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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 쿠키 Oct 02. 2019

4. 영화업계 에이전트? 스포츠 에이전트? 난 무기!

"와 록히드마틴이랑 미팅을 한다고?"

구글 이미지 펌 Photographer: Tuukka Koski, Agency: McCann

언제 봐도 참 멋진 포스터다.


대형회사들의 일을 대신해주는 '에이전트'의 이미지는 그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 일을 했을 때와 사뭇 달랐다. 내가 직접 듣고 느꼈던 좋은 시선으로는 '록히드마틴'과 같은 해외 대형 군수업체들의 일을 (대신) 한다는 감탄 섞인 시선들이었다. "멋지다", "영어 잘하시겠네요" 등 거대한 군수업체들의 독보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으로부터 느끼는 이미지가 나에게도 살짝 겹쳐 보인다는 점이었다.


'아 에이전트세요?'
좋은 시선보단 부정적인 시선이 사실 더 지배적이었다. 우리나라 방산업계의 어두운 단면을 연상시키는 부정부패의 이미지도 지배적이었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사업 아이템을 뺏고 빼앗기는 에이전트 업체들끼리의 마찰과 근거 없는 소문들도 실제로 꽤 빈번한 일이었다. 최근엔 방산 비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방위사업청에선 해외 업체들이 국내 에이전시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령들을 제정했고, 이로써 점차 에이전시들이 설 곳이 없는 추세이기도 하다. 에이전시를 향한 기존의 어두운 이미지들과 더불어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여자 사람'인 나는 주로 군부대 관계자들이신 내 고객분들이 보시기에는 말할 상대도 되지 않을 '여자 에이전트'였고 이처럼 부정적인 시선도 받으며 당근 상처도 받았다.



부정적인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있다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다나까' 화법도 곧잘 따라 하게 되어 군 관계자분들과의 언어를 일맥상통시키기에 앞장섰다. 또한, 언제든지 문의 및 긴급 연락을 하실 때를 대비하여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재깍 통화버튼을 눌러 고객의 소리를 잘 귀담아듣는 것을 내 주요 '철칙'으로 삼았다. 노력이 조금 통했을까? 아니면 다나까 쓰는 민간 여자 사람이 관심을 조금 받은 것일까? 내 활동들이 좋은 피드백으로 이어져 에이전트로 일을 한 지 1년 남짓 후에 GE에 계신 분께 먼저 '우리 회사에서 사람을 찾는데 이력서 제출해 보세요'라는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다.




방산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국방획득 (Defence Acquisition)에 관심이 생겼다.

네이버 지식인에서는 '국방획득'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무기ㆍ장비 등 군수품의 획득을 위한 제도로 1972년 처음 도입되었다. 특히 탈 냉전 이후 급격한 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위협과 첨단 과학 기술 그리고 국가 가용 자원의 한계라는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 라인 미래 군사력 건설 차원에서 국방 획득의 비중이 크게 증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방 획득 제도 [Defense Acquisition System, 國防獲得制度]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2011., 국방기술품질원)

내가 이해하는 국방획득으로는, 운용하는 기본 병기를 국산화하는 동시에 주요 기술들을 보유하는 기술력 획득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KF-X 프로그램처럼 해외 업체 의존도를 줄이고 우리만의 능력으로 우리의 장비를 갖추는 일. 국방력() 획득, 국방 획득!


아무래도 해외 업체의 에이전트로서 국방력 획득의 최전방에 계신 군 관계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래도 국익과 반대되는 성향의 이해관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에이전트로 일하는 나'로서는 기존에 내가 맡은 외국 업체의 장비를 한국군이 잘 유지하며 운용할 수 있게끔 '관리'를 하거나, 새로운 기술력의 장비가 들어오면 이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내가 일을 대신해주는 외국 업체의 장비를 우리 군이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에이전트로 일하는 나'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기왕이면 우리나라 국군이 뛰어난 성능의 장비를 보다 경제적인 가격에 아무 이상 없이 순조롭게 운용하는 것, 해외업체의 장비, 국내업체의 장비를 떠나 어떤 장비라도 우리 군에게만 좋으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 내적 갈등이 생겼다.


한 업체의 디지털 기술을 선보이는 세미나에서 군 관계자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서글픕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외국업체에 끌려다니 너무 슬픕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운영하고 정비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되어야 하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좋은 장비로 국가안보에 도움되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그리고 직접 군수품을 운용하는 우리나라 국군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좋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싶고, 기술력을 보유함으로써 해외업체의 의존도를 낮추고자 희망하는 게 당연하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군 관계자분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도 모르게 하시는 말씀을 노트에 적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되새기고 있었다.




하루는 국회에서 주관하는 '국방획득'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질의응답 시간 중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던 질의자의 발언이 있었다.

직접 찍은 사진
"국방 획득의 어려움은 전문성이 없어서도 아니고, 시스템이 별로 여서도 아니고, 담당하는 각 개인의 가치와 철학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 America First 가 있듯이, 우리도 Korea First여야 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국익에 대한 고민을 하기는 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공무원들이 항상 말하는, "감사와 수사만 피하면 된다"라는 이 웃기지도 않는 말이 어딨습니까? 국익을 위해서 진화적으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처절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군사안보는 곧 국가 이익입니다. 내부 규정과 감사가 무서워서 해야 할 일을 못하면 안 됩니다. 어떤 정책 결정 방향이 어떻게 국익에 결정을 주고,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국내 방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몸 사리지 말고, 국익을 위해 맞짱 뜰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2-3년이면 다른 보직으로 옮겨버려 책임감과 전문성이 아쉬운 우리나라의 공무원/군대 보직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방 획득의 중요성을 호소하셨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하시는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또 내적 갈등이 깊어졌다..




국내 여느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는 보수적인 분위기의 일터였고, (당시 회사에서 해외 출장을 가본 여직원은 회사 창립이래 내가 처음이었다) 회사의 환경이 아쉬울 찰나에 당시 진지하게 교제하던 남자 친구와의 결혼계획이 구체화되고, 그분의 직장으로 인해 외국에서 신혼 생활을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어렴풋했지만, 가까운 미래의 외국 생활을 계획하다 보니 기존의 내 경력에 추가로 더 네임벨류가 있는 업체에서 경력을 쌓으면 해외로의 이직이 보다 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예전에 에어쇼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 해외 유명 업체에서 일하시는 분으로부터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공석이 생겼으니 지원해보라는 링크드인 쪽지를 받았고, 그리고 난 이렇게 '더 멋진 이름'의 회사로 떠나게 되었다.


당시 내 이직을 알림과 동시에 구인 목적으로 올린 글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아쉬운 점이 많당..

그래도 기록으로 올려본다..

12월부로 GE Aviation Korea에서 Aviation Service Operator 직무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을 면접 보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지난주에 이 자리를 먼저 소개받고 인터뷰를 통해 오늘 최종 확정 소식을 뜨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는 물론 서로 생각하는 이해관계가 같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으로 필요한 업무를 제가 정확히 수행할 줄 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년 조금 넘는 비교적 아주 짧은 시간을 국내 군수품 무역 대리업체 (무기중개업)에서 일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에는 눈물 콧물 쏙 빼며 정부기관 담당자들과 부딪히기도 하며 배우고 익혔습니다. 물론 저도 2015 서울 ADEX 에어쇼에서 이력서를 배포하면서 방위산업 직군에서 일을 찾을 때는 마냥 크고 멋진 회사들만 생각했었고,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도 빵빵한 이름의 회사에 다니는 부들을 보며 동경 어린 시선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쪽일 과 이 쪽 일은 영역이 다를 뿐 우위가 없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비교적 규모는 작아도 일을 많이 배울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곳에서 열심히 배우는 게 사회 초년생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가져야 할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맞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값진 일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을 배운 곳은 국내 약 1174개가 넘는 군내 군수품 무역대리업체 중 4대 무기 중개업체로 평가받는 상당히 괜찮은 곳입니다. 저는 주로 방위사업청과 해외 방산업체와의 국외조달 계약업무 그리고 한국 공군의 운용 가용성 (operational availability)을 위해 특정 아이템들의 하자 관리 및 MRO 후속 지원을 수행했습니다. 추가적으로 육군 항공 관련 통역 및 신사업 발굴도 서포트했습니다.

저도 아직 갈길이 멉니다.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외국에서 일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 주심에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서 방위산업과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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