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루 Oct 20. 2016

우리는 누구와 사랑을 할까

당신의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들 또한 당신의 영혼이다

  금세 만나고 금세 헤어지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맨다. 인간이 아주 먼 옛날부터, 언어나 문자가 없었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해왔던 삽질이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란... 정의하기 쉽진 않지만, 영원한 동반자, 자신의 전부를 줄 수 있는 사람, 대강 이런 느낌을 떠올려주면 되겠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며 세상을 탈탈 털어봐도 그런 것이 과연 실재하나 싶다. 나의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간단할 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해도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년 안에 금세 헤어지고 '인연이 아니었어'라고 말하곤 한다. 아니, 주위로부터 위로랍시고 수도없이 그렇게 듣곤 한다. 글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연이 다했고 거기까지였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한 것일테니. 


  하지만 정말 인연이 아니었을까? 정말 그 사람은, 당신을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연인들은 '결국 헤어졌기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일까? 당신에게 사랑을 주었거나 당신의 사랑을 받았던 대상들이 모두 말도 안되는 우연으로 맺어진 만남이란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와 연인이 될 때 단지 그 사람의 능력이나 조건, 외모나 성품뿐만 아니라, 자기와 통하는 어떤 내면 깊숙한 동질감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는 그걸 친근감이라 칭하고 누군가는 코드라고 하며 누군가는 첫인상, 또 누군가는 느낌이라고들 표현한다. 그 동질감이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 중간에 제3자의 개입을 끼운 세상의 숱한 소개팅이 실패하는 것이고, 그 동질감 때문에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괴팍한 사람이라도 잘만 연애하고 다니는 것이다. 동질감만 느낀다면 실루엣만 보고도 '느낌'이 오는 것이 인연이다.



  동질감. 같은 곳에서 온 듯한 느낌. 하나의 출발점, 하나의 영혼. 나는 당신의, 그리고 나의 그 숱한 인연들이 어쩌면 하나의 영혼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복잡하고 빠른 세상의 사랑방식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말하려는 '영혼'은 결코 종교적인 색채나 영적인 미신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종교도 없고, 정확히는 불가지론자이고, 운명(혹은 미신)과 노력을 5:5 또는 4:6 정도의 비율로 믿으며, 영적 능력이 전무하다. 하지만, 영혼은 믿는다.


  인간 내면의 어떤 깊숙한 여러가지 부분들을 나는 그냥 영혼이라고 부른다.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 그중 조금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나의 연인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영혼 덩어리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대 신화 중에, 남자와 여자는 본래 서로 등이 붙어있었는데, 둘이 함께 있자 그 힘이 너무 강력하여 신이 그 둘을 찢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 붙어있었던 또 하나의 자신을 찾아 서로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그게 남녀가 아니라 남남이나 여여였다면 동성애자인 것이고.)


고대 그리스의 도기화 구인류 '안드로구누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살면서 그 등이 붙어있었던 1명만 정해진 내 짝인거야?'였다. 아까도 말했지 않은가. 금방 만나고 금방 헤어지는 세상이라고. 그만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의 수는 많다.  그래서 이 신화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게, 나의 연인들은 나와 '등이 붙었던 한 명'이 아니라 '서로 엉겨있던 하나의 덩어리'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라는 가정을 해본 것이다. 해리포터의 호크룩스처럼, 하나의 영혼을 여러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의 연인이었던 사람들 중에는 분명 자신과 더 잘 맞는, 아귀가 꼭 맞는 퍼즐 같은 사람이 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삐그덕대는 사람도 있다. 얼굴도 보기 전에 서 있는 실루엣만 보고 느낌이 오는 사람도 있고, 사귀자마자 얘는 아닌가보다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죽도록 다양하다. 그래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한 순간쯤은 사랑했고 좋아했다는 것. 무슨 느낌이었던, 무슨 사정이었던 무언가 통하기는 했다는 것.


  내가 앞서 가정했던 '하나의 영혼 덩어리'가 여러 개로 갈라져나올 때, 내 영혼조각이 가령 1의 크기라면, 나와 잘 맞던 연인은 나와 똑같거나 비슷한 크기 1의 조각이고, 유독 안맞던 연인은 거기서 더 잘게 부서진 파편 같은 0.3조각만을 나와 공유하는 사람이었던 거라면 어떨까.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의미를 부여할만큼은 아닌 수치. 여기에 나와 전혀 인연 없는 사람ㅡ아무리 봐도 혹은 아무리 친해도 연인감은 아니거나 어쩌면 얼굴조차 모르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ㅡ은 0, 그냥 나와 다른 영혼덩어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가정, 꽤나 그럴싸하지 않은가?


  한때는 소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며 '인연이 아니었다'고 그동안의 시간과 감정을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와 영혼이 덜 통했겠거니, 내가 1이고 그 사람이 0.3이었겠거니, 그래도 0은 아니고 0.3이었으니 아예 의미 없는 사람은 아니었겠거니 하고 보내주면 어떨까. 이 사람은 나와 참 영혼이 비슷했던 사람이었는데 아쉽네, 이 사람은 나와 아예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부스러기 정도의 영혼이 비슷했던 것인지 신기하게도 연이 닿았네 하며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막지 않는 것이 이런 패스트 페이트(fast fate) 세상에서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지는 것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