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덜 아프지 않을까
임종 전 징조
임종
사별
부고
이별
소천
영면
소풍
임종이라는 단어와 붙여 내가 검색한 것들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이별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다 읽었노라고.
거기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와 동갑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다.
이별에 적절한 나이 같은 게 어디 있을까
50살 60살 70살이 되어도 이별은 아픈 법인데.
내 삶에 닿은 많은 인연들
사람 동물 일 취미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모든 것들과의 이별은 늘 아팠으며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는 떠올리기 싫어 봉인해 둔 것도 있다.
죽음으로 인한 단절, 그 이별의 첫 기억은 내가 사랑한 나의 작은 반려동물이었다.
8살에 겪은 이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따뜻하고 말캉했던 그 작은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나에게 차각차각 발톱소리 내며 토끼처럼 뛰어오던 까만 강아지의 발소리가 없어진다.
그저 흔적만 남는 것이다.
아이의 밥그릇, 물통, 리 드 줄 같은 것 말이다.
그 이별은 몇 년간 꿈속에서 재생되고 자꾸자꾸 떠올라 이내 엄마와 이별할 때는 어쩌지?라는 걱정마저도 불러왔다.
8살도 죽음이 무엇인지 안다.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 일을 경험하고 엄마와의 이별을 상상하며 두려워하고 울기도 했었는데 그게 8살이었다.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두려워하고 울기도 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남겨질 자들의 입장에 선 내가 받는 데미지는 달라진 게 없었다.
미디어 매체에서 접하는 죽음은 다채롭다.
어떤 곳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그 가족을 미라처럼 만들면서 몇 년간 집에 모시기도 한다.
유퀴즈에 나온 물리학자는 원자는 영속한다는 말을 했다.
까끌까끌한 그 문장을 입안에 넣고 굴리는데 너무 시어서 눈물이 다 날만큼 두렵다.
앞으로 남을 내가 다가올 엄마의 부재와 죽음을 수용하면서 티 내지 않으려고 그저 엄마 괜찮아. 엄마 잘했어.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따위의 말들을 앵무새처럼 내뱉는 이 과정이 이별을 잘 준비하는 정갈한 자세일까.
헤어짐 끝에 남겨질 나는 이제 엄마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며 닿고 싶어도 닿지 않을 테고 그리워도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빨리 잊고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매일 그리움으로 엄마를 꿈에서라도 만나려 할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순서만은 다를 이별이라는 불행을 견디다 못해 시름시름 앓으며 한 겨울 봄나무처럼 바짝바짝 말라갈지도 모를 노릇이다.
나에게 엄마와의 예정된 이별이 이토록 가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고 싶어진다. 나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왜라는 질문은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인생에 짐을 더한다. 그러나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서도 때때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곤 한다.
이유를 알면 납득이 가고 납득이 가면 이해가 간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을 찾지 못해 아직도 서투르게 이별 중이다.
이 모든 일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발생하는 일일 텐데 한낱 작은 인간인 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모두가 겪는 일에 이토록 유난일까.
어째서 이토록 가혹하게 느껴지는 걸까.
매일 아침, 매일 저녁, 매일 새벽마다 상상한다.
마지막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장례 절차를 다시 한번 찾아보고 이후에 엄마를 어떤 방식으로 모실지, 어떤 식으로 애도를 할지, 그 애도의 기간 내에 상실을 삼키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를 생각한다.
자기 합리화처럼 엄마가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면 좀 나을까?
아니면 엄마를 실컷 그리워하다 말라죽는 게 나을까?
일부러 바쁘게 살아야 할까?
아니면 방구석에 드러누워 눈물만 뚝뚝 흘려야 할까?
내 이별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엄마도 나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