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

잡다한 상념의 서랍

by 정새롬

흔들리는 찻잎의

태초을 지켜보았다

새하얀 찻위에

자신의 빛깔을

녹여 내기 전

그 이파리가

매달려 있었던

생명의 시간들을

지켜보았다


하늘의 파란 숨결이

손끝의 찬란한 햇살이

바람의 벅찬 음성이

이파리를 뒤흔들었다


그들의 유혹을

천만 번 뿌리치고

결국 천만일 번째

땅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을 보았다


땅 위에 누웠는 그것은

이상 꽃도 이파리도 식물도

어떤 무엇도 아니었다

시간의 물 속에

몸을 잠그고

눈 두 번

숨 세 번

꿈쩍인 뒤


어지러이 흩어지는

향기를 맡기 전

그것은

어떤 무엇도

아니었다

하늘도 햇살도 바람도

딱 천만 움큼씩 담긴

그 이파리의 맛을

느끼기 전

그 아무것도 아닌 순간

비로소 감추어진 영혼을

맛보았다


흔들리는 찻잎,

그 태초의 맛

나도 흔들리며

맛보았다


<찻잎_정새롬>

매거진의 이전글할아버지와 별과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