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일 2024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남자가 방금 온 열차마저 떠나보내다’
간발의 차로 놓친 사연은
즉각 연인에게로 전달되었다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름다운 사람은 모두 사연이 있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그럴 것 같아”
사실은 알고 있다
그녀가 예약해 놓은 근사한 공연이
내가 없더라도 완성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서로의 시간표가 되어주지 못했다
휴일과 평일이 따로 없던 그녀의 배차 간격이
잦은 연착을 일으키던 나를 위해
많은 승객을 포기해야만 했던 날들
나는 언제나 세상을 실망시켰고
그녀가 늘 대신해서 사과를 했던 날들
열차 시간마다 수많은 인파가
승차권 확인을 마치고 당당히 개찰구를 통과한다
‘승차 처리가 안된 승차권입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 당연한 일은 없기에
위기 상황에서도 비상레버는 열수조차 없었다
자신의 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하겠지
내가 날 때부터 들어온 짐은 누구의 몫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목적지도 없이 결정된 무임승차
내가 가고 싶던 그곳은
철로가 닿지 않을 것이다
그 역까지 운행하던 기차가 오래전 멈췄다는 기사는 이미 스크랩해 뒀다
“그래도 다음 열차는 꼭 탈게”
그녀는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