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되는데 사케는 왜 안돼?

by sakerica
와인은 되는데 사케는 왜 안 되냐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아직 시작도 제대로 안 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와인 바는 넘치는데

서울의 핫플레이스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와인 바를 찾을 수 있다. 성수동, 한남동, 연남동. 내추럴 와인을 내세운 트렌디한 공간들이 넘쳐난다.


와인 구독 서비스, 와인 페어링 다이닝, 와인 클래스.


'와인'이라는 단어 앞에 붙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시장이 크고 소비자의 수요가 탄탄하다는 거겠지.


반면, 사케는? 사케 전문 바도 한국에 있기는 하지만, 유명한 곳은 양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사케 구독 서비스? 들어본 적 없다.


사케 페어링 다이닝? 일부 일식집에서 시도하고 있지만, 일반인이 즐기기에는 허들이 너무 높다.


사케 클래스는 주로 사케소믈리에나 업주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케를 알아가는 클래스 비스무리한 건 아마 내가 운영하는 모임이 가장 크고 오래되지 않았을까?



와인도 사케도 같은 '발효주'인데, 어쩌다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 걸까.






구조적 차이가 만든 격차

와인과 사케의 대중화 격차는 단순히 맛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교육 인프라의 차이.

와인에는 WSET, 소믈리에 협회, 각종 아카데미가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 레벨 1부터 마스터 소믈리에까지, 명확한 커리어 패스가 존재한다.


사케는? SSI 키키사케시와 WSET Sake, JSA 사케디플로마 정도가 전부다.

한국에서 사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교육이 없으니 전문가가 적고, 전문가가 적으니 시장이 커지지 않는 악순환이다.



둘째, 유통의 차이.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유통망이 확립되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호주. 산지가 다양하고, 수입사도 많고, 대형마트에서도 수백 종을 갖춰놓고 판다.


반면, 사케의 산지는 일본이다. 최근 미국, 호주 등에서도 사케 양조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미미하다. 수입사도 와인이나 양조장에 비해 소수이고, 와인만큼 대중화되지도 않았다.



셋째, 가격대의 문제.

한국에서 와인은 1만 원대부터 수백만 원까지 폭넓은 가격대가 존재한다. 편의점 와인으로 입문해서 점차 올라가는 자연스러운 동선이 만들어져 있다.


사케는? 한국에서 사케를 사려면 최소 2~4만 원은 생각해야 한다. 일본에서 1,500엔(약 15,000원)에 살 수 있는 사케가 한국에서는 5~6만 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입 관세, 주세, 유통 마진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여기에 업장 마진까지 더해지면 8~10만원대가 되어 소비자에게 닿는다. 일본은 워낙 쉽게 오갈 수 있다 보니 사케는 일본에 가서 사 온다는 사람들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와인과 위스키 또한 이와 같은 과정으로 비싸지는데, 업장에서 주문할 때에는 가격에 대해 크게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결국에는 인식이 개선되고 시장이 커져서 찾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입문의 문턱이 높으니 '일단 한 번 마셔볼까' 하는 가벼운 시도가 어렵고, 잘 모르기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거나 주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적 선입견이라는 벽

구조적 문제 외에도, 사케에는 '문화적 선입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와인은 영화, 드라마, 문학에서 와인은 항상 우아하게 등장한다. '세련됨'과 '교양'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사케는? 한국 미디어에서 사케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이자카야에서 떠들며 마시는 모습이거나, 일본 여행 중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모습이다. 이제는 사케도 와인잔에 따라서 우아하게 즐기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이 또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듯 하다.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일본 문화를 즐기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과거보다 많이 유연해졌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일본 술을 왜 마시냐"는 반응이 나온다. 와인에는 없는, 사케만의 고유한 진입장벽이다.






그래서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있다. 분명히 있다.

한국의 사케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에 관심이 있어서"라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와인은 좀 마셨는데 새로운 걸 찾고 있어서"라는 사람이 늘었다. 와인에서 사케로 넘어오는 동선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사케가 와인의 뒤를 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와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중화를 하려 한다면 영원히 2등일 것이다.


사케만의 매력, 즉 쌀이라는 친숙한 원료, 일본 각 지역의 풍토가 담긴 다양성, 온도에 따라 변하는 맛의 스펙트럼. 이런 것들을 사케만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와인과 나란히 설 수 있지 않을까.



와인은 되는데 사케는 왜 안 되냐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아직 시작도 제대로 안 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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