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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짬뽕 뮬란 Dec 18. 2022

성장통을 겪은 아이

비난하다

나는 5kg 우량아로 태어났다고 했다. 몸이 건강하게 태어나서일까. 마음은 건강하지 못하게 자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나는 마당에서 한 살 터울인 사촌 언니와 제기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는 집에서 치뤘는데 오시는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불쌍한 것이라며 혀를 찼다.      


아버지는 퇴근하고 집으로 와서 목마를 태워줄 것 같았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한다는데 내 기억은 왜곡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아버지는 늘 다정하기만 한 분이 아니었다. 늘 할머니를 괴롭혔고 항상 짜증을 내셨다. 지금은 짜증만 부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고 가난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가난하기를 바라셨으리라. 아버지를 보면 꼭 울음 잃은 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 울지도 못하는 늙은 소 같던 아버지는 대체적으로 짜증을 많이 냈는데 그때의 아버지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나이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언니들과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눈치를 보곤 했다. 나는 그때 고작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다.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작은 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작은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에 비해 더 많은 짜증과 화를 느끼며 사는 분이셨다. 늘 화를 내셨고 소리를 지르셨다. 어린 나는 그 큰 소리와 짜증에 공포를 느꼈고 불안함을 느꼈다. 집 앞에 세워지는 자동차 소리만 들어도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는 잘못한 게 없었다. 잘못할 수도 없는 어린 나이였다. 내가 태어난 것이 잘못일까.      


작은 아버지는 늘 집에 와서 할머니에게 신경질을 내셨고 소리를 지르고 돌아갔다. 할머니가 불쌍했다. 나는 슬펐다. 할머니는 내 세상이었고, 그런 내 세상을 누군가가 위협한다. 내 세상은 매일같이 무너지는 모래성이었다. 내 세상이었던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미움과 타박을 받았다. 내 세상은 바람 빠진 축구공 같았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10대가 있었다. 사고를 그렇게 치는 아이였다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뒤늦게 공부를 했다. 그렇게 낯을 가리고 말 수가 적었던 내가 반장을 하면서 친구들 앞에 나서고 해보지 않았던 아마추어 배구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주장도 했다. 초,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이유는 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던 그 시골을 떠나왔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그랬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뒤늦게 공부를 하느라 기초가 부족했던 나는 남들만큼 잘하진 못했지만 반에서 1등을 해본 적도 있고 전교에서 5등 안에 든 적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햇빛만 맞을 순 없는 법. 마음 한구석에는 늘 우울감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우울감을 꽁꽁 잘 숨겨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은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며 큰언니를 학교에 데리고 오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고 친구들도 내게 너무 어두워보이며 늘 진지해 재미가 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마음 한 켠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할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내가 이번엔 할머니를 버리고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늘 울면서 잠이 들었다. 언니들이 나를 어디론가 보내버리진 않을까 늘 초조해 했다. 뿌리가 썩으니 열매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내 삶은 늘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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