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봄비 내리던 날, 아파트 화단에서 동백이 지는 일을 보았다. 뚝뚝, 핏방울 마냥, 한 잎, 한 잎, 땅을 물들이다가 한순간에 모가지가 통째로 떨어지는…. 그들은 이미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숨 몰아 쉬는 한 세상 미련이 없다는 듯.
얼마 전, 오래된 사람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지냈냐며 묻다가도 수년의 간극만큼 대화가 금세 어색해져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다가 귀 밑이 발개지도록 웃기만 했다. 살아 있으니까 만나게 되는구나, 인연은 정직하다. J는 두 마디로 만남을 정리해 놓고는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래, 인연은 정직하기도 하지, 사람은 변해도 만나 지게 되는 업이 있는 거겠지. 지금이 아니면 후에라도 우리 사이 다 하겠지. 웃으렴, 웃자꾸나.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 만남은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난 이는 반드시 돌아오며,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동백의 마을에 꽃이 진다. 봄에 만나 봄에 헤어지고 봄이 오면 다시 온단다. 그렇게 꽃 피다가 인연을 다 하잔다. 처연하지만 눈물 나지 않게, 영원하지만 찰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