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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짬뽕 뮬란 Dec 06. 2022

적정한 삶을 산다는 것

비난하다

    

회사에 다닐 때다. 4시 반 눈을 뜬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욕실로 들어간다. 씻는다. 샤워가 끝나면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린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이를 닦는다. 남들 눈에 튀지 않는, 적당히 꾸민듯한 느낌의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다. 8시에 집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10분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 틈에 끼어 스마트폰을 얼굴 바로 앞에 대고 이어폰을 낀 채로 회사가 있는 역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란다. 내릴 때가 되면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하차당한다. 빠른 걸음으로 회사까지 걷는다. 걸어서 15분. 버스 타고 5분.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은 걸음을 재촉한다. 회사에 도착하니 8시 50분. 10분 전 도착했으니 지각은 면했고 직장 동료들에게 성실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시간 내에 도착했다.


9시 30분 회의에 참석해 생각나지도 않는 아이디어를 짜내며 2시간가량 가시방석에 앉아있다. 11시 반, 옥상에 올라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직 덜 깬 잠을 쫓아낸다. 다시 자리로 내려가 업무를 조금 보다 보면 1시, 점심시간이다.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니 빠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또 한 잔의 커피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점심은 회사 근처 뷔페식당. 직장 동료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가 같이 점심을 먹고 난 뒤 카페까지 함께 간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10분 전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로 들어간다. 내 자리에 앉으면 5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이제부터 다시 업무 시작. 집중해서 오늘 회의 때 있었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상사에게 보고할 것을 끝마치고 다른 업무까지 보고 나니 시간이 벌써 5시 반. 시간이 안 간다. 30분을 어떻게든 잘 버텨내며 6시가 되니 하나둘씩 칼같이 퇴근하는 동료들이 눈에 띈다. 상사 눈치를 보면서 조금씩 가방을 챙겨 들고 나는 오늘 기필코 칼같이 퇴근하겠노라 다짐했다. 눈치 보며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나온 시간은 6시 20분. 지하철역까지 다시 빠르게 걸어간다. 정시 퇴근하는 사람이 이리도 많았던가. 지옥철을 타고 우리 동네까지 간다. 동네 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밀쳐내며 지옥철을 빠져나온다. 집에 도착 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때 마침 회사 직속 상사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인데 마감만 해줄 수 있냐며 내게 던져준다. 나는 기계처럼 컴퓨터 앞에 앉는다. 상사가 지시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메일 전송까지 끝내면 완료. 시간은 저녁 8시.


뒤늦은 저녁을 먹는다. 밥 해 먹기 귀찮으니까 배달앱을 켜고 먹고 싶은 것을 시킨다. 음식이 도착하고 나면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 듯 폭식하며 치우지도 않고 침대에 가서 드러눕는다. 그대로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본다. 유튜브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보고 각 SNS를 종류별로 다 확인 후에 시간을 보면 11시. 거실로 나가 먹다 남은 저녁을 치우고 이를 닦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친구와 통화도 하고 스마트폰 게임도 좀 하고 나니 시간이 12시가 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마트폰을 계속 본다. 1시쯤 됐을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반 눈을 뜬다. 주 5일을 이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적정한 삶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학원 강사로 일할 때다. 오전 9시쯤 눈을 뜨고 10시 30분까지 눈을 뜨자마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꾸역꾸역 일어난다. 대충 씻고 11시에 운동을 간다. 운동을 다녀와서 샤워하는 시간. 유일하게 내가 울지 않는 시간이다. 씻고 나와서 침대에 드러누워 가만히 있는다.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 평균 1시간에서 2시간. 침대에서 나가고 싶어도 침대가 나를 끌어내리는 듯한 이 기분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출근 1시간 전까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들면 자고 눈물이 나면 또 울기도 하다가 천정을 바라보며 또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3시까지 학원으로 출근한다. 집에 오면 밤 11시. 씻고 누워서 생각에 잠긴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이 힘들어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아프다. 하루 5시간 일하는데도 몸과 마음의 긴장으로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뻐근하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진 않았을까, 내가 오늘 했던 수업에서 실수는 없었을까, 학생들이 나 때문에 그만둔다고 이야기하진 않을까, 다른 선생님이 내 흉을 보진 않을까, 나를 무능력하다고 말하진 않을까 또 생각에 빠져있다. 나는 또 망상에 빠져 그렇게 새벽 6시까지 생각하며 울다 잠이 들었다. 눈 떠 보니 오전 9시. 어제는 가위에 눌렸고 오늘은 악몽을 꿨다. 수면제를 먹어도 깊이 잠들지 못해서 3~4시간 자면서도 몇 번을 깼다. 깨더라도 7~8시간은 자고 싶은데 오래 자지도 못한다. 수면제도 소용이 없어졌다. 정신과에 가는 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한다.


나는 과연 적정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걸까. 사람들 속에 묻혀 남들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사는 것이 과연 적정한 삶일까. 하루 5시간 일하면서도 10시간 일한 듯 온몸이 저리고 심장이 빨리 뛰는 공황장애를 겪고 집에 돌아와 새벽 내내 울기만 하는 내 삶도 적정한 삶이 되는 걸까. 이 고민을 하게 됐던 건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했던 20대 중반부터였다. 나도 남들같이 8시까지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는 일을 했었다. 그때는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잠들면 다음 날을 맞이해야 하니까.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다. 사람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 관해 관심이 없다지만 내 머리는, 내 마음은 그런 걸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정신병 중 하나인 극심한 우울증을 정신‘장애’라고 하나보다. 뇌에 장애가 생겨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가진 온 힘을 다해야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해본 적도 많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에 관한 선택지는 줄어들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삶을 나도 살아낼 수 있을까. 사람들 틈에 끼어 적응하며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운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잠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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