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싫은 거지
나를 유독 싫어하던 상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싫다가 정답이었다. 나는 그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아픔들을 가슴에 새겨야만 했고, 그 후로 대인기피증도 생겼었다. 요즘도 다른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 조금은 어려울 때가 있지만 억지로 쳐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동아리에서 나랑 나이가 같지만 1년 재수를 하는 바람에 늦게 들어갔다는 이유로 선배로 불러야만 했던 상황들 속에서 내심 내 안에는 거리감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에게 만 선배로 부르는 게 싫었고, 그것이 겉으로 티가 난 건지 유독 나를 괴롭혔다. 시시때때로 말투가 시건방지다며 꼬투리를 잡았고, 군기 잡는다며, 집중 못한다며 어지간히 나를 힘들게 했다. 지금 보면 참 유치한 것들인데 그때 그렇게 당하다 보니 나중엔 반항심도 생기고 억울하기도 해서 결국 그 동아리에서 자진 퇴사를 했다. 결국 그 동아리는 폐쇄되었다.
내가 처음 입사한 병원 수선생님은 편애가 심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대우가 달랐다. 첫 직장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생각보다 몸에서 반응이 느려터졌고, 사건사고가 많았다. 부서 자체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수술실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름 성적도 좋았고 인상도 좋아서 다 붙을 줄 알았던 대학병원급 병원마다 줄줄이 퇴짜를 받고 나서 하는 수 없이 3차 병원 중에서 고르고 골라 가게 된 곳이었다. 기숙사가 있었고, 특수파트라 월급이 좀 더 세다는 이유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꼭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있는 반면 조금은 그런 경험을 일찍 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든다.
수 선생만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어서 나는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이처럼 돌아다니기만 수십 번째 결국 정착할 병원을 찾다가 성형외과가 눈에 들어왔고 나에게 말하는 능력과 소통 능력등이 뛰어나다는 주변의 말에 솔깃해서 넘어가버렸다. 상담실장이라는 직함이 너무 맘에 들었고, 내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성형외과에서 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더니 허드렛일만 종일 시켰다. 3개월만 해도 다 아는 것들일 텐데 그게 점점 약속한 기한을 넘기며 결국 6개월 넘게 나에게 상담일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단지, 내가 신입이라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조무사는 경력이 많아서 상담실장을 시켜주는데, 간호사인 나는 경력이 없어서 안된단다. 참 어이없는 이유다. 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만든 직업인데, 어느새 조무사가 없는 병원이 없다. 오히려 간호사가 더 열악하다.
성형외과는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아서 더 나열하긴 어렵지만 그중에서 홍보실장으로 있던 사람이 결론적으로 의료행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명백한 불법이며 이곳은 불법이 성행하는 곳이었다. 월급 외에 인센티브라며 뒷돈으로 10만 원짜리 수표를 몇 장 챙겨주기도 했고, 의료진이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고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달며, 상담한 의사가 직접 시술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병원 문 닫았다. 내게 차별대우를 일삼던 홍보실장이라는 분은 5분씩 늦는 나를 유독 싫어했다. 조금만 일찍 오면 되는 거 아니냐며 얼마나 구박을 하던지, 지금 보면 그렇게 혼나고도 고치질 못했다. 버스를 놓쳐서, 지하철을 놓쳐서 갖은 변명들이 많지만 특히나 몸이 아팠을 때 정말 서러웠다. 나를 하찮게 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세월이 흘러 여전히 간호사역할에 적응을 잘 못하던 내가 다른 일로 접어들었다가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 들어간 병원이 있었다. 억울하게 그만둘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글로 적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온 마당에 뭐 할 것이 있겠는가?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면서 요양원인 병원 아마 이름 들으면 모두들 알만한 병원이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걸로 변경되어서 수혜를 받고 있으니까, 그만큼 체재가 좀 딱딱한 구석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양식에 맞게 기안을 올려야 처리되는 곳, 좀 복잡하고 느린 이곳에서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코로나로 아직 키트를 사용하고 병원 출입을 제한할 때라 출입구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그때 환자분들과 환자 대면 하는 사이에서 문제가 있었고, 나는 그걸 제재하다가 환자 보호자들과 언성이 좀 높아지는 일이 있었다. 내 말투가 아니꼽다며 나를 뭐라 했다. 그분들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내가 선의를 베풀어 예약이 안되었지만 환자를 대면하도록 도와줬다는 부분이었다. 근데 키트 검사 확인 하는 과정에서 말투가 딱딱하게 "다나까",,, 로 했더니 뭐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부터 며칠 뒤 직장상사가 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며 나를 안 좋게 보았고, 나에 대해 병원 사람들이 안 좋게 생각한다고 뭐라 했다. 웃지도 않고, 얼굴은 어둡고 등등 말이다. 그냥 내가 싫었던 것뿐인데 나는 그 사실들을 너무 깊게 생각했다. 억지로 웃으려고도 하고 얼굴 표정도 밝게 하려고 애써 웃었다. 근데, 그럼에도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하다 못해 없는 사실까지 만들면서 나를 쫓아 내려했다. 그 컴플레인은 실제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는 일을 못해도 잘한다고 칭찬이 넘쳐나는데, 내가 일 한 것은 칭찬이 없었다. 항상 지적질만 있었으며 자신의 일을 덜어주고 심지어 자료까지 만들었는데 뭐라 했다. 그 동료에게는 고가 점수가 높게 주고, 나중에 그 상사가 나와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퇴사를 한 이후에 나만 고가 점수를 일부로 낮게 줘서 더 이상 이 부서에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1년 경력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부서라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병원장 통보라 어쩔 수 없단다. 졸지에 원치 않는 내시경실로 발령이 나서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몸만 다친 채로 그만둬야만 했다.
물론 내 문제도 있을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고, 지각도 밥 먹듯이 하고 지금은 안 그러지만 노력도 안 한다고 한 적도 있고 분명 내 문제도 많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계속 지적하고 안 좋게 얘기하면 나 같은 사람은 노력을 더 안 하고 그만둬버린다. 그래서 내 경력이 화려하다.
그 사람들은 결국 모두 그 자리에 없다. 오래 일했지만 다 떠났다. 나에게 안 좋게 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통쾌하긴 하다. 어쩌면 신이 나를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세상에 싫은 건 무지 많다. 심지어 나 자신도 싫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마다 나는 죽어야 할까?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좋은 이유는 얼마든지 많다. 그러니 내가 싫어질 때마다 주문을 외워 그 상태를 벗어나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주문을 외우자. "자승자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