하다.

남위 51도의 대지는 자정이 다가가는 시간임에도,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기는 이르다.

아이들은 내일의 탐험을 기대하며 꿈나라로 들어가고, 부부는 서쪽하늘 미명이 만들어내는 대지와 구름 그리고 바다가  완벽하게 구현된 풍경화에 빠져든다.


이때 시간 11:40 PM


       

매거진의 이전글 푸에르토나탈레스 _ 피요르드 항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