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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an 09. 2023

회사에 선후배란 것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톱니바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 잘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우리나라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졸업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 '졸업식 노래(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는 총 3절로 이루어져 있다. 졸업을 맞이하는 선배에게 보내는 후배들의 축하와 열심히 공부해서 언니 뒤를 따르겠다는 다짐이 1절. 학교를 떠나는 선배들의 소회와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 되겠다는 다짐이 2절. 마지막으로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언젠가 다시 만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를 함께 짊어지고 나가자는 내용이 3절이다. 즉 졸업식이란 주어진 일(業)을 끝내는(卒) 것만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가게 될(新入) 곳에서의 건승을 기원하고 다짐하는 행사이기도 한 것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봄이 되면 선배였던 이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진출해서 다시 후배가 될 것이고, 후배였던 이들은 선배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며 본인들이 선배가 될 것이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데. 그러면 이렇게 헤어진 냇물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바다'는 어디일까. 넓게 보면 사회, 좁게 보면 일터가 될 것이다. 나 같은 직장인에게 라면 졸업하며 헤어진 선후배와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은 회사인 셈이다. 이 바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새로운 바다에서 만난 우리는 졸업식장에서 불렀던 그 노랫말처럼 정말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정감 어린 사이일까?


 음. 글쎄올시다.




 요즘 세상이 변해가는 방향을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선후배 관계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는 연공급제, 그러니까 연공서열의 철폐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도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며 애자일이니 DevOps니 하는 새로운 조직구조나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추세다.


  이 '새로운 방식의 일하는 문화'들은 - 깊이 들여다보면 물론 차이점이 있지만 - 기본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기능 단위로 사람들이 모여 평등하고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일하는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 같은 기능단위 인력이 모여 평등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며 일을 하는 것이다. 조직의 크기에 따라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인원이 2명 이상이 될 수도, 한 명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기본 구조는 이렇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조직에 속하게 되는데, 여기에 '앞에서 끌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는' 선후배로서의 기능이나 역할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회 분위기에서 선배는 후배를 챙기고, 도와주라는 덕목을 요구받는다. 아무리 후배에 비해 경험치가 쌓인 선배라고 하지만 후배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자기의 시간을 쪼개야 한다. 그러면 그만큼 자기 일에는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절대적이니까. 그런데 앞으로 평가는 연공서열과 관계없이 실력과 성과 위주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 후배가 고민을 해결하는데 들어간 내 조언과 그 조언을 위해 내가 한 고민은 나의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이 후배를 왜 도아주어야 하지? 그 시간에 내 일을 더 해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더 내는 게 좋은 것 아닌가?'


 후배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선배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일은 내가 더 잘하는 것 같고 - 새로 나온 프로그램 쓰면 금방인데 구닥다리 방식으로 하루 종일 저 일만 하면서 생색은 엄청 낸다. - 선배라는 이유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내게 떠넘긴다. 그런데 앞으로 평가는 연공서열과 관계없이 실력과 성과 위주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반복). 선배의 귀찮은 일을 대신 해결해 준 내 노력은 나의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왜 이 선배를 따라야 하지? 그 시간에 내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성과를 더 내는 게 좋은 것 아닌가?'


 연말에 팀이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누구도 공용 물품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고? 이 조직에 속하게 되면서 요구받은 기능 중에 '공용 물품을 정리하라.'는 역할은 누구에게도 명시적으로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데, 그러면 이 일은 누가 해야 할까. 막내가? 프로젝트 리더가? 리더가 누군가에게 지시했을 때 그 사람이 "제가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서는 프로젝트 리더도 상사가 아니라 평등한 동료라는데 "님은 왜 안 하세요?"라고 물어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회사가 새로운 방식의 일하는 문화를 도입하면서 우리 회사에도 조직원들끼리 이런 갈등과 고민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선배, 후배, 리더 할 것 없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우리 회사처럼 상대적으로 일 하는 방식이나 조직문화 대응에 그리 빠르지 않은 곳마저도 이럴진대 이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열성적이었던 회사들은 어떨지 얼추 상상이 된다.


 내게 도움 되는 것 없으니 요구하지도 마.
그래? 네가 하지 않으니 나도 하지 않겠어.
일?
구글에서 배우면 되니까 선배 행세하지 마.
이것도 못하면서 무슨 선배야?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러면 너도 회사 프로세스가 어떤지
담당자가 누군지
내 노하우는 뭔지 물어보지 마.
네 일 내 일 칼같이 나누자.
내가 책임져 줄거란 생각은 하지도 마.
자, 됐지?



아니. 되지 않았다.

부디 내 상상이 너무 극단적이었기를.




 수평 문화도 좋고 새로운 일하는 방식도 다 좋다. 당장 나부터도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성과를 챙겨가는 - 것처럼 보이던 - 사람을 보면 배가 아팠으니까. 하지만 바로 위에 했던 극단적인 상상처럼 서로가 서로를 돕고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다면 그 조직은 절대로 잘 굴러갈 리 없다.


 이런 극단을 막기 위해 동료들 간에 서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넣어 그 사람이 조직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등을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평가항목에 있는 정도만 겨우 맞추고 말 뿐이다. 동료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평등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까? 존댓말이야 쓰면 되지. 그게 뭐가 어렵다고. 선배로서 후배를 잘 챙기고 후배로서 선배를 잘 따랐습니까? 뭐래. 평가 항목에 그런 것 없는데요?


 세상 모든 일이 수학 정답 나오듯 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그 와중에 내 것과 네 것을 나누고 나누다 보면 마침내 어딘가에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나머지 영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용 짐은 누가 포장해야 할까? 커피 주문은 누가 받아야 할까? 같은 것들은 이 '나머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나머지'라는 것은 말로도 글로도 서술하기 애매한 것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관계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고 수평적인 관계에도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방식이든 조직 문화든 수평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것을 그대로 이식할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현지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선후배 사이를 추구하는, 뭐 그런 노력들.


 그런데 요즘은 후배로서의 덕목을 바라면 꼰대에 틀딱이고, 선배로서의 도움을 바라면 찍찍이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조만간 선후배 관계는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될 것만 같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오롯이 개인 대 개인으로 목적과 필요, 그리고 기능에 의해서만 관계 맺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라온 내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퍽이나 어색하고 삭막하다.


 그런 날이 올까 두려워하는 것은 라떼부터 찾게 되는 선배의 고루함인가, 이제 막 후배 티를 벗은 신입 선배로서의 아쉬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는 후배의 불평인가. 나라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위 사람과 최대한 모나지 않게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그 노력이 결국 내 회사 생활을 덜 삭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네 직장이 덜 삭막하도록, 인사팀이 치열하게 고민해 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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