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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4. 2023

이별을 준비하는 외동 딸의 자세 2

용기를 실어주세요.

" 엄마, 엄마가 배 아파서 낳은 딸은 아니어도 나는 엄마 딸이야. 엄마도 알지 ? "


내 첫질문에 미약하게 끄덕이던 엄마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 엄마가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도 괜찮아. 엄마 하고싶은대로 해. 대신 가기전에 알려만 줘. "


엄마는 그 질문에는 미세하게 끄덕거렸다.

기관절개, 기도삽관 모든 것에 동의 했고, 이미 한차례 기도삽관을 한 후 제거한 터라 병원에서 큰 질문을 받아놓은 터였다.


ㅡ다음번에 안좋아지면 기도삽관 후제거가 힘들어서 기관절개까지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의 하십니까? ㅡ


다섯번째 면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내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일수도 있다.

그러나 중환자실의 모든 처치와 환경이 엄마에게 부담이 되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연로할대로 연로한 육신,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채 일주일도 안되어 빠지기 시작한 엄마의 근육, 이제는 내 한손에 들어올만큼 작아진 엄마의 다리 둘레, 이 모든것들이 엄마에게 부담이 되는 건 확실했다.

기어코 중환자실에 간 엄마의 상태가 2,3일만에 안좋아지고 기도삽관 후, 엄마는 얼마 되지도 않아 첫번째 면회에서 엄마의 치아가 빠졌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 선생님이 챙겨준 그 치아를 고스란히 들고올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면회는 엄마의 얼마 없는 의식과 몸부림, 잠듬, 몸부림, 잠듬의 연속으로 보냈으며

세번째와 네번째 면회에서 엄마는 제발 병원에서 내보내 달라는 사인을 온몸으로 보냈다.

지겹다 라고 벙긋거리는 모습도, 아파, 너무 아파, 라고 하염없이 우는 엄마도, 목소리는 낼수없어도 엄마는 명확하게 보내 달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게 어떤 방향이던 간에.

그 몸부림들은 오로지 병원에서의 탈출, 삶에서의 탈출, 이 중환자실에서의 탈출, 이 침대에서 탈출, 이 결박된 모든 속박에서의 탈출을 이야기한것이다.

매번의 면회를 할때마다 엄마는 각기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기에 내가 엄마에게 할수 있는 건 허공에 떠다니는 그런 소리뿐인 응원이었다.


네번째 면회에서는 엄마가 나에게 가라고, 너 싫다고 하는 순간 다른 깨달음을 얻어버렸다.

네번째 면회 후 집으로 울면서 돌아오며 나는 수많은 임종 후 가족들이 남긴 글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지인들의 경험을 들었다.

그리고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출판한 책 같은 걸 뒤져보았다.

대개 공통점이 있었다.

걱정 놓으시라 말씀드리면 좋다는 문장. 

그리고 그것들은 이내 아주 복잡한 우리집만의 사정 따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 하기 전 집착했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못내 처리하고 오지 못한 우리의 복잡한 집안사정, 그리고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미안해 하는 엄마 라던지, 34살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나를 아가라고 어리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일기장 속 문구들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침내 다섯번째 면회에서 엄마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을 듣고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그 역시도 목소리가 아닌 입모양이었지만, 나는 엄마가 아픈 모든 순간 내가 우는 그 타이밍에 엄마가 나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미안해 라는 걸 알기에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리 끈끈한 모녀사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친딸이 아닌 나를 최선을 다해 돌보았다.

물론 자기만의 방식이라서 사춘기의 예민한 내 감성이랄지, 흔히말하는 90년 세대들의 반항심이라던지를 세심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중환자실에 내려간 것도 충격적인데, 그런 엄마와 내가 물보다 진한 피로 이어진 모녀사이가 아니라는 것 역시 충격적이었다.

미처 이야기 하지 못한 것들이 엄마의 가슴속에 있었을 것이다.

온 친척들마다 너희 엄마는 한이 많아 눈을 못감는다. 엄마가 일어나면 직접 듣고, 엄마가 못일어나면 우리가 이야기 해줄께 라고 이야기 하는 걸 보면....



다만 그래도 엄마는 나에게 엄마였고, 그런 엄마는 나에게 계속 연신 미안해하고 있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깨달았다.

그저 용기만 주는 것 말고, 엄마가 원하는 선택을 하되 내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주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라는 걸.

그건 남아있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다가올 이별에 대한 대처에도 도움이 되었고, 혹여나 저 앙상한 마른 나뭇가지같이 변해버린 엄마에게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라는 걸.

엄마는 그렇게 온순해졌다.

네번째 면회에서 가, 싫어, 오지마를 반복하던 엄마는 그저 내 말에 모두 끄덕여주었다.



엄마, 오늘은 날이 따뜻해. 나아지면 같이 꽃 구경도 하고 놀러나가자. 엄마가 혹여나 이걸 견디다 힘들어서 떠나고 싶다면, 나는 그래도 엄마 편 할께.

엄마가 무슨 선택을 해도 나는 엄마 편이야, 엄마 걱정놓고 마음편하게 먹자. 엄마가 선택하는 모든 거 내가 다 엄마 편들어줄께.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괜찮아.

엄마 마음대로 할수있어.

나는 이제 다컸어.

엄마가 생각하는 것 처럼 어리지 않아.

엄마가 걱정하던 것들, 내가 엄마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다 해결해놨어.

그리고 엄마 원하는대로 해도 괜찮아.

원망안해.

엄마는 하고 싶은거 누릴 자격있어.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편을 들어줄꺼야.

나는 이제 엄마의 가장 강력한 보호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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