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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30. 2024

겁쟁이들을 위한 변호

   나는 겁이 좀 많은 편이다. 과감하지 못하고, 확실하지 않은 게임에는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베팅을 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학생시절에 큰 단점처럼 다가왔다. 모든 돌다리를 두드리고 위험이 없어야 다리를 건너니, 누군가의 눈에는 너무나도 우유부단하고, 느리고, 유약해 보였을 것이다. 거칠 것 없고 무모한 성향은 청춘, 특히 20대 다수의 남성들이 바라는 질감이다. 보통 그 과감함이 남성성, 강함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이 되어보니, 조금은 생각이 바꼈다.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겁이 많은 자들이 강하다.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성향은 '언뜻' 강해보인다. 그러나 무모한 '객기'로 변질될 위험 또한 많다.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거나, 그 실패들이 남긴 데이터를 망각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걸음마를 막 뗀 아이들은 겁이 없다. 그래서 넘어져서 다치고, 가끔은 뜨거운 난로에 손을 짚어 데이고, 때로는 악의없이 난폭하다. 나는 가끔 겁이 없는 사람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부분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의 모습과 같아 보여서 늘 불안하다.


  간혹 잠을 자려고 틀어놓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거기서 어떤 고고학자가 말했다. 석기시대에 인류를 살게 해줬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이나 전설 속에 나오는 '전사'들이 아니라 '겁'이었다고. 겁을 먹기에 저 밖에 있는 생물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공포에 민감한, 겁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여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조금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기 위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마음의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겁이 많다는 것은 단순히 벌레나 귀신을 무서워하는 그런 것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겁이 많다는 것이 곧 섬세함을 의미한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겁이 많은 자들은 지켜야 하는 가치들을 지독하게 지키는 자들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또 자신과 얽힌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신중함이 있는 자들이다. 2002 월드컵 때 이탈리아의 빗장수비 축구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을지언정, 이탈리아가 약한 팀이라고 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결국 강하다. 삶에 있어 순간적인 부스터를 내는 것보다는 지구력으로 대처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숨기지 않고 '나는 겁이 많은 편이야.'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동류 같아서 호감이다. '겁이 없음'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그들은, 결과적으로 늘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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