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년 안에 가보겠습니다, 시집
세상에 무서운 존재는 정말 많다. 귀신, 학기말 성적, 연말 고과 평가, 바퀴벌레, 음식물 쓰레기, 그날마다 찾아오는 여드름! 기타 등등! 하지만 이 중 개 키우는 싱글족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야 네가 개를 키우니까 시집을 못 가는 거야!'라는 편견이다. 김연자 언니가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아무리 외쳐대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돈을 쓸어 모아도 이놈의 편견은 블랙헤드처럼 단단히 박혀 사라지지가 않는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일수록 더욱더... 자고로 위와 같은 명언을 한 사람은 우리 엄마. 엄마 주무실 때 귓속에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란 말을 'JYP'처럼 속삭여줘야 하나 고민이다.
물론 위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렇지만 Korean Marriage Market에서 확실한 노처녀에 접어든 나에게는 저런 말이 크나큰 타격이 되어 힘들게 한다.
와 씨, 쓰면서도 화가 나는 저 말. 정말 억울해서라도 당장 시집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저 어이없는 편견일 뿐이다. 개가 없이도 싱글인 노처녀, 노총각이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하시려고 그러는 거지? 어느 날 (나를 제외하고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친구들이랑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입 모아서 꼽은 이상형은 '개 키우는 싱글족'이었다. 이유인즉슨, 강아지를 혼자 키우는 1인 가구는 정말로 챙기는 게 많기 때문이다. 1인 가구 특성상 청소+요리+빨래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 여기에 +산책 +강아지 관리(목욕, 청소, 미용) +집돌이라는 추가 조건들이 더 붙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와 같은 편견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강아지와 함께 사는 남자는 장가 못 간 데!' 도 성립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님?
외로워야 시집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 키우는 사람들은 딱히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것. 외로움을 안 타고 있으면 사람이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가령, 외로움에 사무쳐 '아무나 일단 사귀어야겠다'라는 선택을 할 일이 개 키우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확률이 더 낮다는 거다.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존재가 있고, 나를 바라보는 귀여운 까만 두 눈이 있는 이상 강아지를 기르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거나, 의존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다. 그리고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쏘다니느라 견주들은 심심할 틈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밖을 돌아다니는 과정 중에 인연을 만나 결혼한 경우도 내 주위에는 종종 있으니 말이다.
강아지를 기르다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서' 강아지를 다른 좋은 곳에 보냈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모순적인 일인가. 가족처럼 지내던 생명체를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고 떠나보내는 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건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사귀는 걸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반려견을 기르는 입장에서도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과 반려견을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실제로 같이 살아가다 보면 강아지를 기르고, 안 기르고의 문제보다도 서로가 달라서 생기는 고민거리와 고통 거리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간 반려견을 키우는 상대방을, 기르자고 하는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줄 수 있는 여자/남자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여자/남자보다는 이해심이 분명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개키우는 싱글족들은 힘내세요. 우린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니까!
어쨌든 간에 엄마의 걱정도 덜어드릴 겸, 나는 1년 안에 시집을 가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엄마도 27살 노처녀때 시집 갔으니까, 나한테 너무 뭐라 할 자격 없음 (TMI)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