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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Oct 05. 2023

카누 타다 물에 빠졌어요ㅜㅜ2

우리만 물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친구의 얼굴과 동시에 내 보라색 가방과 남편의 악기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출발하려던 감독님과 이사님께 얼른 뛰어가서 가방을 찾았다고 소리쳤다. 아우 얼마나 다행인지. 난 가방 잃어버린 것보다 우리 때문에 이 상황을 함께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니 너무 미안해서 그게 더 불편했었다. 그런데 가방을 찾았다니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사진 찍는다고 핸드폰을 꺼내놓은 상태라 핸드폰은 영영 굿바이였다.     


친구 뒤로 카누 타고 들어온 우리 동호회 사람들도 하나씩 들어왔다. 바람이 세져서 다들 선착장까지 들어오는데 힘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주섬주섬 젖은 옷가지를 비닐에 넣어주고, 짐을 챙겨줬다. 우리는 킹카누 선착장 바로 앞까지 세워놓은 친구네 차를 타고 우리 차가 있는 카누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돌봐주는 사람들 덕분에 잠시 VIP라도 된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집에 와서 옷에 묻은 먼지를 물로 씻어내고, 이것저것 정리하는데 남편이 이상하게 조용한 거다. 어디 있냐는 데도 아무 말이 없다.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따라갔더니 서재에서 돈을 널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두툼한 5만 원짜리 지폐만. 대충 봐도 500은 넘는 듯. 세상에나!! 비상금은 소중한 곳에 두라는 철칙에 따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악기 가방에 넣어둔 것이었다. 자신이 물에 빠진 것보다 그 비상금 없어질 생각에 얼마나 속이 타 들어갔을까.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물에 빠지자마자 배 밑으로 손을 넣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쪼그라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햇빛 들어찬 베란다에 돈을 쫙쫙 널어놓는 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나도 모르게 드는 뿌듯함이란^^ 흔한 경험은 아니니 조금 자세히 써보겠다. 물에 빠진 돈은 의외로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씩 손톱으로 정성스레 떼어내서 열 맞춰 돈을 너는데 돈끼리 잘 안 떨어져도 재미가 있었다. 내가 지금 빨래가 아닌 돈을 널고 있으니 이런 쉽지 않은 경험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널면서 베란다 자리가 모자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이 돈 널기는 끝이 났다. 졸지에 베란다는 5만 원짜리로 황금물결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사고가 난 날에는 영웅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법이라. 가방을 찾아준 오늘의 영웅 J님의 얘기가 톡방에 도배를 했다. 톡방에서 이름만 봤던 J는 오늘 처음 참석을 한 젊은 남자분이었다. 그분이 뒤집어진 카누를 다시 똑바로 뒤집어놨단다.  그 과정이 너무 위험해서 같이 물에 빠지는 줄 알고 친구는 말렸는데 기어코 해내더란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작은 바가지로 카누에 찬 물을 퍼냈다고 했다. 올려준 동영상을 보니 킹카누 선착장에서 불 쬐고 있던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물을 퍼내며 그 고생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ㅜㅜ


돌아가던 세탁기에서 빨래 끝난 멜로디가 울리니 그제야 현타가 다. 몸살기도 느껴지고, 막판에 잃어버린 새로 산 선글라스도 떠올라 마음이 쓰렸다. 이상하게 핸드폰 잃어버린 건 걱정이 안 됐다. 약정도 지나서 너덜 해진 핸드폰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참에 좀 세상과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그러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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