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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26. 2024

괜찮은 밤이 되길

옥상달빛 [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 ]

처음으로 음악을 껐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했다.


... 참, 고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종종 켜두던 스피커가 있었다.
꺼지면 으레 찾아오는 적막이 싫어 잠에 들 때까지 열일하던 아이였는데,
몇 년 만에 잠시 쉼을 주었다.


일상을 주고받는 카톡의 대화.

'타닥, 타닥' 고요한 적막을 깨며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얇게 스며드는 그 소리에 시끄러운 속이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나의 세상, 작은 나의 우주... 모든 게 다 길을 잃은 듯 어지러운 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마저도 너무 크게 느껴지는 시끄러운 밤이었다.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이 꿈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으레 꿈꾸고 나면 잊어버리는 게 대부분인데, 유독 꿈인지 기억인지 헷갈리게 너무 선명히 다가왔다.

깊은 상처의 흔적이겠지.


나는 늘 집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이며 문을 열기를 망설였었다.

현관문을 열고, 내딛는 한 걸음에 머리 위에서 탁- 하며 켜질 환한 불을 지나 내가 맞닥뜨릴 것들이 너무 무서웠었다. 언제나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죽일 듯 내려다보는 아빠와 만나지 않기 위해 도망쳐야 했고, 그 공포를 맞서기까지 버텨내야 함이 무서워 컴컴한 집 앞 어둠 앞에서 주눅 들어버리곤 했던 두려움 많은 어린아이. 나를 무섭게 하는 그것들을 미친듯이 미워할 자유조차도 없는 내 삶에 나는 내 자신만 탓하고 또 탓하며 이 모든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기다렸었다. 마음의 상처가 자리를 잡고 아물길 바랬지만, 거실 귀퉁이에 이불을 둘둘 말고 피곤에 쓰러져 잠을 청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삼켜내야 했던 그 때를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오늘 하루 어땠냐며 물어주길,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길 마음으로만 바라며 서럽게 버텨왔던 나의 밤을...


함께 있지만 혼자였던 삶. '같이'가 아니라 그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둘러쌓인 날들.

늘 외롭고 쓸쓸한 기분으로 끌려가듯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난 너무 싫었었다.

쓸쓸하고 겁나게 하는 것들을 버텨내기 위해 문 앞에 멈춰 서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참아내야 했던...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쳐 괜찮아지겠다고 얼마나 다짐해 왔는지 모른다.

살고 싶어 잠시 멀어져야 했던 나의 선택. 무심하게 쿨한 척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 싶었다.

그래서 이젠 다 괜찮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마음의 행복감.

행복해지니, 또 다시 괜찮지 않은 밤을 보내는 나를 마주하고 있다.

행복해지면 깨질까, 잃어버릴까... 두려운 감정과 마주하며 괜찮다 여러 번 스스로를 다독여야 겨우 살아내고 잠에 들 수 있는 나를 오늘은 그냥 기록하며 다독이고 있다. 괜찮지 않은 밤을 보내더라도 또 시간이 흘러, 행복이 상처의 크기를 완전히 덮어주는 때가 다가오면, 이 밤이 꽤나 괜찮은 밤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위로한다. 언젠간, 괜찮은 밤이 되길...


Today Playlist.

옥상달빛,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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