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와 싱가포르의 밤
햇빛 쨍쨍한 한낮에 마시는 커피보다 노을을 보며 여유롭게 마시는 맥주를 더 사랑한다. 일상 속에선 그렇게 좋아하는 해질녘 노을을 감상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얼마 전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잔뜩 보고왔다. 선셋이 아름다운 코타키나발루와 밤이 아름다운 싱가포르로.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꾸는 여느 또래 친구들, 직장인들처럼 나도 여행을 좀 더 가볍게 생각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좋아하게 된 말 '삶은 여행'. 여행하듯이 산다는 건 순간 순간을 즐기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순간 순간을 아쉬워 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 한국에서 보통의 일상이었다면 38도를 웃도는 날씨에 20분쯤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야시장이 왠말인가. 여행지에서는 덥지만 즐거웠고, 부지런히 걸었다.
KK Waterfront 로 가면 다양한 시장과 노천 좌석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많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선셋을 보며 걸어갔다. 이 부근에 제주항공 라운지가 있는데, 제주 항공 고객이 아니어도 공항 픽업이나 짐보관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 덕분에 마지막날 체크아웃 후 짐보관 서비스로 짐을 맡기고, 남은 여행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해변에서는 시내와는 또 다른 선셋을 볼 수 있었는데, 말레이시아는 우버가 활성화 되어 있어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저렴하게 해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해질녘 바닷가에는 항상 사람이 많고 표정이 모두 밝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르르 녹는 풍경이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은 며칠 내내 봐도 새롭고 아름다웠다. 낮에는 스킨스쿠버나 스노쿨링 같은 레포츠를 여행 내내 하고 저녁에는 선셋을 보러 갔다. 하늘이 점점 빨갛게 물들면 지평선이 점점 더 진하게 보였다. 우리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며 거의 엉엉 울기 직전까지 충만해진 감성에 젖어 노을을 한참 보았다. 그러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파랗고 환한 하늘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해서 한참을 봤다.
다음 여행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하니 이제 막 해가 지려는 시간 이었다. 아직 깜깜 하진 않지만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이 시작되는 아주 잠깐의 시간.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very small, very safety, very expensive
친절한 우버 기사님이 싱가포르를 설명하는 세 가지 단어는 작고, 안전하고, 비싸다는 것. 이 말은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동안 실감 할 수 있었다.
우버로 이동하는 잠깐 사이 해가 지고, 마리나베이샌즈에 도착해서는 코타키나발루와는 또 다른 도시의 야경에 감탄했다. 마리나베이샌즈 앞에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주변 금융가 직장인들이나, 요가 같은 운동을 하며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클락키는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더운 날씨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걸으면서 얘기하기도 좋았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클락키의 가게들도 다양한 컨셉이었다.
대학교 내내 붙어다닌 친구들이 모두 취업하고 맞는 연휴에 떠난 첫 해외여행이었다. 밤이면 맥주를 들고 모여 앉아 여행이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었을 속 깊은 얘기들도 나누고, 서로를 대견해하기도 하고 기뻐해주었다. 이번 여행의 밤은 늘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