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온 인생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문항에 맞춰 그간의 삶을 정리하다 보니 내 인생에도 방향은 있었다. 한숨 돌리고 뒤돌아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신발끈을 팽팽하게 동여맬 때, 나는 누가 뭐래도 이 방향으로 나아갈 테다, 굳은 마음으로 나아간 적은 거의 없다. 그냥 누군가가 좋아서, 그냥 어쩌다가 누군갈 만나서, 그냥 어쩌다가 누군가 나를 좋게 봐줬고, 그냥 어쩌다가 나도 그게 좋아서, 그게 기회가 되고, 그냥 어쩌다가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냥.'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냥' 이렇게 세상 흘러가는 대로 내 운이 닿는 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그런 거라고. 사회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습득한 세상의 원리였다.
하지만 의지 없이 흐름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지독한 무기력이 시작됐다. 헤엄치기를 포기하니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표류가 시작됐다. 뭐든 배우긴 어렵지만 잊는 건 쉽다. 특히 몸을 쓰는 일은 더 그렇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버린 걸까?
'그냥'이라고 치부해버린 나날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과정은 자유형의 짜릿한 기억을 소환했다. 아, 그때 그랬지. 내가 이게 진짜 하고 싶었는데. 이걸 하려고 이렇게 했었는데. 이게 안돼서 저렇게 했었는데. 저렇게 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었는데. 그래서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고. 그게 이렇게 이어졌었는데.
타닥타닥, 다소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며 작가 정신을 불태우는데, 웃기게도 악어의 눈물처럼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이거 진짜 하고 싶었는데. 이거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고였다. '그냥'으로 치부해버린 내 지난날들에 너무 미안해서. 현실이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아끼던 목표 앞에서 실패했을 때의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되는대로 적당히 좋게 살아내 버린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너무너무,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이번에도 역시 '그냥' 되는대로 하다 보니까 이게 보였다. 수많은 '그냥' 속에서 가뭄의 단비같이 찾아오는 이 무엇에, 이번에도 '그냥'이란 이름을 붙이진 않을 테다.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지, 말,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