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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Oct 28. 2019

신앙에도 이성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 목사님은 설교 중에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을 믿던 시절, 이들은 과학적 관찰로 얻어낸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이 지구상에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탄생에 대한 '빅뱅이론'이나 인류의 탄생에 대한 '진화론'을 믿기를 거부하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믿는 근거는 바로 '성경'이다. 이들은 과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박해했던 사람들과 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매 주일 꼬박꼬박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은 없는 헐랭이 신자다. 이런 내가 성경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론과 진화론 문제에 관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혹시 '이단'인 것일까? 그렇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조론'과 '진화론' 중에 하나만 선택해서 믿어야 한다면, 나는 '진화론'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립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는 '창조론'을 주장하며 '진화론'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론'과 '진화론'의 화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써졌다고 한다. 여기까지를 완전히 인정하더라도, 성경이 쓰인 것이 짧게는 약 2천 년 전이며, 길게는 BC 수천 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성경이 당시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다면, 그것은 당연히 동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쓰였을 것이다. 그때는 지동설은 고사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이다.  당시의 성경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빅뱅을 일으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 상에 원시 세포들이 출현하도록 하셔서 수백만 년의 진화 끝에 인간이 탄생하도록 하셨다고 기록했다면 당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 성경을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6일'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 개념에 따른 6일일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우리의 '하루'는 지구 상에서의 하루일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지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나님이 지구적 시간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창조하셨겠는가? 창조론은 그것이 쓰인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것이며, 따라서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기술되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시간조차도 상대적인 개념임을 발견해 냈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물리학적 발견에 근거한 것이다)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을 수도 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6일은 당연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 단위의 6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면 시간 역시 그분의 주관 아래에 있는 것이다. 6일이던 6조 년이던 그분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이제 우주선을 태양계 바깥으로 내 보내는 수준까지 왔다. 이런 인간의 이성으로 발견해 낸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발견을 그것들이 단지 '성경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회 스스로 교회의 설 자리를 좁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교회가 계속해서 창조론을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며 빅뱅이론이나 진화론을 배척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점점 더 교회로부터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신앙에도 '이성'의 자리는 필요하다. 이성이 없는 신앙은 '광신'으로 흐른다. 그리고 역사에는 이성이 없는 신앙이 광신으로 흐르면서 생긴 무수한 비극들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교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목사가 성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헌금을 빼돌려 치부를 하고, 교회를 사유재산인양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어도 그런 교회에 수 만의 성도들이 몰려든다. 신앙에 '이성'이 결여되었기에 그들은 '광신도'가 된 것이다.


 과학과 이성은 신앙의 적이 아니다. 과학과 이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세상 역시 교회를 포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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