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ng Feb 24. 2023

[감상] 바빌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벌어진 것 뿐.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믿고 보는 두 배우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충의 줄거리도 모른 채 보러 갔다.


영화의 내용은 차치하고 브래드 피트가 부러웠다.

몰락해가는 무성 영화 스타의 삶, 그 희노애락을 연기할 수 있는 자체가 부러웠다.

자신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를 직접 연기하는 기분은 어떨까,

한 때는 액션 스타, 한 때는 로맨틱 코미디, 한 때는 기울어 가는 태양 등 세상의 모든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외모와 연기력을 갖춘 그가 정말 부러웠다.

몇 번 되지 않지만 연기를 했었던 십 수 년 전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면서 또 할 수는 없겠지란 아쉬움이 그득 남는다.

농담처럼 늘 던지는 난 OO의 유리가면 이었어.

무성영화를 흘려 보낸 스타가 과거를 회상하면 이런 느낌이려나,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세상은 완전히 바뀐다.

목소리가 중요해지고, 주변 환경이 중요해진다.

경박한 발걸음, 천박한 목소리, 산만한 배경음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무성영화 스타들은 자연히 소멸되고 만다. 관객이 기대했던 소리를 못 냈기 때문이다.

마치 책을 보고 상상했던 장면들이 막상 영화로 재탄생했을 때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 것과 유사한 것일까,


어떻게 해도 기대보다 나을 순 없지 않을까?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은 결국 최상을 가정하고, 인간의 유한한 능력은 결국 최선을 행한다. 그 간극은 최상과 최선이라 할지라도 결코 만날 수 없다.



감독의 나래이터 역할을 하는 기자는 브래드 피트에게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벌어진 일이라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세상에 맞는 역할이 있는 것이라고.






이경규가 한 시상식에서 말했다.

박수칠 때 떠나는게 아니라, 아무도 박수치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할까,

박수가 그칠 때 떠나야 할까,


내 인생은 박수를 받고 있을까,

박수가 이미 끊어진 상태일까,

혹은 여태 박수 소리 조차 울린 적이 없을까,


소박히 박수를 은은히 퍼트리며 장막이 스르륵 내려가길,

그게 화양연화 같은 나의 인생이길,

이제서라도 소망해 본다, 나에게 금지된 것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이전글 [여행] 물놀이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