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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19. 2021

문어_1

작은 성공이 절실했다

수평선마저 지워진 검은 바다에 홀로 있다. 한줄기 빛에 의지해 바다로 들어간다. 발걸음마다 물결이 동그라미를 그린다. 수면에 빛이 닿으면 비늘이 빛난다. 1미터 앞 물속 검붉은 돌을 본다. 돌이 꿈틀한다. 돌이 눈을 뜬다. 눈을 끔벅이고 쏘아본다. 나는 랜턴으로 돌을 비추며 가까이 간다. 수박만 한 돌이 다리를 쭉 펴고 크기를 과시한다. 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기세에 눌려 돌을 잡지 못한다. 너울이 허리춤에서 출렁인다. 돌은 노닐 듯 유유히 헤엄친다. 나는 눈으로 돌을 쫓는다. 돌은 멀어지고 그녀가 울면서 다가온다. 그녀가 연락을 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프리마켓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내가 팔찌 만드는 걸 오래 지켜봤다. 나는 쩔쩔매며 팔찌를 만들었다. 그녀는 혼내듯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싸게 팔면 안 돼요, 싸구려 태국 팔찌 같잖아요.”

프리마켓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팔찌 고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왔다. 그녀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얻었다. 그녀 몸에서 젖비린내가 났다. 그녀 손이 내 손에 닿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그녀 손가락이 내 손등에 난 털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아주 오랜만에 야릇했다. 웃음을 참느라 입을 앙다물었다. 그녀는 팔찌 고리를 완성하고 자기 팔목에 팔찌를 꼈다.

“예뻐. 예뻐요. 이거 살 게요.”

나는 그녀에게 팔찌를 선물했다. 그녀는 끝까지 돈을 주려고 했다. 나는 끝내 돈을 받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못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바다가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다. 달 없는 오늘밤 기필코 문어를 잡아야겠다. 비록 보잘것없는 문어일지라도 나에겐 성공이 절실하다. 울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해는 수면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 속으로 녹아내렸다. 경계가 희미해진 바다 끝에서 검은 실루엣이 걸어왔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부가 기어이 나타났다. 부부는 계약기간이 열 달 넘게 남았는데, 당장 집을 비우라고 했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여자는 웃었고 남자는 욕을 했다. 경우에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남자가 돌을 던졌다. 돌이 목을 스쳤다. 남자는 내 멱살을 잡아 발을 걸어 쓰러뜨리고 끌고 다녔다.

“뭐 이 개새끼가, 쥐뿔도 없이 비실거리는 거, 집까지 내줬는데. 너 죽고 싶어! 너 내가 제주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든다.”

남자는 경찰들 앞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욕설을 퍼부었다. 경찰이 사진을 찍었다. 목과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경찰차에 타는데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내 집을 방문하는 길이었다. 그녀 손에는 김치와 생수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왔다. 나를 보고 그녀는 울음을 쏟았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합의금 좀 받고 끝내라고 했다. 경찰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가 대신 말했다.

“사람 때리는 인간, 절대 용서 못해요.”

나에게 한 말인지 경찰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보호자처럼 나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병원비도 그녀가 계산했다. 상처가 아프진 않았다. 마음이 쓰라렸다. 병원에서 나와 길에 섰다. 막막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더 좋은 집 구해요. 내가 구해줄 게요.”     


어제 해질 무렵 집주인을 소개해준 할머니가 맨손으로 잡아 올린 문어를 봤다. 문어는 할머니 팔뚝을 휘감으며 힘을 썼다. 해녀할머니가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봉지는 살아서 꾸물거렸다.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다. 별빛 하나 없는 밤하늘이 될 것 같다. 먹물에 물든 오늘 밤엔 기필코 문어를 잡고 싶다.      


돌이 눈앞에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길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다. 혼자서는 옮길 수 없는 큰 돌이다. 돌이 나를 노려본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봉지를 비집고 나온 문어 다리를 물어뜯는다. 조개껍질과 모래가 씹힌다. 이가 깨져도 상관없다. 나는 우물거리다 꿀꺽 삼킨다. 좋은 일이 생기면 뒤이어 안 좋은 일이 이어졌다. 며칠 전 나는 뒷집 남자에게 불편하니 밤늦게 찾아오지 말라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뒷집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만취한 남자는 담배를 휘저으며 비틀거렸다.

“어이, 어이, 있는가? 애인도 있는가?”

남자는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돈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들놈, 딸년 유학중인데 1년에 1억씩 든다. 나 2억짜리 보트 있는데 함 타보고 싶나?”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돈, 돈이 인격이야. 남잔 돈 없으면 바닷물에 코 박고 직여야 된다. 와? 돈 없는 남잔 고자거든. 니, 니 돈 있나? 돈도 없는 게 여잔 무슨?”

“돈 없어도 행복한 사람 있어요.”

“행복? 행복은 개뿔. 매달 이자내느라 뼈가 녹는다. 씨발.”

“그만 일어나시죠. 술 드시고 불쑥 찾아오는 거 불편하네요. 다신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니, 나, 무시하나? 씨발놈아, 입구, 돌담, 막는다.”

“맘대로 하세요. 당장 나가요.”

“에이, 그러지 말고 나랑 얘기 좀 해요. 나 외로운데.”

나는 문을 소리 나게 열었다. 남자는 담배꽁초를 탁자에 비볐다. 몸을 앞뒤로 흔들 뿐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남자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놔. 씨발. 내가 뭘 잘못했어? 엉? 집에서도 쫓겨나고. 돈, 돈 있으면 뭐해. 씨발.”      


심장이 날뛴다. 이성보다 앞서 달리는 감정은 브레이크를 모른다. 극한의 감정에 점령당한다. 살의다.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부숴버리고 싶다. 도끼로 돌을 내리치거나, 뒷집 남자를 박살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뒷집 남자 소유의 땅을 서너 발짝 밟아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현실이 참담하다. 돌이 눈을 뜬다. 거지같은 게 잘난 척은……. 비웃음 섞인 바람이 등을 민다.      


도끼를 움켜잡는다. 도끼가 하늘을 찌른다. 나무팔레트를 내리친다. 쪼개진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돌에 부딪친 도끼에서 불꽃이 핀다. 나무 쪼개지는 소리에 흥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나는 분노가 지칠 때까지 도끼를 휘둘렸다. 바람이 세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끼를 던지고 난로를 피운다. 폭우가 쏟아진다. 바람을 탄 빗줄기가 기총소사 하듯 창문을 때린다. 나는 랜턴을 밝히고 아궁이에서 샘물처럼 올라오는 빗물을 퍼낸다. 무릎정도까지 찼던 빗물은 한 시간이면 다시 차올랐다. 비가 그칠 때까지 한 시간마다 빗물을 퍼내야 했다. 내게 용기를 심어준 그녀는 왜 연락을 끊은 걸까.     


한전 설치기사는 혀끝을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부공사부터 끝내야 전기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기사들이 돌아가려하자 그녀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등지고 마당과 집안을 둘러봤다. 잡초와 끊어져 뒤엉킨 전기선이 흔들렸다. 그녀는 계속 서럽게 흐느꼈다. 기사들은 말을 잃고 얼어붙었다. 어제 한전에서 나온 여직원도 안 된다고 했다. 내부전기공사부터 하라고. 세월호참사 때문에 안전이 우선이라며 이 상태로는 전기설치가 불가하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여기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전기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고 호소했다. 차마 돈이 없어 내부전기공사를 할 수 없다고 말하진 못했다. 가진 게 없을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내 친군 연탄불 피워놓고 자살했어요.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간 한 학생은 세월호에 자신이 없었던 현실을 한탄했대요. 자기가 죽어서 보험금을 탔다면 힘든 엄마와 동생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서요.”

필요 없는 말이었다. 비루한 언어는 높았지만 나약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입매를 일자로 만들고 여직원을 봤다. 여직원은 내 눈을 피해 곧 울어버릴 것 같은 그녀를 봤다. 여직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내일 긴급으로 처리해 전기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오후에 다시 올 게요. 집 정리하고 계세요.”

나이 많은 기사가 정적을 깼다. 그 기사는 인상을 구기는 젊은 기사의 입을 막으며 돌아섰다. 그녀는 말을 하려다 말고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기사들이 멀어지자 그녀는 나에게 속삭였다.

“해준다는 거죠. 다시 온다는 말?”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허리까지 올라온 잡초를 베며 끄덕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허리를 세우고 그녀를 곁눈질했다. 어느새 그녀도 낫을 잡고 잡초를 베고 있었다. 십년 넘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폐가였다. 하수도가 없어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아궁이에서 빗물이 올라오는 집이었다. 나는 전기와 수도만 있으면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당장 집세도 필요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집을 고치는 조건으로 1년 치 연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마당까지 들어왔다. 법원에서 보낸 편지를 건네며 본인임을 확인했다. 나는 사인을 해주고 봉투를 뜯었다. 겁 많은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담주에 재판을 한대요, 다 잘 될 거예요.”

나는 그녀 어깨를 쓸어주었다. 둥글고 좁은 어깨에서 뼈가 만져졌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남자는 연락이 없었다. 사과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남자는 폭행으로 벌금 이백 만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나는 보증금과 연세를 돌려받기 위해 소장을 접수했다. 남자가 법원에 보낸 답변서가 나에게 송달됐다. 온통 거짓뿐인 답변서를 읽으며, 나는 인간의 치사함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모든 잘못이 내게 있으니 한 푼도 돌려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초조해졌다. 그녀 역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후에 다시 올 게요. 기사의 말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오후에 다시 와서 전기를 연결해준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뒷집 이층집 부부가 찾아왔다.

“어이, 이사 왔는가? 이집 얼마에 샀노? 우린 이년 전에 십억 줬는데, 지금 두 배쯤 올랐나.”

다짜고짜 말을 놓는 남자의 허세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반응이 없자 남자는 흥미를 잃은 듯 여자를 잡아끌었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천박한 사람들……. 저기 와요.”

그녀가 발을 구르며 손뼉을 쳤다. 설치기사는 이미 완벽한 설계도가 그려진 일을 하듯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나이 많은 기사는 전깃줄, 전등, 스위치, 콘센트를 사왔다. 계량기를 달고 전봇대에서 전기선을 연결하기까지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방에 등을 달고 스위치를 올렸다. 방에 한낮이 찾아왔다. 와아. 그녀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나이 많은 기사도 기분 좋게 웃었다.

“이제야 맘이 편해지네요. 여자 분이 하도 서럽게 울어서 놀랐거든요. 이거 다 제 돈으로 산 겁니다. 빵도 좀 먹으면서 하세요.”

나이 많은 기사가 그녀에게 하얀 종이봉투를 건넸다. 그녀는 봉투를 받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기사에게 건넸다.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요.”

기사는 손사래를 치며 한 발짝 물러났다.

“제 마음 돈으로 사려고요. 이 돈 받으면 기쁨이 반토막 납니다. 제주에서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 살면 됩니다.”

기사는 친구를 대하듯 다정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짧은 순간 나는 평소 잊고 지냈던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꼈다. 나는 달아오른 눈시울을 비볐다.     


비가 그치고 바람도 멈췄다. 달빛 없는 그믐밤이다. 난로에 나무를 채우고 썰물시간에 맞춰 바다로 나간다. 돌의 빈정거림을 듣기 싫어 돌을 외면한다. 집 앞 원담은 발목까지 물이 빠졌다. 원담밖 바다는 허리까지 물러났다. 나는 바지장화 어깨끈을 바짝 조이고 헤드랜턴을 밝힌다. 한줄기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길을 낸다. 두어 발짝 앞에 랜턴을 비추고 길을 만든다. 원담 밖에서 불빛이 휙 지나간다. 고개를 든다. 빛은 순식간에 원을 그리고 사라진다. 발밑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바다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나를 응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비록 일 년에 한 두 번뿐이었지만 내 방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힘들지? 도움 못줘서 미안하다.”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란 말로 대화를 끝냈다. 아버지는 용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에서 나갔다.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는 문어를 한 번도 사드린 적이 없다. 일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마주앉아 문어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 아버지의 병원비와 장례비용을 나는 한 푼도 보태지 못했다. 아버지가 급성대동맥박리로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여겼던 시험에 또 떨어졌다. 그날 밤 내일의 불안을 견뎌낼 용기가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어리석은 마음, 그 마음을 비웃듯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앞으로만 끝없이 나아갔다. 나는 그 견디기 힘든 시간을 버티기 위해 자해를 하듯 자위를 했다. 발기 못하는 몸을 어르고 달래 세 번이나 사정을 했다. 그리고 울었다. 그랬다. 순간적 쾌락이 절망을 잠재우지 못했다.

아버지가 문을 노크했다. 문고리를 돌렸다. 문은 잠겨있었다.

“식탁에 돈 있다.”

식탁에는 오만 원짜리 두 장이 놓여있었다. 아버지가 앰뷸런스에 실려갈 때 어머니는 무능한 아들을 깨우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이 돈을 벌지 못하는 아들 때문이라는 어머니의 원망. 덕분에 나는 점점 더 빠르게 용기를 잃어갔다. 또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누나의 한탄이 장례식 첫날부터 계속됐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목장 하면 50만원이면 된다는데 대출받지 말고.”

“싫어! 남들 하는 만큼, 보란 듯이 할 거야.”

누나는 시청 과장이었다. 누나는 천만 원이 넘는 돈으로 분당에 납골묘를 샀다. 돈으로 체면을 사야한다는 논리는 그럴 듯했다. 돈이 없는 나에게 체면은 없었다. 돈에 얽혀 어긋난 인간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생긴 돈문제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실패는 끝이라는 진실이 나를 절벽으로 몰아세웠다.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도망치거나 선택해야 했다. 둘 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서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10년 넘게 사람은 나를 공격하는 적이었다. 생활고는 밑바닥까지 옹졸하게 만들었다. 생활고는 도무지 면역력이 생기지 않았다. 오백만원 상금을 받고 시작한 시인생활은 오년동안 열매를 맺지 못했다. 시라는 씨앗을 정성껏 뿌렸지만 시는 돈으로 싹을 틔우지 못했다. 마지막 탈출구로 여겼던 시험도 오년 내리 실패했다. 그 시간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고, 그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체념이 각인됐다. 가난은 죄라는 세상의 다그침에 숨이 막혔다. 가난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가난은 내 책임이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아버지 유골함을 들었을 때 나는 유골함을 놓칠 뻔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손깍지를 끼고 가슴에 부둥켜안았지만 유골함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유골함을 놓쳐 아버지를 산산조각 깨뜨릴 것 같았다. 나는 유골함을 내려놓고 아버지에게 빌었다.

“아들노릇 못해서 죄송해요.”

울음이 터졌다.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였다. 다시 유골함을 안았을 때 아버지는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아침 여덟시부터 열한시까지 골목마다 전단지를 붙었다. 오후 한시부터 열 시간동안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포장했다. 일하는 동안 머릿속은 오로지 돈 생각뿐이었다. 춥다. 배고프다. 힘들다. 내 안의 실패자가 투덜대면 욕을 퍼부었다. 돈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삼백만원을 모았다. 서른이 넘은 남자가 가진 재산치고는 초라한 액수였다. 그래도 불편을 견딜 수만 있다면 충분하리라 믿고 제주로 떠났다. 자리를 잡으면 중고책을 보내주겠다는 선배가 있었고, 인터넷으로 배운 팔찌를 만들어 프리마켓에 나가 팔면 밥은 굶지 않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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