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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락 Mar 20. 2020

남자라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산문

남자라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H와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야만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였다면, 몸이 멀어져도 마음은 절박하였을 터, 절절한 애정을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거나, 언제 어느 때 전화를 해야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근면성이 서로의 마음을 더 달아오르게 하였을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하는 파친코에서 동료로 만난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우리는 하늘이 맺어준 사랑이라고 우쭐하게 만들고, 업무를 마치면 매운맛이 일품이었던 바비큐 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속닥거릴 수 있었던 것도 거주지의 안정감이 주는 당연한 권리였음은 자명하다. H의 숙부의 집  낡은 창고에서 술 취한 척 입을 맞춘 후, 쿵쾅거리는 가슴과는 별개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도 거리의 경계가 무색한 서로 간의 믿음이었으리라. 그런 그녀가 갔다. 4년 만에 떠났다. 나와의 만남을 반대하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곳으로.


H에게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맞선을 볼 거라 한다. 맞선이라는 의미사이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 서로 잘 알고 있는 탓에 더는 묻지 않았다.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나, 잘해보라.”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밀양으로 돌아간 후, 나는 H와의 이별을 직감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우리끼리만 통하는 감정의 기류는 한 번의 통화로 의도를 눈치 채고, 세 번의 통화는 확인 절차에 불과했다. 사랑에 있어서,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한 번은 원치 않는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고, 합리적이고 영악하게 나름의 방어 진지를 구축하였지만, 너 아니어도 여자는 많다’는 오기 서늘한 봄바람을 데워주고 있었다.


4월이었고, 한낮이었다.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는 순간, H임을 직감했다.


“뭐 해?”
“밥 먹고 있다. 왜?”

숟가락에 뜬 밥알들이 침묵만큼 어색하고 무겁다.

“잘 사나?”
“그냥 그래.”
“오빠, 나 없이 어떻게 살아….”

H가 울먹였다.

“으응….”

왈칵, 느닷없이 터지는 눈물이라니….


그녀가 울고, 나도 울었다. 이렇게 목 놓아 울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엉엉. 꺽꺽. 쥐똥 냄새가 가득한 창고에서 나누었던 열병 같은 혀들이 삐져나오고, 가늘고 흰 그녀의 손가락들이 봄날 꽃가지처럼 내 뺨을 어루만졌다. 눈길이 마주치면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어 주었내 여자가 단박에 터졌다가 사나운 바람의 발길질에 한 순간에 사라지는 꽃잎마냥 저편 하늘로 하늘로 아득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절규 하듯 뱉어낸 안녕의 말들은 왜 그렇게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건지…. 스위치 백 철로(기차가 비탈길을 통과하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지그재그로 반복하는 선로)에서 마지막 괴성을 내지르며 가파른 고갯길을 막 오르려는 기차처럼 우리는 살기 위해 울었고, 헤어지기 위해 울었고, 사랑하기 위해 울었다.


 남자라면 이별할 때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너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더는 너를 붙잡을 수 없는 노랫말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남자는 울어야 한다. 너만 사랑한 것처럼, 다시는 사랑 못할 사람처럼.


후련했을 것이다. H에게는 케케묵은 애인의 굴레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절차이며, 죄책감을 털어버리기 위한 고백성사가 필요했을 터였다. 나는 신부가 되었고, 예전의 남자가 되었으며,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되는 그놈, 아니면 그 사람이 되을라나. 나는 모르겠다. 그녀는 나에게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였다. 과거가 되어버린 남자에게 해 줄 말은 딱히 그 말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 탓에 더 서럽게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그날을 떠올리면 눈을 감는다. 라디오를 듣다가 영화 봄날은 간다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의 대사를 두고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사람이 변한다.”스님이 말을 다. 그럴듯했지만, 사람이 변하면 이별도 정당해질까 봐서 불편했다. 그 말도 부처를 수행하는 스님이 말씀인지라 영 마뜩잖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누구누구의 다짐을 믿어 준다. 사랑이 변하든, 사람이 변하든, 내가 아는 사랑은 변하면 안 된다는 고집이 생겼다. 둘이 함께 있는 것, 하는 것들이 달콤하고 즐겁기에 사랑한다는 건 사랑이 아니다. 니까, 나는 너였기 때문에 사랑이었다. 날의  서러운 눈물은 혹독한 바람을 견디지 못한 어린 복사꽃을 위한 헌신이자, 정당성이었다고 치자. 긴 시간을 한바탕 울음으로 대신 하여서 다행이다. 온몸으로 껴안아 온몸으로 울었으니, 그것으로 좋았다. 


사랑이여, 행복이 깃든 시간의 곳에는 슬픔도 함께 깃들리니, 정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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