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팔이 누나 Dec 28. 2021

개키우면 시집 못 간다

앞으로 1년 안에 가보겠습니다, 시집

세상에 무서운 존재는 정말 많다. 귀신, 학기말 성적, 연말 고과 평가, 바퀴벌레, 음식물 쓰레기, 그날마다 찾아오는 여드름! 기타 등등! 하지만 이 중 개 키우는 싱글족에게 가장 무서운 건, '야 네가 개를 키우니까 시집을 못 가는 거야!'라는 편견이다. 김연자 언니가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아무리 외쳐대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돈을 쓸어 모아도 이놈의 편견은 블랙헤드처럼 단단히 박혀 사라지지가 않는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일수록 더욱더... 자고로 위와 같은 명언을 한 사람은 우리 엄마. 엄마 주무실 때 귓속에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란 말을 'JYP'처럼 속삭여줘야 하나 고민이다.


물론 위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렇지만 Korean Marriage Market에서 확실한 노처녀에 접어든 나에게는 저런 말이 크나큰 타격이 되어 힘들게 한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여자는 시집 못 간 데 


와 씨, 쓰면서도 화가 나는 저 말. 정말 억울해서라도 당장 시집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저 어이없는 편견일 뿐이다. 개가 없이도 싱글인 노처녀, 노총각이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하시려고 그러는 거지? 어느 날 (나를 제외하고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친구들이랑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함께 입 모아서 꼽은 이상형은 '개 키우는 싱글족'이었다. 이유인즉슨, 강아지를 혼자 키우는 1인 가구는 정말로 챙기는 게 많기 때문이다. 1인 가구 특성상 청소+요리+빨래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 여기에 +산책 +강아지 관리(목욕, 청소, 미용) +집돌이라는 추가 조건들이 더 붙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와 같은 편견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강아지와 함께 사는 남자는 장가 못 간 데!' 도 성립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님?

거 쫌 이쁘게좀 봐주시개!!

개 키워서 시집 못 가는 게 아니라, 개 키우고 있어서 아직 안 가는 거일 수도!


외로워야 시집을 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 키우는 사람들은 딱히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것. 외로움을 안 타고 있으면 사람이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가령, 외로움에 사무쳐 '아무나 일단 사귀어야겠다'라는 선택을 할 일이 개 키우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확률이 더 낮다는 거다.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존재가 있고, 나를 바라보는 귀여운 까만 두 눈이 있는 이상 강아지를 기르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거나, 의존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다. 그리고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쏘다니느라 견주들은 심심할 틈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밖을 돌아다니는 과정 중에 인연을 만나 결혼한 경우도 내 주위에는 종종 있으니 말이다.

주말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산책 가는 여자는 견주 뿐! 보라 저 부은 눈을!! ㅋㅋㅋ

이건 정신승리가 아니라, 개 키우고 있어서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강아지를 기르다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서' 강아지를 다른 좋은 곳에 보냈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모순적인 일인가. 가족처럼 지내던 생명체를 또 다른 가족이 생겼다고 떠나보내는 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건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사귀는 걸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반려견을 기르는 입장에서도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과 반려견을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실제로 같이 살아가다 보면 강아지를 기르고, 안 기르고의 문제보다도 서로가 달라서 생기는 고민거리와 고통 거리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간 반려견을 키우는 상대방을, 기르자고 하는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줄 수 있는 여자/남자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여자/남자보다는 이해심이 분명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개키우는 싱글족들은 힘내세요. 우린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니까!


강아지를 기르며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어쨌든 간에 엄마의 걱정도 덜어드릴 겸, 나는 1년 안에 시집을 가기로 결심했다.

참고로 엄마도 27살 노처녀때 시집 갔으니까, 나한테 너무 뭐라 할 자격 없음 (TMI)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켜보자!                                                                                



우리 누나 시집 잘만 갈꺼니께 걱정 붙들어매쇼?


매거진의 이전글 개집에 얹혀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