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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예니 Nov 20. 2023

어머니는 참치회가 싫다고 하셨어

대구 엄마의 인천 송도 체험

나는 참치회를 참 좋아한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참치회를 시켜 먹는 것 같다.

촉촉하면서 고소한 게, 특히 하얀 부분이 있는 참치회는 와인과 먹으면 일주일, 아니 이 주일간의 노고가 확 풀리는듯한 느낌이다. 

'그래 이 맛이지!'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먹고 싶지만, 사실 참치회를 매일 먹다간 내 지갑이 거덜 날 것이다.

꾹 참고 이주에 한 번은 먹는 것도 나로선 최선의 절제이다. ^^


"엄마! 참치 회 좀 먹어볼래?"

하면 늘 엄마는 

"참치 회가 뭐가 그렇게 맛있어서 자주 시켜 먹냐? 엄마는 안 먹어도 된다. 회 비려서 안 좋아해."


나는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엄마는 회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분명히 엄마는 늘 회가 비리다고 못 먹겠다고 하셨다. 또 살아있는 생선을 잘라서 바로 가져다주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기도 잘 안 드시던 엄마다.


건강 때문에 엄마는 늘 야채를 먹곤 했다. 먹기 싫고 맛없어도 먹는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이 더 없어지면서 끼니를 거르곤 했던 엄마다.


그런 엄마가 요즘엔 친구들과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 

엄마가 밝아져서 너무 좋다. 2주 전엔 엄마가 인천 송도에 친구들이랑 다녀왔다. 1박 2일로.



6년 전에 대만 여행에 갔을 때는 분명 효도여행이었는데, 엄마랑 인연 끊을 뻔했다. ㅎㅎ

대만에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찾아서 갔는데, 가는 곳마다

"음... 너희는 이런 걸 맛있다고 하는구나... 김치하고 밥 먹고 싶다."거나 아침에 눈만 뜨면 

"휴.... 오늘은 더워서 어떻게 다닐꼬..." 한숨을 내뱉어서 출발도 하기 전에 힘을 빼던 엄마였다.


사실 내가 잘못하긴 했다. 왜냐면 그 더운 여름에 더 더운 여름의 날씨를 가진 대만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를 위해 무려 7박을 예약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더위에 약한 엄마를 불가마에 던진 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미안하다. 그저 엄마를 위해서 여행을 계약한 것들이 우리들의 눈높이에서 하고 싶고 가고 싶었던 곳이었으니까...


대만에서 유일하게 엄마는 "버블티"만 좋아했다. 

"다신 엄마랑 오나 봐라."

엄마와 여행을 같이 갈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엄마는 미각이 발달해서 음식 솜씨도 뛰어나고 음식을 먹으면 들어간 재료를 거의 다 맞추고는 하는 반 장금이다. 그러니 엄마의 입맛에 맛있는 식당이 그렇게 많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음식이 다 별로였다고 말할 줄 알았던 엄마에게  나는 인천 송도 여행이 어땠냐고 물었다. 

"진짜 너~무 좋았다. 너무 행복했어."

아이같이 해맑게 말하는 엄마의 표정과 말투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나는 참치회랑 연어회가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어. 얼마나 맛있는지 대구 와서도 가고 싶어서 참치 회 맛집을 찾아봤어."


내가 아는 우리 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엄마 친구가 송도에 있는 최고의 호텔의 꼭대기층을 예약해주셨다고 한다. 시그니엘 아파트처럼 호텔에서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타고 꼭대기층에 갔다고 한다. 친구분이 다음 날 조식은 꼭 먹으라고 조식까지 예약해 주셨다고 한다.

"세상에. 엄마 친구랑 셋이서 샤워 가운을 입고 야경을 보는데 너무 행복한 거야. 언제 그런 경험해보겠어. 방도 너무 좋고, 샤워기 트는 것도 그런 건 처음 봐서 신기하고.. 무엇보다 조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한 번 더 먹고 싶었어. 커피도 맛있고 세상에 조식에 나오는 연어도 콩 같은 거랑 먹으니까 너무 맛있는 거야."


또 우리 엄마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이주에 한 번 연어도 시켜 먹는 내가 엄마에게 건넬 때마다 손사래를 치던 엄마가 연어마저도 그렇게 맛있단다.


엄마는 과연 음식이 맛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분위기에 취했던 것일까. 

하지만 아이같이 너무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에 미안함도 느꼈다.


엄마의 살아생전에 나도 내 힘으로 그렇게 좋은 방을 예약해서 실컷 세상의 다양한 음식과 풍요로움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데... 


알고 보면 나는 엄마를 참 몰랐던 것 같다. 엄마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엄마를 내 기준에서 나의 안경을 끼고 판단했다. 엄마도 나처럼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늘 딸에겐 더 좋은걸 해 주고 싶고, 먹이는 걸 아끼지 않으시면서도 자기는 늘 아끼며 살았던 엄마였다.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은 예약을 못 하더라도 이번 주말 참치 맛집을 예약했다. 엄마와의 후회 없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예전에 본 유튜브 릴스에서 엄마랑 여행 가는 딸이 엄마와 약속을 하는 영상이 있었다.

"비싸다고 불평하지 말기."

"이것도 음식이냐고 하지 말기."

"얼마냐고 묻지 말기."

"아깝다고 하지 말기."

"한국 음식이 최고다고 하지 말기."

등등.. 세상에 엄마들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 영상 덕분에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별난가!'라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었다


그런데 별난 게 아니었다. 내가 엄마를 너무 몰랐을 뿐. 

엄마는 참치회를 싫어한 게 아니라 많이 드셔보지 못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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