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획자"에 대한 9년 전 상상과 지금의 모습
좋은 개발자가 되고 싶습니다. - 익명의 동료 A
연말연시 상호 평가에 대한 시기였다. 동료평가 도중에 발견한 이런 문구를 보고,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고민을 아주 긴 시간 등한시 했다. 분명히 나도 이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일에 치여, 혹은 동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내가 거대한 기업에 속해서 어떤 형태의 기획자가 되고자 고민조차 없이 주어진 일을 하고 있어서 였을까.
과거에는 나도 고민을 했었다.
지금 열어보면 매우 매우 부끄러운 글인데 2013년 어느날 써두었던 글이 어느 웹진에 기고된 적이 있다. (https://ppss.kr/archives/18885) 여기 게재된 글은 원문에서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보기 좋게 정제된 글이고. 원래 썼던 글을 발굴해보면. 그 당시 3년차인가 4년차인가 하던 꼬꼬마 기획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 때부터 9년이 지난 시기에 다시 열어보자니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부끄러운데. 이십대의 패기, 젊은이의 열정, 스타트업 시기의 하이퍼상태, 기획자무용론과 매순간 싸우던 시기라는 걸 고려하고 보면 조금 오글거림이 덜하다.
기획은요, 선장같은 거에요.
이것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
기획은 상상하는 사람이에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죠.
망원경과 현미경을 가져야하는 사람.
핑계를 대지 않아야 하는 사람. >> 지치지 않게 하는 사람
그리고 밥값을 해야하는 사람.
일부러 토시하나 바꾸지 않고. 그 때 썼던 문장을 최대한 살려보았다. 확신은 없지만 막연하게 이렇게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정리해두었던 문장들 앞에서 지금의 나는 부끄럽기만 하다. 좀 더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일을 하던 그 사람은 커다란 기업 안에서 일을 할 때는 글 하나 남겨두지 않았다. 100:0 공유원칙에 따라서 회사일에 대한 이야기는 사적인 자리에 한 줄도 남기지 않으려고 의식하다보니, 내가 어떠한 일을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어떤 부분이 고민이다, 라는 내용을 남길 적정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출근했다, 퇴근했다, 주말이다. 이번엔 좀 큰 일이 있었다' 로 요약하니 고민을 이어나갈 틈이 없었다.
나는 선장 역할을 잘 하고 있나
애초에 왜 "선장"이라고 표현한 걸까. 정작 항해를 나가본 적도 없고, 배를 타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거대한 책무를 스스로에게 주었던 걸까 싶다. 전문성 부분에 조금 흐린 눈을 하고 보자면, 프로젝트가 나아가야할 방향, 외부 조건으로 인한 변수, 내부 조건으로 인한 변수, 돌림병(COVID?), 자원부족, 일정 부족 등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그걸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끊임없이 받게 되는 질문은 대략 아래와 같다.
너의 의도가 뭐니,
네가 생각하는 방향이 뭐니,
이게 이렇게 해서 되면 어떻게 되는데,
현실성이 있어?
실효성은 있어?
망망대해에 실체가 없는 방향만을 보고 가다보니, 한 배에 탄 이들의 아우성은 다채롭게 흩어진다. 그리고 흩어져 날아와 선장 앞에 한없이 쌓이게 된다. 과거의 나는 불분명한 문장을 잘 설명하기 위해 몇 번의 퇴고 끝에 기획서를 채워나갔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방향을 꺾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필요한 사항을 놓고 가장 최소한의 변경, 혹은 커다란 줄기 위주로 설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안을 전개하는 편이니. 동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15분을 달리다보면 어떤 섬이 나올 것이고 그 섬에 정박하여 물자를 실으면 된다 정도의 지침은 내리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나 싶다.
.. (생략)..
어쩌면 사람들은 그 손짓을 하고 싶어서 기획자를 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나가서 먼저 지시를 내리고 이리 가, 저리 가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하고 싶다, 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나도 그러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무게를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선장이 가리킨 방향에 따라 몇 명의 팔이 움직이고 몇 명의 시간이 사용되고 몇 명의 노력이 들어가는 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처음 일했던 회사가 유독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이런 부분에 조금 민감하다. 내가 잘 못 쓴 기획서때문에 어린 아이는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잘 수 있고, 예정되었던 데이트에 나가지 못해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 모든 문제가 급작스러운 게 아니라 내 손에서 파생된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일은 좀 싫었다. 되도록이면,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2013년 2월 12일
이유를 잘 제시하고 있나
기획자가 이유를 제시한다, 라는 말은 또 9년 전에 왜 써두었을까 곰곰이 다시 또 읽어보았다. 앞서 말했던 선장론의 후속에 가깝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건 전문가이다. (아직도 여전히 기획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니 나는 전문가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하고 공감하여 나의 요구사항에 탑승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이 내용은 지금은 지켜질 수 없다. 지키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기획자 개인의 판단보다 상명하달(a.k.a 탑다운)로 진행되는 일을 많이 하다보면 정작 나도 그 이유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 채 진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상당수가 위에 있는 B모씨가 원해서, 혹은 C모씨가 발의한 내용 이라는 뉘앙스로 내려오는 일이 열에 아홉은 된다. 이때는 최선을 다해 이유를 만들기는 한다. 기획자의 덕목에 저런 항목을 넣었던 걸 보니 그 때까지의 나는 참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았나 보다.
그렇지만 이 부분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 지, 이 방향을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처음에 자신이 상상한 대로 나오지 않게 될 것이고 그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 바퀴 쭈욱, 일을 또 하게 된다. 위에서도 말했는데, 내가 잘 못 쓴 기획서때문에 엄마아빠 얼굴 못 보고 잠자리에 드는 어린 아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
일을 두 번 해야 한다는 것 말고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점이 무엇이 있을까? 왜 이것을 해야하는 지 까닭을 모른 채로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일이 진행되는 방향때문에 괜스레 뒤로 갈수록 스스로 '내가 하청업체인가?'라는 생각이 들게끔 이야기가 된다. 먼저 일을 해놓으면 '어랏,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라며 따지게 드는데, 그 의도에 대해서 명확히 전달하지 않으면 그 의도가 그게 아닌지 맞는지 뒷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고 할 수 있겠나. '이게 아니잖아' 라는 식의 대화가 지속되면 결국 실제로 정말로 손뻗어 만드는 사람들의 감정이 다치게 된다. 그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고작 기획자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다. 의도와 이유를 아주아주 잘 정리해서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진짜로 만드는 건 기획자가 아니다. 만들어 주시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있을 뿐이다.
-2013년 2월 12일
상상하는 사람
상상은 좀 더 변화한 세상, 발전된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기획자. 이런 의미로 읽히는 게 맞다. 그 당시의 나는 이 항목을 지정했을 때는 전혀 다른 타입의 '상상'을 상정해두었다. 확장되는 상상이 아닌, 발생가능한 예외케이스의 최대치에 대한 고려를 하면서 기획해야한다는 뜻으로 썼었다. 상상과 설계를 섞어썼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4-5년 사이에는 별스럽게 발생하는 장애케이스에 기민하게 움직이는 방향으로 성장해갔다. 플랫폼기획에 있어서는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닫힌 상상속의 사람이라 어떨때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 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
문제를 던지기만 하는 사람은 기획자가 아니다. 단순히 강성사용자이거나, 혹은 관계자이거나 그저 직원이거나 CS일 수도 있다. QA에서 제시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각종 채널로 문제점은 들어오는데 결국 그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해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이 기획자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순간 기획자가 내놓는 말, 제시하게 되는 안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해결책이 되어야만 한다. 고민을 해보고 이 방향이다 아니다 역시 가늠이 필요하다. 물론, 대부분 온전하게 괜찮은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한다.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어도 되도록 그 순간 최선일 수 있는 안을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13년 2월 12일
지금 가장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이다. 어느 서비스든 플랫폼이든 무결할 수 없다. 만들어두고 이후에 감가상각이 일어나든, 태생적으로 흠결을 안고 나오든 결점이 오픈 이후 운영 도중에 발견되는데, 이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IT업계에서 기획자가 직접적인 해결은 할 수 없다--고 9년 전에도 써두었다. 코드 수정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니 이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코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제시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직접 작성하지 않은 제3자의 입장이라서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파고 들어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어느 정도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망원경과 현미경
사이트를 픽셀단위로도 볼 수 있어야하고
전체 큰 구조에 있는 문제가 없는지,
촘촘하게 클릭해서 봤을 때 빠지는 페이지가 없는지,
혹시라도 사람이 그 구조에서 다시 뛰쳐나올 문을 안 열어놨는지를
모두 볼 수 있어야만 한다.
-2013년 2월 12일
문학소녀였는지 써둔 내용 족족 비유법이 참 많다.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을 모두 가질 수 있어야한다는 뜻인데 이건 아직 약하다. 거시적인 구조, 작동원리, 흐름 등에 대한 이해는 빠르고 이에 대한 집중도는 좋은 편이지만 아주 세세하게 들어가는 경우는 여전히 약한 포인트로 남아있다. (픽셀단위로 못 봅니다.) 발생할 수 있는 케이스에 대한 고려는 그나마 중간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버튼 컬러에 대한 룰, 문구의 통일성, 표기 규칙 등에 대해서는 덤벙거리는 편이다. 현미경은 고사하고 안경정도 되려나.
핑계를 대지 않는 사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제일 어렵다.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라 거의 도덕규범 수준인데. 이 기준을 누가 어떻게 잘 지켜. 독립군도 이건 못 지킬 것 같은데. 심지어 이 기준은 10년 전에 써둔 글이 근거였다. (글이 불필요하게 미사여구도 길고 빙빙 돌려 말해서 간결하게 만들면서 다시 보았는데도 그 때 숨겨둔 '핑계'가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유독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프로덕트 매니저, 기회갖는 무슨 일을 해야하는걸까.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일정관리가 좋은 UX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합의 가능한 수준으로 스펙을 최대한 쳐내야한다. 이것 저것 좋아보인다고 이야기하면 끝이 없고, 그 사견들이 모이면 괴기스런 서비스가 될 게 뻔하다. 대부분의 실무자라면 다 짐작하는 결과다.
불가능이란 없다, 라는 말을 맹신하면 어떻게 될까? 혼자 하는 일이라면 개개인의 '의지'에 좌우되지만 둘 이상이 하는 일은 의지 문제가 아니다.
프로젝트는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매출을 만들기 위함은 맞지만. 그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일정 딜레이에 맹활약을 하는 것도 사람이다. 일을 하는 "주역"들을 힘나게 하는 것은 무얼까.
각자에게 '이것을 해야하는 개인적인 이유'를 만들어 주어 힘을 북돋아주었으면 했다. 이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생각이었다. "일정이 그러니까", "시키는 일이니까" 라는 식으로 모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긴 시간을 모든 이들이 버틸 수 있을까? 이게 잘되면 너에게도 좋은 일이야, 라는 추상적인 상명하달은 열정의 동인이 될 수 없다.
열정과 꿈을 명목으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열정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청춘이 아파도 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인내하고 버티라고 훈계할 것도 아니다. 보잘것 없는 경력에 고작 조금 더 나은 체력만 믿고 몬스터와 레드불을 먹고 달리고, 연륜있는 이들과 경쟁하라고 내몰 수는 없다. 그런 단어로는 사람의 제한된 HP를 늘릴 수 없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PM이 할 일은 열정과 꿈이 다치지 않게, 지리한 물리적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들지 않게 토닥여주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같은 일을 한다고 모든 이들에게 같은 이유가 있지는 않다.
핑계거리를 만들지 않아야만 한다. 핑계를 만들기 시작하면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지치게 된다. 그리고 처음 다짐과는 달리 다들 지치게 만드는 말을 나 역시 했었다.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청춘과 에너지를 앗을 수는 없다. 이유가 아니라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황은 자꾸 흘러흘러 핑계를 만들 수 밖에 없게 할 수 있다. 매번 우리는 그런 일에 직면하고 그 말을 내키지 않아도 입에서 뱉어내야만 한다. 알면서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쓴 말과 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게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획자가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2012년 9월 12일
글쓴 사람 본인도 의도를 알 수가 없는 걸 보면 어지간히 못 쓴 글인데. 오히려 핑계를 대지 않는 사람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일을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할 수 없다. 커다란 회사에서 일하면 그걸 결정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경우가 많다보니 그러하고, 하다못해 스타트업 등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밖에 없으니.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라도 해야하는 이유를 발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괜찮다. 개발자의 경우에는 특정 언어나 로직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디자인의 경우에는 분절되어있던 UI를 통일하는 이유도 있고, 주니어 기획자라면 이해도를 높인다는 목적 등 다채로운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것을 한다고 연봉인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고, 회사주식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은 경험이 나와 동료들을 풍요롭게 만들면 되는 게 아닐까.
그동안 엘사랑 일해서 마음 편했어요 - 익명의 동료D
잘 챙겨줘서 고마워요 - 익명의 동료E
언제나 밝게 일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 익명의 동료F
조직이동을 밝힌 이후 동료들의 인사를 듣다보니, 내가 원했던 기획자의 모습이다. 철두철미하고 대단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고 백만대군을 이끄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다시 회고해보니 스스로 정한 룰에는 꽤 충실한 점은 참 좋다.
-- '밥값을 해야하는 사람' 은 기획자무용론에 대해 따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