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인은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습니다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시작은 말이 통해서, 외모가 맘에 들어서, 호기심이 생겨서, 정복 욕구(?)가 생겨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연애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첫째도, 둘째도 말이라고 한다. 말 한마디에 어색한 관계는 절친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환상의 커플이 환장의 커플이 되기도 하니까. 해도 해도 어색한 말,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사회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연인관계에 있어서 나누는 대화는 빵점짜리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특히 남녀는 말을 꺼내는 사고 회로 자체가 아예 달라서, 다른 종족이라서 더욱더 '말'을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마음속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청산유수처럼 할 수 있다면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와 같은 책이나 수많은 연애 필독서는 존재 따위 하지 않겠지.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이야기다.
나는 원래 내 얘기를 잘 안 해
남하 일언 중천금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자라난 남자들은 '과묵'이라는 태도를 디폴트 값으로 유지하고 산다. 물론 이 중에서는 변이 바이러스가 적용된 남자들도 있어 여자보다도 더 활발하게 수다를 떠는 언니 같은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한 80년대생의 남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태도를 일상 모드로 유지하고 있다. 연인관계에 있어서 침묵이란... 상대방을 온전히 알아갈 기회를 주지 않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오고 가는 수다 속에 서로에 대한 정보가 쌓이게 되면 '너는 이래? 나는 이래'라는 라포(rapport)가 형성돼 좋을 때, 나쁠 때, 슬플 때, 싸울 때 '아 얘는 이럴 때 이렇댔지?'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며 본인의 행동 태세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잘 알아야 오래도록 잘 유지되는 튼튼한 담장 같은 연인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을 좀 더 잘하고 많이 하는 쪽이 상대방의 말을 끌어내면 되지 않을까? 글쎄요, 이거 성공적으로 해보신 분은 저한테 눈높이 교육 좀!
잠깐 좀 볼까?, 앉아봐, 우리 얘기 좀 해
라는 말은 너무나도 무섭다. 그때그때 감정을 풀어내면 좋으련만 우리는 왜 늘 항상 감정이 격해질 때까지 마음속에 할 말을 머금은 뒤에야 상대방한테 통보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실수를 반복할까? '사전에 싸울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잖아?'라는 말은 말도 안 된다. 이전에도 썼지만 싸우지 않는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진 다소 건강하지 않은 관계니까. 불만을 쌓고, 혼자 삭히고 참다가, 대화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소심하게 시도 해보다(고민이 많으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생각보다 소심하다), 끝끝내 안 되겠다 싶어 폭탄을 터트리듯 쏟아내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연인 간의 '주간 마음 보고' 시간을 정해서 가져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회사에서 주간 업무 보고를 작성하며 서로 팀원들 업무를 파악하듯 연인 간에도 중간점검의 시간은 필요하다. 각자 하는 중간점검이 아닌! 둘이 하는 중간점검. 너무 초반부터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라포가 쌓인 이후부터는 이런 관계에 대한 '중간점검'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장기적으로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원하는 건 격려, 여자가 원하는 건 맞장구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반대일 수도 있다)에서는 남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작은 격려, 여자를 편하게 하는 것은 작은 대화라고 한다.
남자와의 대화를 쉽게 하는 마법의 단어는 한 가지: 네가 최고야
여자와의 대화를 쉽게 하는 마법의 단어는 한 가지: 말 따라 하기 혹은 추임세 (헐, 진짜? 헉, 와~)
대화를 함에 있어서 위기가 닥치면 머릿속에 다른 말들은 싹 집어치우고 위의 단어를 내뱉어 보는 건 어떨까? 남자 친구의 말과 행동에는 무조건 '네가 최고야'라는 긍정표현을!, 여자 친구의 찡얼거림엔 에너자이저 배터리 광고의 토끼처럼 무한 추임세를! (하나 둘 다 과용하면 등짝 스매싱각이니, 적당히 알아서 센스 있게)
서로의 단점을 안아주고 채워주는 연애를 합시다
연애를 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있어 마이너스인 점을 채워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인적으론 이효리가 이상순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대답한 말이 좋은 연애, 좋은 연인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답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은 아니고, 나랑 맞는 사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상순 오빠는 일단은 감정 기복이 별로 없어요, 저는 많아요, 그래서 제가 위로 아래로 왔다 갔다 할 때 오빠는 한가운데 있어서 계속 만나게 되어요"
지금 연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대들은 서로의 마이너스를 잘 채워주고 있나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있지는 않나요? 상대방에게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멋지다고 최고라고 칭찬은 해줬나요?
인연을 만나는 과정은 1 in a million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그 관문을 뚫고 연애를 한다면 그 소중한 관계를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런 노력을 안 해왔다면 이제부터라도 해보기를! 벚꽃도 다 졌는데 인간 꽃이라도 서로 바라보면서 행복해야지.
그럼 오늘도 모두가 더 행복하길 바라며,
16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