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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서 Mar 19. 2018

하고 싶은 하나를 위해.

일상

사람들의 일상은 매우 반복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매일매일은 지겨울 수밖에 없다. 뚜렷하고 현실적인 단기 목표가 있어 그것에 매진하여 달려 나갈 때조차 지겨움을 견디기 힘든데,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매일매일은 지루함의 반복이다.


이런 반복이 힘든 것은 어떠한 성취나 즐거움의 순간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금 당장에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미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늘 같은 생활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흐름이 못 견디게 지겨울 때면 종종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그러니까 무려 1999년의 이야기이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무언가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매일같이 함께 술을 마시던 동기들과 선배들 4-5명이 단체로 토익 수업을 들으러 이대 앞의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정말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친구들과 방학에도 자주 보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지겹게 했던 영어시 헌 공부를 대학의 첫 방학에도 또 반복하게 되었다.


어리고 미숙하지만 마냥 즐겁고 신났던 신입생 시절이라 나도 다른 또래들과 비슷하게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12년 동안 반복한 시험공부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 등시 여느 대학생의 삶과 마찬가지로 전날 과음을 하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 수업을 듣고 다시 학교로 걸어오던 길에 나는 동기 여학생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던 중 덥고 짜증이 나서 “나는 대기업에 입사할 생각도 없는데 도대체 왜 영어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너처럼 기업 입사에 목표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시험공부를 또 하고 싶지 않다.”면서 툴툴거렸다. 그 친구에게 했던 말대로 지금은 결국 디자이너로 살고 있고 대기업에 다닌 경험도 없지만, 그 여름날 그 친구가 내게 했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야. 하고 싶은 일 하나 하려면 하기 싫은 일을 열 개는 해야 돼.”


그 말에 투덜대며 되받아치긴 했지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떤 성취나 발전은 짧은 시간 열심히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춘기가 조금 늦었는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공부를 손에서 놓고 놀았던 1년을 만회하기 위해서 2년 동안 노력했지만 원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했었다. 그 날 그 친구의 그 한마디는 불과 반년 전의 내가 마음 깊이 후회하게 된 그 상황을 상기시켰다. 물론 영어시험을 더 잘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대충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아서 영어 공부는 더 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반복적인 과정에 지치고 손을 놔버리고 싶은 순간에는 늘 그 여름날이 떠오른다.


어느 하나 노력 없이, 고민 없이 해결되는 일들이 있었나. 긴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목표로 한 성취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20살에도 알았던 진실이었다. 다만 그 노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 가고자 하는 길의 가치판단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꽃길이었던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졸업 후에 동기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때 그 얘기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 친구에게 그 날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나 그때는 멋있었네?”하며 그 날과 같은 표정으로 웃어넘기던 그 친구가 여전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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