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1992.10.13)
올해의 생일도, 어김없이 워룸에서 혼자 맞이했다.
홈쇼핑 MD가 본인의 상품을 팔기 위해 주어진 한 시간.
그 한 시간은 남편의 출근 준비와 아이들의 등교 준비로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커피 한잔 내려 마시며 소파에서 찰나의 여유로움을 즐기려는 꿀 같은 여덟 시 일 수도,
또는 늦은 퇴근을 마치고 뜨거운 물에 고단함을 씻어낸 채 맥주 한 캔 따놓고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기다리는 열 시 일 수도,
또는 모두가 잠든 새벽, 티비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목소리에서 고요한 위로를 받으려는 한시 일 수도.
나의 생일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자정에서 새벽 한 시까지.
원래의 워룸 (WAR ROOM)이라면 한 시간의 매출 목표를 하기 위해 콜 그래프를 노려보며, 미친 듯이 분당 수천만 원의 주문금액을 띄우기 위한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는, 그 장소의 이름에 맞는 전쟁 같은 한 시간이어야 했지만,
그날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콜 그래프 대신 생일 자정으로 넘어가는 초침과 분침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그려나갈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매해 생일마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 남자 친구의 귀엽고 치밀한 계획과 피땀 어린 노력은 FW 시즌마다 멘탈이 갈려버린 나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어주고, (한 마리의 쌈닭으로 진화해버린 나의 예민에도 굴하지 않는 남자 친구의 무던함과 굳건함에 무한한 사랑을 담은 존경을, 더 나은 사람으로 오래 곁에 남겠다는 다짐을.)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소중하고 반가운 친구들의 인사는, 태생이 외로운 나에게 커다란 위로와 온기가 되어주고 (내가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친구들에게 내가 소중한 의미라는 것은, 굳이 서로 말로 주고받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그 의미가 통하는 것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고마움이 있다)
평소면 8시에 잠이 들지만, 생일에는 케이크에 초를 붙인 채 껌뻑 껌벅 감기는 눈꺼풀을 붙잡으며 야근하는 생일자를 기다려주는 우리 가족, 그저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사실 울적함의 것들이란 상당히 지엽적인 감정이라, 나의 전부를 놓고 봤을 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채플린은 말했다- 내 인생도 흑자 혹은 미슐랭과 함께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현타를 제외한다면 평범해서 행복하고, 행복해서 평범한 하루하루임에는 확실하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라는 게 새삼 얼마나 감사하고 힘이 나는 의미인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몇십 년이라면, 그건 눈감았다 뜨면 지나가 있길 바라는 지난한 폭풍우가 아닌 나름의 재미와 운치가 있는 모험일 것이라고,
그렇게 새 십 년을 맞는 생일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30±1살,
[3) 나의 전부: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written by LEE HAEIN
@__ulmaire
이해인, born in 199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