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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Sep 03. 2023

7.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아직은 여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문득 방정리를 하다가 다 읽었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데, 한창 직장이 바쁠 시기여서 어떤 노트에도 기록을 하지 않았던 책이 발견됐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가을에 매우 잘 어울리는 에세이집,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이다.


   이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는 특별한 책이다.

1. 일단 평소에 참 좋아하는 림태주 작가님의 책이다. 보통 이 얘기를 하면 다들 시인 나태주 선생님하고 헷갈리고는 해서 '아 그 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그거 쓰신 분이죠?'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혹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줄 알고 나태주 작가님이라고 정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이 분의 팬으로서 참 가슴이 아프지만, 덕분에 작가를 소개해주면 사람들이 잘 안 잊는단 장점도 있다.


2. 이 브런치를 내가 시작한 계기도 이 분이었던 거 같다. 처음으로 이 작가님의 글을 브런치에서 접하면서 이런 플랫폼이면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거기가 내 시작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베타버전이었던 브런치는 지금이랑 참 분위기가 달랐다.)


3. 내가 처음으로 접한 오디오 책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을 만난 시기가 참 일 때문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기였는데, 출/퇴근길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좋은 친구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결국 종이책도 사버렸다.   


   대부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책을 읽다보면 가볍고 편하게 읽히는 책도 만나고, 오래 생각하면서 천천히 느리게 읽게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책은 설레서 야금야금 아껴서 읽고 싶어진다. 이게 딱 나한테는 첫번째와 세번째를 적당히 섞어놓은 책인거 같다. 작가의 생각의 결이 나랑 참 비슷해서 술술 읽혔다.


에세이인데 시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무언가 책에 대한 설명보다는 내 마음에 박힌 문장들을 정리하는 것이 이 책을 오히려 더 잘 설명한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책 제목처럼 내가 이 책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 책을 정리한다.



믿음은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나의 유익과 기대 때문에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자신을 옭아매게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은 내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이다. 나의 욕심을 잠그는 일이다. 너를 믿는다는 말은 내 욕심을 단단히 지켜내겠다는 각오다. 나를 끝까지 믿는 나에 대한 확신이다.  - 25p


나는 키우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고 믿는다. 함부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랑을 참아내는 것도 때로 사랑보다 더 좋은 사랑일 수 있다고 믿는다. - 54p


말의 주인이 죽은 뒤에도 말은 살아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삶의 방향이 된다. 얼마나 유창하고 위대한 생명체인가. 당신과 나의 말들은.  - 59p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말을 잘 맞춘다는 이야기다.

맞춘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서로가 어긋나지 않게 조화를 도모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은어는 단지 구술하는 기술적인 언어악 아니라 학습과 탐구가 필요한 전공어에 가깝다.

둘만의 사적인 은어를 밀어(密語)라고 한다.

은어를 직역할 수준이 됐을 때, 드디어 우리는 속삭일 수 있게 된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도 몇 마디의 짧은 밀어로도 사랑의 본질에 닿을 수 있게 된다.


매혹적이지 않는가.

은어처럼 맑은 자갈돌 속에 숨는 말이 그대와 나 사이에 있다는 것.

우리 둘이서만 알아듣고 붉어지는 은어가 있다는 것.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분리되지 않은 궁극의 언어가 있다는 것.  - 36~37p.


"아프게 하는 것보다 고프게 하는 게 더 나빠." - 98p.


정말은 정말일 때만 쓸 수 있다.

정말은 진심일 때만 쓸 수 있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에게 일 순위로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분산되지 않는 목숨의 몰입이 있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그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만큼 진짜가 없고,

그 시간만큼 정말인 것은 없다.

시간이 진심이다.  -21p.


가만히 있어서 아무는 상처란 없다. 그러니 나는 그런 나로 인해 또 얼마나 덧나고 곪았겠는가. 당신의 슬픔은 가만하지 않고 환한 대낮에 터트린 농담 같기를 바란다. 검은색 말고 흰색의 울음 같은 것으로.  -232p.


사월은 정찰병처럼 온다.

봄은 지축을 울리며 저돌적인 생명력을 장착하고 진군하지만, 사월은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고 예민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믿지 말아야할 게 사월 날씨라고 생각한다.


 ... (중략) ...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무언가를 아끼는 사람에게 이 머뭇거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 (중략) ... 문장과 문장사이에도 멈칫하는 사월이 있다. 행간이라고 한다. 바로 읽히지 않고 생각해봐야 속뜻이 드러나는 구간.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이런 사월의 행간이 필요하다. 모든 관계가 직선 구간처럼 시원하게 거침없이 뚫려 있으면 좋겠는데, 조금 돌아가야 하고 조금 참아줘야 하고 조금 기다려줘야 하는 커브 구간이 있다. 지리 시간에 배운게 있다. 기름진 삼각주는 유속이 빠른 강 상류가 아니라 하류의 느린 커브지대에 형성된다. 머뭇거리는 마음의 하류에 퇴적되는 아름다운 관계를 나는 '봄'이라고 부른다. -168~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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