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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19. 2021

혁명의 저녁_1

특별하지 않아 좋은 아침과, 무탈하게  끝날지 모를 저녁을 위해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다. 모닝방귀 뿌웅, 아직 괜찮은 나에게 안녕. 깃털처럼 두둥실, 공중부양해볼까. 뱃가죽 벅벅 긁고 뼈만 남은 다리를 턴다. 쿵쿵 짝, 쿵쿵 짝.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면서 텐션을 올린다. 방은 깜깜하다. 불을 켜기 전이다. 바퀴벌레야, 도망가라. 압사당할지 모른다. 꼭꼭 숨어라. 튀겨먹을지 모른다. 부활하듯 아침이 왔다. 볕 들지 않아도 몸이 안다. 눈을 뜨면 우주는 사라지고 현실이다. 이제 일어나 어둠에서 빛으로, 지하를 탈출해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리를 걷다가 반기지 않는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하고, 덤덤하게 욕을 먹자. 배가 부를까, 속이 아플까. 아침이 왔는데, 눈도 못 뜨고 누워서 막걸리에 취한 노숙자처럼 중얼거리는 꼴이라니. 한심하다. 밤새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린 후유증이 크다. 특별하지 않아 좋은 오늘의 아침과, 무탈하게 끝날지 모를 오늘의 저녁을 위해, 힘!     


임계장이 또 뛰어내렸다. 잘못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는 갑질이 판치는 세상. 인간아. 人, 사람 인자를 봐라. 사람은 서로 기대며 사는 거란 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못 되게 굴면 좋냐.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아파트경비원 따위가 아파트주인에게 사람대접을 받으려 하다니. 내가 해봐서 아는데, 경비원은 주인이 부르면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는 거였다. 나는 이제 임시 계약직 노인장도 아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내는 하루살이다. 아파트주인에게 아파트경비원은 머슴이란다. 오줌 눌 자격도 없단다. 차라리 사표를 던지지. 먹고 살아야, 막내딸 시집도 보내야 하고요. 그래도 살아야지.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을까요. 너무 가슴이 아파요. 몰랐는가? 모두가 비웃는다. 세상은 늘 강자의 편이었다. 사회적 타살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그때뿐이다. 곧 사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해지고, 같은 일은 반복되고, 세상은 다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이 된다. 돈이 사람을 명품으로 만드는, 나만 잘살면 그만인 이기적 세상이 됐다. 그렇다. 혁명이 필요한 때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죽음으로 억울함이 풀리겠는가. 풀린다 한들 무엇이 남느냔 말이다. 어리석은 필부의 치기다. 나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죽지 않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아이고, 흉하다. 그만 투덜대고 뚜껑 없는 관에서 일어나 밥벌이전쟁에 참전해야 한다. 우주를 연구할 인물은 나 말고도 차고 넘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지 모르는 고양이를 위해 배낭에 사료를 챙기고 거리로 나간다. 느린 걸음엔 진한 그림자가 따라온다. 내 답답한 걸음을 무던히 견뎌주는 그림자가 참 고맙다. 특별하지 않게 시작한 아침이, 특별하지 않은 저녁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아침은 벌써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좋다. 나는 코로나로 마스크를 강제하기 전부터 항상 마스크를 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하는 코로나시국이 편하고 좋다. 황사, 미세먼지, 바이러스가 무서워 마스크를 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골방에 갇혀 유배됐지만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을 수 없기에 얼굴을 가렸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사람들과 멀어져야 했다. 사람들과 2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살아도 괜찮다고 위로해준, 길에서 만난 고양이만으로 체온은 충분했다. 앞발에 검은 무늬 양말이, 머리가 커 대구빡, 사람과 마주쳐도 어슬렁, 차가 지나가도 어슬렁, 슬렁이. 몸이 무거워 점프 못하는 돼지. 식구가 된 고양이들과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김밥천국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사람에 대한 예의로 사장이 목례를 한다. 나는 두 손으로 메모장을 전달한다. 메모장을 받은 사장이 짧게 탄식하고 욕을 한다. 나에게 한 것 같진 않다. 내 손으로 돌아온 메모장을 들고 나는 돌아선다. 배낭이 죽은 사람을 업은 듯 처진다. 쇠로 바느질한 어깨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메모장, 절반쯤 버리고 싶다. 네일숍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하고 두 손으로 메모장을 전달한다. 젊은 아가씨가 두 손으로 메모장을 받는다. 고개가 더 숙여진다. 마스크를 내린 아가씨가 침을 튀긴다. 비말 수백만 개가 날아와 얼굴에 박힌다.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는 무료라고 했다. 병원비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아침밥 대신 배터지도록 욕을 먹었다. 자주 겪는 일인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모두가 힘든 세상, 총알대출. 돈을 막 드립니다. 막, 자는 골드바에 볼드체로 새겨진 붉은색이다. 총알대출 메모장은 호응이 좋지 않았다. 파리를 쫓듯 들어오지 못하게 손사랫짓하는 건 그나마 괜찮다. 대뜸 욕부터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면접을 볼 때, 총알대출 사장은 영업철학을 강조했다. 오토바이 타고 명함 천 장 날려봐야 오더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메모장을 전달해야 효과가 있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배낭을 풀고 다리를 편다. 어깨를 돌리며 어디선가 숨어서 나를 감시하고 있을 사장 조카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일을 시작한 첫날 메모장 절반을 폐지 줍는 할머니 손수레에 버리다 조카에게 걸렸다. 한 번만 봐달라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우리 식구 다 굶어죽는다고, 나는 두 손으로 캔커피를 건네며 조카에게 빌었다. 조카는 너그럽고 마음씨 착한 청년이었다. 사장에게 말하지 않고 일을 계속 시켜주었다. 그일 이후, 출근하는 날이면 스타벅스 캔커피를 조카에게 조공해야 했다. 욕을 먹으니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저녁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30킬로그램 넘는 배낭을 견디며 다시 길을 걷는다.      


주유소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적이 있다. 벤츠를 모는 젊은 애기엄마가 봉지에 넣지도 않은 기저귀를 내밀었다. 아이는 뒷자리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기름때에 손이 부르틀 일은 없을 터였다. 이런 건 직접 버리세요, 말하려다 참았다. 기저귀를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뒤통수를 찌르는 목소리. 어이, 저기요. 나는 돌아섰다. 왜 기분 나쁘셔요? 사장이 달려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다고 사과드려. 사장은 평소처럼 존대하지 않았다. 사장이 내 뒷덜미를 잡았다. 사장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버텼다. 한 번 굴욕은 알고도 모른 척 참았는데, 두 번 굴욕은 알고는 참을 수 없었다. 잘못이 없는데 왜 사과를 강요하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장 손을 뿌리치고 유니폼을 벗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음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다시 일을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다. 생존이 먼저였다. 돈을 벌어야 했다. 사람을 보면 미워지고, 미운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손이 덜덜거렸다.      


무료 심리상담을 받았다. 자본주의 끝판왕, 우리나라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상담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열의 없는 상담사에 내담자의 의지는 일방통행일 터였다. 나는 설문지에,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 그래서 사람이 밉다. 사람인 내가 싫다. 몸도 마음도 쉬이 지친다. 너무 힘들고 너무 괴롭다. 제발 도와달라고, 답을 알려달라고 썼다.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글씨는 신경질이 잔뜩 묻어있었다. 종이와 싸우며 눈도 손도 없는 사람을 그렸다. 창문도 문도 없는 집을 그렸다. 앙상한 가지만 있는 나무를 그렸다. 상담사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쟀다. 그 시간을 견디는 내 시간은 벅찼다. 연필은 조울증에 걸렸다. 직선은 어긋났고 곡선은 삐뚤어졌다. 상담사는 설문지에, 사람을 보지 않네요. 사람을 보세요. 나쁜 사람도 많지만 좋은 사람도 많아요. 긍정적인 생각 많이 하시고, 마음을 활짝 열어보세요. 유통기한 지난 답을 써주고,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면 안 되고, 다음부턴 비대면이라고 했다.      


마음이 힘들면 몸이 아프고, 몸이 힘들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 편하고 몸 편한 일을 찾고 싶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수시로 생각했다. 부질없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더 힘들고 아프게 했다. 흙수저 물고 태어나 부모찬스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아빠는 얼굴조차 모른다. 학벌이 없으니 인맥도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생, 참 고달프다. 나는 헬조선을 향해 욕을 발사한다. 좆같은 세상, 망해라. 명중이다. 속이 시원해진다. 젊을 땐 성공해 유명해지면 배고픔 잊고 온화한 눈빛으로, 화 한 번 내지 않고 살아갈 줄 알았다. 노인이 돼서도 밥벌이를 걱정하며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한때는 교수님 소리에 우쭐거리며, 거들먹거린 적이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이름 버리고 무명으로 살아가리라, 결심한 순간 얼굴은 자동으로 변했다. 살아서 먹고, 싸고, 자고, 숨 쉬는 모든 생명활동이 지겨워 오욕칠정(五慾七情)이 사라진 표정으로. 마스크를 하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 인생 아무도 모른다.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하루 할당량을 다 돌렸다. 사장 조카에게 일을 끝냈다 보고전화를 했다. 나는 썩은 숨소리 대신 귀를 막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혁명에 실패한 아침은 쫓기는 저녁이 됐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 눈빛이 아우성쳤다. 힘들어 죽겠다고, 나 혼자 죽긴 싫으니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모두가 힘든 세상이 왔다. 혁명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천원에 여섯 마리를 주는 붕어빵집이 있다. 서울에 이렇게 싼 붕어빵은 없다. 은신처에 숨어 붕어빵과 삼백원짜리 자판기커피를 곁들이면 나쁘지 않은 한 끼가 된다. 노점 앞에서 지갑을 열었다.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주인은 고개를 가로젓고 봉투에 담긴 붕어빵을 풀어주었다. 외상으로 달라고 하려다 말았다. 나는 내 경제력을 탓하며 돌아섰다. 나는 연신 주억이며 은행을 찾았다. 잔액 37,501원. 풉, 웃음보가 터졌다. 덜컥, 겁이 나야 정상인데 웃음이 났다. 어차피 나는 정상이 아니니까 괜찮다. 0이 한두 개쯤 더 있었으면 좋겠다. 액정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데 뒤에서 헛기침소리가 났다. 나는 삼만원을 찾아 지갑에 넣었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심장이 파닥거렸다. 문을 열고 나와 거리에 섰다. 생을 다한 꽃잎이 바람에 날렸다.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나쯤 잡아보려 했는데 잡히지 않았다. 죽을 것 같던 허기는 사라졌다.      


나는 한강을 따라 걸었다. 뒤꿈치가 끌리고 허리가 무너졌다. 햇살은 담요 같고 바람은 깃털 같은데 몸뚱이는 바윗돌 같았다. 바다로 떠나는 강물을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웃음꽃 핀 아빠가 날리는 연을 쫓는 아이 얼굴에 근심은 없었다. 종종걸음은 날렵하게 삑삑거렸다. 아우성은 내 마음속에서만 난장을 피우고 있었다. 세상을 원망하는 루저는 나 혼자였다.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하루에 세 개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 담배연기에 한숨을 엮어 내뱉고, 강 아래를 바라보았다. 강가에 고등학교 일학년쯤 돼 보이는 학생 두 명이 꽁초를 줍고 있었다. 코로나로 수천 명씩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꽁초를 주워 피는 사람을 보게 될 줄 몰랐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다. 돈이 있으면 살 수 없었고, 살 수 있으면 돈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왜 돈이 없느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차림새는 꼬질꼬질했지만 눈매는 착해보였다.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마음을 다잡고 세상과 맞설 수 있을 터였다. 나는 키 큰 학생 엉덩이를 툭 치고 담뱃갑을 건네주었다. 손을 내밀지 않아 강제로 손에 쥐어주었다. 키 큰 학생이 친구에게 한 개비를 꺼내주고 두 손으로 담뱃갑을 돌려주었다. 둘 다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요즘 학생들 같지 않았다. 틀딱, 뭔데 꼰대질이야. 성질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둘은 선생 앞에서 혼나는 학생처럼 담배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 손을 넣고, 엄지와 검지로 한 장씩 세다가 두 장을 꺼냈다. 키 큰 학생에게 이만 원을 주고 밥을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말린 어깨를 폈다. 질풍노도의 시기, 한번 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지나고 나면 다 그리운 추억이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허둥대며 돌아섰다. 내 뒷모습은 희망적이어야 했다. 나는 당당한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다. 발걸음이 도망치듯 빨라졌다. 지갑 속에 남겨진 만 원이 나를 비웃었다. 나잇값도 못하는 가난뱅이 늙은이라고.      


큰 개와 잔디광장을 뛰어가는 남자는 즐거워 보인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 시든 아침에 저녁이 피어나고 있다. 벤치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랜다. 눈을 감고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 피아노소리가 들려왔다. 영양실조에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듯했다. 위로였다. 나는 눈을 뜨고 피아노 치는 여자를 건너보았다. 손톱만큼 작아보였다. 소리는 우주를 품은 듯 웅장했다. 나는 피아노가 안 괜찮은 마음을 괜찮게 만드는 신비를 맛보았다.        


나 여기서 멈출래요. 그녀는 허리에 감긴 내 손을 풀어내며 무심하게 말했다. 아기자기한 풍경이 아득해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욕망에 만족이란 없다. 내 만족을 위해 그녀의 삶에 더는 족쇄를 채울 순 없다. 나에겐 그녀를 잡을 권리가 처음부터 없었다. 떳떳하지 못한 손은 오그라붙었다. 용서해 달라 무릎을 꿇을 용기도 없었다. 그녀는 작별인사 없이 떠났다. 3년이란 세월을 아슬아슬하게 함께한 그녀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마지막 이별여행을 애걸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나는 괜찮았을까.      


그리운 게 없는 요즘, 벤치에 앉아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피아노소리가 생각났다. 사이렌의 속삭임이었다. 피아노는 볼륨을 높여 소음을 없앴다. 피에 아들레날린이 솟구쳤다. 사람과 부딪치면 싸울 것 같은, 기분 나쁜 흥분감이 아니었다. 설렘이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일을 마치면 붕어빵을 사서 부리나케 서울숲으로 갔다. 붕어가 한 마리라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살아있는 따뜻한 빵을 그녀 옆에 몰래 올려놓고 소리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매혹적인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 소리를 쫓아갔다. 가까워지다 갑자기 소리가 끊겼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더듬었다. 도망치는 소리의 꼬리를 잡았다. 나만을 위로하는 피아노가 다시 감미로운 연주를 시작했다. 아들레날린에 점령당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펴고 피아노에게 갔다. 사회적 거리 따위 지키고 싶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듣고 보고 느끼고 싶었다.

너 들었니? 여기서 맨날 피아노 치던 언니 죽었대. 교통사고.

인기척에 놀란 여자 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나를 위해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바람에 상한 의자는 사무치게 외로워 보였다. 왜 전처럼 나를 위해 연주하지 않는지, 억울했다. 그저 텅 빈 눈으로 피아노를 멍청하게 바라보며 서있었다. 생각을 긍정하고, 마음을 열어, 새싹 한 잎 어렵게 돋아났는데, 짓밟혀버렸다.      


지갑에서 천원을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자마자 붕어빵 한 마리를 통째로 입안에 욱여넣었다. 불에서 갓 뛰어오른 듯 뜨거웠다. 입천장이 벗겨졌다. 상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껍질과 같이 두어 번 씹고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고소하고 달았다. 살 것 같았다. 두 개째를 입안에 넣고 돌아서는데 할아버지,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붕어빵이 10마리 넘게 들어있는 큰 봉투를 한 남자가 내밀었다. 나는 봉투를 받아들고 기억을 더듬었다. 키 크고 선한 눈매의 고등학생, 누구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낯선 얼굴이었다. 학생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엄마가 고맙단 말 전하래요. 할아버진 언제든 붕어빵 꽁짜로 드린대요.

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넌지시 주인을 훑어보았다. 주인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붕어빵을 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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