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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Sep 30. 2022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아내입니다. 06

최악의 조리원

출산 후 남편은 딱히 변한 게 없었다. 남편은 변한 게 없는데 나의 심리적 불안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아기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고 솟구치는 모성애에 나의 자아는 다 뭉개져버리고 엄마로서의 마음만 남았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베테랑이 되지 못한 엄마는 모든 게 걱정되었다. 저 핏덩이를 안전하게 먹이고 재우는 것도 모잘라 잘 키워야 한다니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나의 조리원 생활은 최악이었다.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없었다. 먹기 싫은 식사도 아침 일찍 일어나 수유를 위해 매일 미역국을 먹어야 했고 육아에 필요한 용품을 하나둘씩 사모았고 단단하게 부푼 젖가슴도 몹시 아팠다. 모든 게 엉망진창인 나의 옆에서 남편은 모바일 게임을 한다.


그런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가 아닌 둘이지만 둘은 다른 세상이었다. 마음 편히 모바일 게임에 한창인 남편에게 말이 곱게 나갈 일도 없었다. 그는 나의 옆에 있지만 나의 무엇도 궁금해하지 않아 보였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린 상태에서 남편이 정말 미우면서도 남편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런 마음이 은연중에 묻어나니 남편과 다툼이 생겼다.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며 말싸움이 오고 가던 중 남편은 끝내 집으로 가버렸다. 그는 또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며 모든 게 잘 못 선택하여 일어난 일이라 자기 인생은 망했다고 했다. 모든 쓰레기 같은 감정이 거품처럼 부풀어 온몸의 구멍으로 넘쳐흐르는 기분이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 [나 고향에 가고 싶어. 감정이 주체가 안돼.]


남편 - [관심 없으니까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난 더 이상 너랑 못 살 거 같다]


나 - [이혼하자는 거야?]


남편 - [ㅋㅋㅋ네가 먼저 고향 간다며 애버리고]


나 -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남편 - [내일 우리 부모님 오셔서 아기 데려갈 거야]


아기를 데려간다는 말에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열 달을 품고 이제야 만나게 된 아기를 데려간다니 겁이 너무 났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나와 탯줄로 연결되어있던 아기였다. 그 아이를 위해선 모든지 할 수 있을 거라 다짐했는데 기회조차 없게 된다니. 상상으로도 최악의 고통이었다. 남편이 겁주려 하는 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겁에 질려 모든 생각의 회로가 끊겼다. 정말 시부모님이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면 나는 어쩌지? 그다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할 방법조차 모른 채 눈물만 쏟아내며 밤을 보냈다.


너무 끔찍한 기억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나는 친정으로 가지 않았고 남편도 시부모님을 부르진 않았다. 마음 한편에 이날의 공포가 늘 자리 잡고 있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은 상처여서 아무에게도 말 하지 못 했고 앞으로도 꺼내지 않을 것이다. 없어지지도 않는 이 기억을 그냥 묻어 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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