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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짬뽕 뮬란 Dec 16. 2022

저를 구해주세요

거부하다

  

불의의 사고라도 생기길 늘 바랐고 목을 맬 수 있는 도구만 봐도 죽음을 생각했다. 이 모든 생각은 결국 한 편으론 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늘 멍하게 죽음만 생각했다. 매일 같이 자살을 결심했다. 늘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10대를 보냈고 20대가 되어선 왜 나는 죽지 못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30대가 된 지금은 죽고 싶다던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10대 때는 스무 살이 되면 ‘나는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늘 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 우울증을 받아 들여준 학교 선생님이 나를 구해주길 바랐다. 그저 죽음으로부터 말이다.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고 학교 선생님은 내 우울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내 우울증을 먼저 알아봐 주신 분이셨다. 나는 그 선생님과 자주 면담을 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정신과 상담치료사처럼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를 대화로써 도와주려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우울증은 대화로 풀릴 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 꽁꽁 묶여 얼음이 되어버린 듯했다. 누군가 내게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도끼질로 내 얼음을 깨려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나는 우울증이라는 사슬에 묶여 있었다. 내가 10대였을 때만 해도 우울증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우울하고 불안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랐다. 잘못된 정보로 우울증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만 꺼내도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었다. “우울증이 뭐야?”, “그거 왜 걸리는거야?” 같은 10대들끼리 대화가 잘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죽음을 생각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꼭 대답을 해야만 한다면 리셋이 되고 싶었던 듯도 하다. 인생 리셋.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지금은 물론 다른 생각이다. 내가 그토록 죽고싶다는 생각에 매달렸던 이유는 그저 잘 살고 싶어서였던건 아니었을까. 이 모든 상황이 끝나버리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기 위해 강원도로 떠났던 것도 우울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선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라는 교만한 생각을 했다. 무지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그저 잘 살고 싶은데 잘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싶었는데 늘 실패했다. 나의 우울은 정확히 언제부터가 시작이었는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것인지, 나는 왜 자꾸 자살을 바라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학교에 다닐 당시 선생님과 면담을 할 때 가끔 편지를 써서 주고 받기도 했었는데 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살고 싶었던 것이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실패란 무엇인지, 왜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우울증이라는 게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께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매달렸던 건 내 가슴 깊숙이 박힌 무의식은 살고 싶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저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유일하게 죽음뿐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내 우울증은 심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마음과 정신으로 어떻게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이 늘 겁이 났다. 나 자신을 해칠까봐 무서웠다. 집 부엌에 있는 칼을 계속 떠올랐다. 내가 그것을 생각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다. 정말이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정말이었다. 떠올릴려고 하지 않아도 계속 칼이 생각나고 긴 끈만 봐도 목을 메달 생각만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선생님께 ‘저를 구해주세요.’라는 편지를 썼을 때 그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선생님은 내게 이런 답변을 보냈다. “넌 살 수 있어. 잘할 수 있어.” 10대 때는 와 닿지 않았다. 살 수 있을까봐 두려웠는데 살 수 있다고 말하니 더 두려움에 휩싸였다. 20대 초반이 가장 우울증이 심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죽으려는 시도를 자주 했다. 그러나 결국 살았다. 친구의 도움으로, 남자친구의 오지랖으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나는 다시 살아났다. 



정신과 의사는 몇 년 전부터 내게 입원 의사를 물어왔다. 내 대답은 늘 똑같았다. “싫어요. 버텨볼래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구해달라며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이 생각이 떠오르면 내 마음은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건가. 아무튼 모르겠다. 나를 구해달라고 외쳤던 어린 10대의 내 모습은 현재 사라졌다. 나는 언제부턴가 외치지 않는다.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계속 이어질지는 나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지 그만 여기서 생을 마감할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모두가 내 선택이다. 나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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