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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예니 Nov 20. 2023

무엇이 나를 그렇게 옭아맸을까?

내가 나를 옭아매는 것을 하나씩 깨닫는 것이 비로소 행복의 첫걸음이다.

 

 나를 위해 퇴근해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이번엔 성시경의 유튜브를 보고 “연어 스테이크”를 하기로 했다. 업무 내내 긴장감을 달래주려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3만 원대의 와인도 한 잔 사서 집에 왔다.

업무 할 때 가지 않던,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8시간이 퇴근만 하면 신기하게 시곗바늘로 신이 장난을 치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11시가 되곤 한다.


신기한 게 있다면 일터에선 그렇게 시계를 보건만, 집에서 요리를 할 때면 정말 단 한 번도 시계를 본 적이 없다.

그냥 요리에 심취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몹시도 즐겁다.

성인이 돼서 처음 깨달은 “몰입”이란걸 요리를 통해서 하게 되었다.


그래도 너무 피곤할 때는 늘 요리를 할 순 없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은 이렇게 요리를 하다간 살림이 거덜 날 정도로 한 번 장을 볼 때마다 5만 원은 금방 넘고는 한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 근사하게 요리를 선물해 줄 때면, 그리고 분위기 좋은 음악과 와인 한 잔을 곁들일 때면 하루종일 화나고 바짝 긴장해 있던 나의 뇌 속의 혈관들도

한 시름 놓고 잠시 느슨해지고는 한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다. 행복해지고 싶었고, 행복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였다.

그런데 요리를 할 때면 먹는 사람은 혼자인데, 항상 옆에 미래의 남편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들고는 했다.

함께 와인을 마시며 노곤하게 오늘 하루의 피로감을 함께 이야기해서 덜어낸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군다나 나는 어릴 때부터 화목한 가정을 일찍부터 이루고 싶었다.


그 화목한 가정에 대한 큰 바람 때문일까. 좇을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소개팅을 나갈수록 점점 더 세상에 내가 바라는 이상형을 만나기가 어렵단 걸 실감하고는 한다.

대화가 잘 통하고 깔끔하고 코드가 맞고 내가 배울 점이 많은 사람. 깊이가 있는 사람. 예민하지 않은 너그러운 사람. 딱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참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정도면 너무 길고 까다로운 건가…

까다롭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짝”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 권유하지만, 직업 특성상 선뜻 나가기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요리를 하기 위해 예쁜 접시를 사고,

미래의 가정을 생각하며 심지어 콘센트 플러그도 “장난감 트럭” 모양의 플러그를 사고

예쁜 이불과 퀸 사이즈의 침대와, 결혼할 때 들고 갈 에어프라이어, 오브제 전자레인지, 각양각색의 예쁜 컵들 등…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남자가 몸만 와도 되겠다.”라고 한다.


나는 가정을 너무나 이루고 싶었다. 내가 원하던 가정의 모습을 그리며, 누군가의 좋은 엄마가,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 미리 다양한 인테리어 용품을 사놓았다.

미래에 그 예쁜 인테리어 용품들이 놓여있을 공간과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하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이제 꽉 붙잡고 있던 마음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빨리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것도, 내가 원하는 남편을 만나고 싶은 것도 모든 게 다 나의 집착이고 나의 욕심인 것 같았다.

“시절 인연”이란 게 있지 않은가.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과 불행을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은 결혼도 일찍 해서 아이가 둘인데,

나는 언제 하냐, 이러다 하겠나 ‘

라는 불안감마저도 갖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저 보이지 않는 허공의 잡념들을 , 욕심들을, 내 바람들을 붙잡아

괴고움의 다양한 이름들을 붙여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물처럼 다 흐르고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도 사라진다.

인생은 왜 나만 불행하고, 나만 이렇게 힘든 시련을 끝없이 줄까라는 생각도 사라진다.


히려 그 시련은 물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내 생각으로 인해서 더 극대화시키고 나를 괴롭히고 옭아매었을 것이다.


그게 습관이고 익숙했으니까.

이제 행복하고 싶다면 나를 제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과연 요리를 나 자신을 위해서만 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고 그다음이 타인이다.

아무리 결혼을 하더라도 남편은 결정적일 순간에 남의 편일 수 있다.


나 자신이 단단하고 여유로울 때 시절 인연도 들어올 것이다.

물론 시절 인연이 들어올 것을 기대해 나 자신을 가꾸는

거꾸로 된 역설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아니, 내가 무엇이 부족했음을 아니

똑같은 햇빛도 햇살도 이렇게 달라 보인다.


다 지나가는 것들은 움켜쥐지 말자. 내려놓자.

그것이 비로소 지혜다.


왜 그렇게 일찍 가정을 이루고 싶었는지 원인부터 되살펴 보았다.

내면 아이의 아픔도 인정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매일 찾아 조금씩 마시던 와인을

자연스레 비로소 찾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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