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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22. 2017

#100.페티예의 하늘을 달리다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터키 #페티예 #패러글라이딩

#사클르켄트계곡 #2017년9월9일~10일


<터키 남서부에 위치한 지중해 도시 페티예.>

 터키에서 네 번째로 방문하게 된 도시는 지중해 옆 낭만의 도시 페티예. 이곳은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가격이나 알아볼 마음으로 여행사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향했다. 지도를 보니 가고자 하는 곳이 조금 멀다. 이럴 때는 평소 애용하는 돌무쉬를 타고 가면 된다. 돌무쉬는 동네 이곳저곳 또는 동네와 동네를 촘촘하게 연결해 주는 작은 미니 버스인데 가격도 거리에 따라 차등 지불하는 시스템이어서 매우 합리적이다.

 

<자고로 오토바이는 2인용에 셋이 타야 제맛.>

 돌무쉬에서 내려 미리 알아본 여행사로 걸어가는 내내 호객꾼들이 달라붙는다. 하지만 꿋꿋하게 그들을 물리치고 목적한 곳에 도착했는데 가격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호객꾼들의 제안을 받아 보기로 했다. 머릿속에 있던 금액과 가까워질 때까지 여행사를 옮기며 계속 물어보기를 반복하다가 최종적으로 패러글라이딩 + 유람선 투어 = 2인 460리라(약 145,000원)를 부른 곳과 계약을 했다.

<하늘을 날 준비를 마친 비행아재.>

 패러글라이딩 계약이 끝나자마자 아저씨는 어디선가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와 우리를 태웠다. 오랜만에 이인용 오토바이에 세명이 올라타니 여행 초창기 태국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그렇게 10분간의 라이딩이 끝난 후 오토바이는 유명한 패러글라이딩 샵 앞에 멈춰 섰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소파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한 뒤 샵 직원을 불러왔다. 직원은 가져온 종이에 인적사항을 적고 약속했던 돈을 받은 뒤 쪼리를 신고 온 나에게 신발 날아간다며 젤리 슈즈를 빌려 주었다. 준비가 끝나자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대기 중인 몇몇의 손님들과 함께 우리를 산꼭대기까지 데려다 줄 봉고차에 올랐다.

<발 아래로 펼쳐진 페티예의 기가막힌 풍경.>

 30분 정도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마을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산 정상에 도착했다. 간단한 장비를 착용하고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나를 아기띠로 맨듯한 모습의 가이드가 낭떠러지 근처에 섰다.


쓰리. 투. 원!


 나는 가이드의 카운팅 소리에 맞추어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그리고 더 이상 발을 디딜 땅이 없어진 순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발아래로 멋진 에메랄드 빛의 지중해 바다와 수려한 페티예의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매일매일 소란스러운 지상과는 다르게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뿐인 공중에서의 산책.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과 소피가 손을 잡고 함께 하늘을 걸었던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착륙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다가 박수를 친다. 민망.>

 낭만적인 비행이 끝나고 가이드는 재주도 좋게 해변 근처 공터에 정확하게 착륙을 했다. 그리고 장비를 챙겨 유유히 샵으로 걸어갔다. 방금 비행을 마친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방방 들떠 각자의 소감을 나누기에 바빴다. 남편은 가이드가 가르쳐 준대로 손잡이를 당겨 곡예비행도 해보고 지구가 떠나가라 소리도 지르며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안 탔으면 진짜 후회할 뻔!

<푸짐한 피쉬앤칩스는 언제나 고양이들과 나눠 먹어야 함.>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액티비티를 즐겼으니 다음은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갈 차례! 미리 알아봐 둔 피시 앤 칩스 맛집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아기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뒤엉켜 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다가 음식이 나오면 재빨리 뛰어와 다리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며 야옹야옹 주문을 건다. 그러면 '저 눈망울에 넘어가지 말자, 절대 주지 말자' 했다가도 어느새 잘 익은 생선 살코기 한 덩어리를 톡 하고 떨어트려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요망한 귀요미들 같으니라고!

<세젤맛 계란 요리의 장인을 만났다.>

 페티예에서 맞은 두 번째 날은 외곽에 위치한 사클르켄트 계곡에 가보기로 했다. 계곡에 가던 날 아침, 배를 든든히 채우기 위해 밥 먹을 곳을 찾는데 주일날이어서 그런지 문 연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무엇을 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을 연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가게 안에는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리가 들어가 앉아도 되는지를 물으니 서둘러 테이블을 정리해 앉을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메뉴는 딱 네 개뿐. 게다가 터키어로만 쓰여 있어서 그냥 맨 위에 적힌 두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그때부터 사장님의 열정과 성심과 혼을 다한 요리가 30분가량 이어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차려진 달걀&소시지와 스크램블. 걸린 시간에 비해 너무 간단한 요리가 나와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어 보았다. 아, 그런데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맛있는 거죠. 사장님 도대체 계란이랑 소시지에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역시 맛의 완성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30분 동안 쏟아부은 열정과 성심과 혼이 그저 흔하디 흔한 계란이라는 재료에 날개를 달아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마 태어나서 내가 먹은 계란 요리 중 가장 맛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깔끔 시원한 사클르켄트행 돌무쉬>

 뜻밖의 멋진 요리를 맛본 뒤 본격적인 계곡 탐험을 위해 돌무쉬에 올랐다. 우리가 지내던 마을에서 사클라켄트 계곡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렸고 버스비는 1인 편도 11리라(약 3,500원)를 냈다. 밥을 먹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차에 타자마자 폭풍 헤드 뱅잉을 하며 졸다가 내리라는 아저씨의 말에 놀라 서두르다가 가방까지 놓고 내림;; 다행히 차가 출발하기 전 재빨리 뛰어가 찾아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오늘 하루를 통으로 망칠 뻔 했다. 가방을 부여 잡고 숨을 좀 돌리고 나니 그제서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물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계곡물에 뛰어 들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입장권부터 사기로 했다. 방금 산 입장권을 직원에게 보여주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젤리슈즈 대여소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한 켤레에 3리라(약 950원)이니 무조건 빌리고 본다.   

<계곡 필수템은 뭐니뭐니해도 젤리슈즈.>

 계곡은 뜨거운 여름을 피해 주말을 즐기러 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도 이곳까지 오는 동안 땀을 적지 않게 흘린 터라 빨리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다. 하지만 유속이 굉장히 빨랐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한 발씩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물에 쓸려가지 말라고 설치해 둔 밧줄을 잡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물이 얼마나 찬지 머리가 다 띵했다. 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깊은 곳이 끝나고 물이 발목쯤 차오르는 낮은 지대가 시작됐는데 여기서부터는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계곡물 차가움이 빙하 녹인 수준임.>

 좌우로 멋진 바위들이 늘어선 협곡은 산책보다는 탐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머리 위로는 거친 암석이 오려낸 멋진 하늘이, 발 밑에는 석회가 섞인 하늘빛의 계곡물이 흘렀다. 귓가에는 자박자박 물 밟는 소리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분 좋은 소란이 맴돌았고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그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협곡 안에서 바라 본 하늘.>

 아름다운 협곡은 점차 좁고 험한 길로 우릴 인도했다.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야만 겨우 넘어갈 수 있는 거대한 바위부터 가슴까지 차오르는 웅덩이까지 계곡의 품은 파고들면 들수록 한 걸음 한걸음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돌아서지 않고 묵묵하게 앞으로 갔다. 그러는 동안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반대로 내 손을 누군가에게 내밀기도 했다. 혼자였다면 거대한 바위 앞에서 포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이가 내민 손이 나를 바위 위에 서게 했다. 그리고 나의 손은 바위 아래 또 다른 이를 위해 넘겨졌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이 계곡의 가장 깊은 속을 만날 수 있었다.      

<코너를 돌면 시작되는 고난의 길.>

 계곡의 끝에는 작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입고 온 옷을 훌렁 벗고 시원하게 물을 맞기도 했다. 엄청난 풍경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숨겨진 황금 도시를 찾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맹렬하게 협곡 사이를 거슬러 온 것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계곡의 머드로 장난도 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미모를 위해 열머드 하시는 아재들.>

 시원한 계곡에서 한나절 잘 쉬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배가 고파왔다. 오늘의 저녁은 슈퍼에서 사 온 컵라면과 옥수수 통조림.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차림이지만 맛도 있고 든든해서 한 끼 해결하기 딱 좋은 조합이다. 여행을 오래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시간과 돈을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제각각의 스타일이 있다. 우리는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은 아끼되 체험하고 보고 듣는 것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편이다. 그래서 싸고 허접한 것을 먹어도 앞으로 있을 재미있는 것들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쉽지가 않다.

<허접해도 낭만있는 우리만의 저녁 식사.>

 우리는 어둑어둑한 조명이 달린 호스텔 방에 앉아 어렵사리 찾은 공간에 소소한 저녁을 차려 놓고 페티예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했다.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우리는 다섯 번째 도시인 셀축으로 향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고대도시 에페소스부터 와인으로 유명한 쉬린제 마을까지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한 그곳!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멀지만 묵직한 짐 위에 기대까지 한껏 얹고 가보려 한다. 어느 도시를 가든 고객만족 100%인 터키라면 그 기대에 감탄과 감동까지 더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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