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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락 Apr 13. 2020

화중야담花中夜談

산문

화중야담花中夜談





때는, 신묘년 춘 사월 자시 경. 묘정猫亭에서 음주가락에 걸터앉은 차에, 봄꽃이 때깔도 고우니 달빛 아래에서 화경花景에 들어 봄이 어떻겠소, 라고 썰說을 개진하였더니, 게슴츠레한 안광을 발하던 甲남乙녀가 이구동성으로 옳다쿠나 하길래, 즉시, 甲둘乙일은 자동가마에 올라, 금일, 이 밤의 끝은 연지에서 잡아봄이 마땅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뢰니, 미리부터 심금에는 춘색이 동하야 야밤의 작당이 격하게 유쾌하였도다.

하여, 일행은 연지전방에 들러 애주처자, 乙녀의 권유에 따라 게으른 주당들을 위해 출시된  소맥보탬주, 오비양조가의 가스래두 댓 병의 삯을 치르고, 연지못이 바라다보이는 풀밭에 자리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오호라, 무릉이 따로 없도다. 고고한 월영月影에 스며든 꽃색은 새색시의 홍안처럼 수줍고, 뿜어 나오듯 흩어진 가지들은 저마다 속살을 열어 춘정을 다투다가도 음흉한 춘풍의 눈빛 한 번에 몸을 떨며 재잘거리니, 이보다 어여쁘고 귀가 좋은 수다가 어디 있으리오. 행여, 화색이 정색할까, 서둘러 봇짐을 풀어 잔을 나누니, 비워지는 것은 술이 아니라 깊은 시름이요, 채워지는 것은 술이 아니라 깊은 다정이라. 술맛도 혼용의 절묘가 지락至樂에 가까우니, 과연 술 좀 아는 처자로세.

한 식경이 지나 술잔이 돌던 中, 甲남의 의복이 조촐한 탓에, 혹여, 한기가 들지 않을까, 자네 춥지 않은가, 라며 걱정을 하였더니, 소인은 젊어서 문제 될 것이 없으니 괘념치 마소서 하니, 청춘의 용기는 가상 타만 봄꽃은 오래 두고 보아야 아쉬움이 덜한 법, 정말 괜찮은가, 하고 다시 물었더니, 甲남은 묵묵히 팔뚝을 들어 이두박근의 알통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허허, 젊은이의 강골이 내 부럽긴 하네만 추위가 근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겐가. 바다 건너 먼 쌀나라에 사는 등빨 사나운 아날도 수발제내거도 알몸으로 왔다가 종내는 추위에 견디지 못해 용광로로 투신하였거늘.

내 비록 강호를 떠나 일 년 여를 초야에 묻혀 가난을 버텨 왔으나, 설한雪寒의 기운에도 나막신만 신고 다니는 남산골 딸깍발이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는지라, 후학의 애처로움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정의를 그르치는 일이요, 아닌 걸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공명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던가. 알통청년이 부러 떨지 않으려는 모양에 심사心思만 어지러 우이, 아아, 내 마음도 추우이, 난 안감이 두툼한 내복이 있으니 자넨 이 겉옷을 좀 걸치게나, 하며 겉옷을 탈의하여 상반신을 보保할 것을 권하였더니,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그래 주시겠나이까, 하며 냅다 착의하였음에도, 내 눈빛이 섭섭지 아니하였던 것은, 자네라면 마땅히 그 옷을 도로 벗어 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네, 라는 들리지 않는 속말을 청년은 알아들었기 때문이로다. 실은 나도 떨렸도다.

자고로 군자는 석 잔의 술을 마주 보고 마시면 벗이 성립된다 하여 사람을 벗함에서 천하에 술만 한 것이 없다 하였고, 술과 벗은 봄에 친親하야 그 맛이 오래간다 하였다. 삼인三人이 벗하여 술을 대작하는 것을 한작閑酌이라 하여 한가閑暇로움을 칭하였으니, 대저, 한가는 마음에서 오는 법, 봄꽃이 수려함은 마음이 수려한 탓이요, 달빛이 고요함은 마음이 고요한 탓이요, 못 물결의 잔잔함은 마음이 잔잔한 탓이라. 또한, 술에 취한다 함은 벗의 마음에 취하는 것이니, 무릇 우리가 선계仙界에서 놀았다 하여도 참말이 될 것임은 자명하노라.

일찍이, 세수를 누리다가 작금은 천수를 누리고 계신 장자도인께서는, 봄날 꽃밭에서 오수를 즐기시다가 자신이 나비가 되어 꽃과 꽃 사이를 희희낙락 날아다니시는 꿈을 꾸다 깨시어 어리둥절하시며,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내가 되어 낮잠을 즐기신 건지, 모르겠다며, 오락가락하시다가 '호접지몽'이라 명명하시어 곤충에도 인격을 부여하는 대인배의 위업을 떨치셨도다. 이에, 금번 화경작당은 꽃이 술을 마신 건지, 사람이 술을 마신 건지, 주접酒接을 하였는지, 주접을 떨었는지, 헤아리지 말고, 여튼 '주접지몽'이라 명명하여도 손색이 없음은 물론일 텐데, 어찌하여, 이 시대의 민초가객 치환君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니까 구강 좀 다 물라고 위엄을 보이는가. 정녕, 꽃이 사람 되고 사람이 꽃이 되면 안 되는 게로구나. 아찔타, 봄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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