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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25. 2023

망각,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Piazzolla [ Oblivion ]

매일 저녁, 노란 전구 불빛 아래에서 따스한 느낌을 받으며,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선곡.

아무 방해도 없는, 나의 마음과 귀가 시끄럽지 않은, 그저 오로지 나를 위한 이 시간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오늘의 날이 좋아서, 한 줄의 선율이 귀에 맴돌아서, 어젯밤에 스치듯 본 영화가 좋아서, 꿈속의 포근함이 좋아서…


그렇게 하루하루 제각각인 이유들에 의하여 선곡은 매일 바뀌어 가지만, 어쩌다 만난 영혼의 단짝 같은 선곡이 나의 몇 일간의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한다. 내게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반드시 찾아야 하는 존재 같은 영역. 오늘의 내 마음을, 내 감정을 가장 충실히 담아내고 표현하는 유일한 나의 표현 방식. 그저 오늘의 나의 귓속을 채워줄 나만의 콘서트 홀 같은 느낌을 나는 그저 사랑하는 것뿐이다.


한 껏 차분해진 마음을 담아, 오늘의 나에게 피아졸라의 음악을 선곡했다. 무한재생 버튼과 함께.

내가 피아졸라의 이 음악을 사랑하게 된 건 이 문장을 보고 나서다.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망각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생명에는 망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혀 잊히는 것뿐이다.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

Piazzolla [Oblivion]


'망각', 나는 이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내게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트라우마를 나는 그토록 내려놓고 싶었으나, 내려놓아지지 않는 나의 것들에 대하여, 망각이란 단어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재생시간이 다 지나갈 때쯤 되면 아주 조용히, 그리고 잠시, 내게 찾아온 평온함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짧은 세월의 흔적이나, 그 속에 묻은 수많은 감정들이 이 곡의 선율을 타고 나의 마음을 울렸으리라. 지금도 살다가 쓸데없는 오해와 편견으로 나의 본질을 흔들어 놓을 때, 그가 어려움에도 다잡았던 마음의 신념만큼 내 마음을 다듬어 놓기 위함이기도 하고, 마음에 쌓인 번민, 그리고 외로움들은 결국은 흩어져버릴 망각에 불가한 것임을 기억해 내려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그렇게 차분히 홀로 앉아 이 음악 안에 나를 다듬어 놓는다.


Today Playlist.

Piazzolla, 'Obliv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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