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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04. 2019

행태를짓다1

벽과 문

주 : 오랫동안 다듬어 온 원고를 조금씩 풀어놓습니다.



행태(行態) : 하는 짓과 몸가짐. 행동하는 모양. 

/ 네이버 한자사전


우리의 몸은 항상 ‘건축 안팎’에 놓여있고, 건축과 몸은 늘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건축공간이 조직되는 방식, 그리고 벽, 문, 바닥 같은 건축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조합되고 작동하는 방식은 모두 우리의 행동이나 상황을 의도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또는 의도하지 않은 특정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건축을 ‘삶을 담는 그릇’이라 즐겨 부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삶을 통제하는 장치’라 할 수도 있겠다.

 

주전자



동경의 유명한 소바(메밀국수) 음식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소바 못지않게 깊은 인상적이었던 것은 ‘면수’(메밀면을 끓이고 남은, 메밀향이 담긴 뜨거운 물)를 담은 주전자였다. 이게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 비교하기 위해 한쪽에는 보통 주전자를, 다른 한쪽에는 ‘면수 주전자’를 간단히 그려보았다. 각진 모양이 특이해 보였는데, 더 이상한 것은 주둥이와 손잡이가 몸통에 연결되는 각도였다. 


손잡이를 쥐고 주전자를 기울여서 컵에 따라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손목을 평소에는 사용할 일이 없을 방식으로 한껏 꺾어서 기울여야 한다. 물이 나오는 구멍의 방향을 의식해서 손목을 꺾는 것도, 그렇게 꺾은 채로 손목을 돌려서 주전자를 기울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는 간단하다. 뜨거운 면수를 주의를 기울여서 조금씩 따라내게 만들기 위함이다. 친절히 알려주거나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누구라도 저 주전자를 손에 쥐고 기울이다 보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르게 된다.


문득 주전자라는 사소한 소품 하나에 음식이 접대되는 방식이라든지, 전반적인 식당의 분위기 등이 압축되어 반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하나의 주전자가 식당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좌우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갖춰 입은 웨이터가 느릿느릿 돌아다니면서 우아하게 접대하는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주전자는 주둥이가 늘씬한 모양으로 길게 나와있는 것이 보통이다. 웨이터의 우아한 몸짓에 어울리게, 손잡이 또한 우아하고 유연하게 몸통에 가뿐히 붙어있는 모습이다. 팔을 조금만 뻗쳐도 멀리 놓여있는 물컵에 물을 따를 수 있게 디자인된 것이다. 백반집이나 분식집처럼 부담 없고 편한 분위기의 식당에 놓여있는 주전자들은 약속한 것처럼 대부분 튀어나온 주둥이 없이, 단순한 원통 모양이다. 심지어는 손잡이도 따로 없다. 몸통을 손으로 쥐고 기울여서 따라 마신다. 가까이 놓인 컵에 물을 따르기 편하게 디자인된 것으로, ‘너가 마실 물은 너가 알아서 따라 마셔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벽과 문


주전자 같은 소품은 우리의 삶에 가끔씩, 그리고 잠깐 동안 영향을 끼칠 뿐이다. 건축은 다르다, 우리의 몸은 항상 ‘건축 안팎’에 놓여있고, 그래서 건축과 몸은 늘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건축공간이 조직되는 방식, 그리고 벽, 문, 바닥, 창문 같은 건축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조합되고 작동하는 방식은 모두 우리의 행동이나 상황을 의도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또는, 의도하지 않은 특정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건축을 ‘삶을 담는 그릇’이라 즐겨 부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삶을 통제하는 장치’라 할 수도 있겠다. 


많은 학생들이 균등한 환경에서 비슷한 품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그리고 학생과 선생님이 각자 주어진 일을 하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끔, 교실과 복도, 사무실(교무실), 운동장 등의 공간들을 조합하여 건물을 만들고 학교라고 부른다. 학교라는 건물의 변화는 교육제도의 역사를 보여주고, 병원이라는 건물의 변화는 의료제도의 역사를 보여준다. 삶을 통제하는 장치로서 직접적으로 실감 나는 것으로는 감옥 같은 시설을 들 수 있겠다. 감옥이라는 건물의 변화는 권력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권력이 죄인과 죄인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규정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감옥 못지않게 강력하고 정교하게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설로 공항을 들 수 있다.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드나들 수 있는 영역이 구분되고, 영역 사이를 넘나들 때마다 필요한 절차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모든 건물들이 각각 나름의 특정 행동이나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였다고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이 아니리라. 


건축 요소들 중에서 ‘몸’을 가장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는 ‘벽’이다. 벽은 영역을 규정해서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시선이나 움직임을 막거나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다. 워낙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면서 친숙해진 요소이다 보니 물리적인 공간이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여러 상황에 빗대어 “벽에 부딪쳤다!” 라든지, “벽을 뛰어넘자!”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수출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두고 ‘무역장벽’이라 부르는 것처럼 정치 사회적 상황을 비유할 때도 많이 쓰인다. 영화나 음악, 공연 등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고, 컴퓨터 네트워크의 방어장치를 ‘방화벽’이라 부르는 등, 기술이나 공학의 측면에서도 널리 쓰인다.


그만큼 벽은 널리 활용되는, 유력하고 친숙한 통제장치이다. 그런데 벽만으로는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통제하려는 사람과 통제되는 사람 사이에 권력의 차이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벽과 짝을 이루는 것이 문인데, 문이 있어야 벽은 비로소 통제의 힘을 제대로 갖추게 된다. 문은 묘한 속성을 갖고 있다. 닫혔을 때 문은 벽의 일부가 되고, 열렸을 때 문은 벽의 공백이 된다. 그런 면에서 문은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벽에서 문으로, 문에서 벽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제어할 수 있는지에 따라 권력의 차이가 생기고 통제의 힘이 발휘된다. 고정된 벽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경우, 누가 더 우월한 상황인지 말할 수 없다. 그냥 둘 다 벽에 의해 각자의 영역에 갇힌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다. 벽에 문이 뚫려 있는데 누구나 문을 여닫을 수 있다고 해도 역시 권력의 차이는 생기지 않는다. 벽에 문이 뚫려 있고 문의 열쇠를 어느 한 사람만이 갖는다면, 열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벽은 어떤 이유로 세워졌을까? (동물이든 사람이든 비바람이든) 다른 존재의 침입을 막고 안전한 영역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처음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서’ 또는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라는 의미였겠지만, 곧이어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덧붙여졌고, 사회 체계가 정교해지면서 ‘정치적 위계질서를 공간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조금은 복잡한 의미도 더해졌으리라 짐작한다. 애초에 ‘생존 그 자체’에서 시작되었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점점 ‘각자의 사유재산의 확보’로, 더 나아가 ‘계급 사이의 차별 유지’ 등으로 이어졌던 문명 발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벽은 권력의 차이를 공간으로 표현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다. 높고 화려한 벽일수록 그 안에 귀한 무엇을 품고 있는 법이다. 그리고 여러 겹의 벽으로 둘러싸일수록,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고귀한 장소라는 의미가 된다. 호화로운 궁궐을 표현할 때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홉 겹의 담장을 통과해야 가장 고귀한 신분인 왕이 있는 곳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벽이 영역을 구분한다면, 문은 구분된 영역 전체를 대표한다. 남대문은 한양을, 광화문은 경복궁을 대표한다. 국보 1호가 남대’문’인 것, 그리고 서울 구도심을 통틀어 광화’문’이라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교의 정문은 학교를 대표한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정문은 등하교 시각을 둘러싼 통제의 상징이자 학생이라는 신분이 강제되기 시작하는 영역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표식이기에, 다른 어떤 건축요소들 보다 강력한 상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인지 입학과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교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벽과 마찬가지로 ‘문’ 또한 건축요소의 하나라는 의미를 넘어 일상 속에서 다양한 상황에 빗대어 널리 비유된다. 보다 친밀한 관계를 허락하는 상황을 ‘마음의 문을 열었다.’라고 표현하고, 시스템의 개방을 두고 ‘문이 열렸다.’라고 말한다. 문을 잠그거나 열기 위한 ‘열쇠’ 또한 다양한 상황에 빗대어 널리 쓰인다. 


‘벽’과 ‘문’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에 이르기까지 비유의 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벽’과 ‘문’으로 대변되는 건축이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얼마나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공간에 관련된 행동의 가능성을 허락받거나 제한받는 것이 얼마나 뼈에 사무친 경험이었는지를,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통하는 공감의 근거가 될 수 있었는지를 또한 깨닫는다. 



다음 조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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