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부터 20살까지 참 많이 좋아했던 남자 아이가 있었다.
순수한 감정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상대방을 힘들게 할 정도로 당시 많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었다.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그 친구를 볼 수 없었고, SNS 같은 걸 하는 친구도 아니다 보니 연락할 수 있는 경로도 없었다.
최근 그 시절 그 친구를 포함하여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 중 또 다른 친구1과 연락이 닿았다.
친구1과도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고서 부터는 거의 연락 없이 지냈던지라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고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자는 흔한 이야길 나누던 끝에, 친구1이 물어왔다.
'혹시 ㅇㅇ이도 보고싶니?'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거나 대화를 나눌 때면, 마치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면서 또 속으로 안 떠올릴 수가 없는 그 이름이 그렇게 단어로 한 글자 한 글자 쏟아져 나오는 것을 오랜만에 봤다.
'그 친구만 괜찮다면 같이 보면 좋지.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까 이제는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대답을 하였고, 정말로 그랬다.
그리고 정말 그런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를 하던 와중에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되었다.
그 친구에 대한 꿈을 원래도 한 번씩 잊을 만하면 꾸곤 했는데, 요즘 유독 많이 꾼다.
오늘도 꿈에 그 친구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고등학교 때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2와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
13여 년 만에 얼굴을 보는 것인 만큼 정말 어색하게 안부 인사를 묻고 겨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친구2는 자리를 비켜주려는 듯 일이 생겼다며 먼저 집을 나섰다.
잔뜩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쉰채 둘 다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TV만 바라보았다. 눈은 화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화면에 무슨 장면이 나오는지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선물로 가져갔던 사과와 배를 정리해 준다며 애꿎은 포장 껍질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잠깐 누워서 쉬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하고는, 내가 있는게 불편하구나. 내가 빨리 가고 그냥 편히 쉬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 슬슬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너도 편하게 누워서 쉬라고 다정히 웃어주고는 같이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정말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학생 때는 여자애들하곤 말도 잘 안 섞던 애가 먼저 손도 내밀 줄 알고, 많이 변했구나?
편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