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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Feb 11. 2023

<피지컬100>에서 피지컬 말고 다른 것이 보인다

보고, 쓰다.

 요즘 매우 핫한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을 보았다. 첫 화를 보고 난 뒤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린 끝에, 결국 공개된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야 말았다.


 <피지컬: 100>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인간의 육체는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감탄이었다. 누구는 근력을 내는데 특화되어 있고 누구는 순발력, 누구는 지구력.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육체를 만들어 온 참가자들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그 몸을 만들기까지 들였을 노력을 생각하면 언뜻 경건함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이들이 모여 각자의 피지컬을 겨루며 나누는 강렬한 몸의 대화! <피지컬: 100>의 재미 요소를 찾으라면 누가 뭐라 해도 이런 점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정신까지 직장인이 되어버린 나는 이 박진감 넘치는 몸의 대화 너머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길을 가다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상품이나 브랜드를 마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 저거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마는 직장인의 슬픈 현실이랄까.



※ 이 아래부터는 <피지컬: 100>의 스포일러가 일부 섞여 있습니다... 만 기왕 오신 김에 글은 마저 읽고 가셔요. 혹시 아나요, 제 감상을 보고 난 뒤에 보시면 더 재미있을지?






 <피지컬: 100>을 보면서 느꼈던 '그 너머의 것' 중 첫 번째는 제작진의 영리함이다.

 단순히 '힘'으로 상징되는 '근력'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만든 다양한 퀘스트들을 보면서 제작진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절로 알게 된다. 사전 퀘스트로 진행되었던 '매달리기'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제작진은 참가자들의 등장 장면에서 몸집이 크고 터질듯한 근육을 과시하는 이들에게 포커스를 집중하다가 매달리기라는 퀘스트를 공개함으로써 반전을 던진다. 주목을 받던 빅맨들은 퀘스트를 시작하자마자 탈락하고,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의 체조선수나 산악구조대원이 높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은 "피지컬은 단순히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기획의도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제작진은 이런 영리한 구성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구구절절하게 말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여줘야' 한다.


출처 : ⓒ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두 번째는 기본의 중요함이다.

 참가자들 중 힘으로는 최하위권에 속할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여성 참가자가 있었다. 발판을 이용해 흔들 다리를 완성하고, 그 다리를 건너 모래를 날라야 하는 퀘스트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다리 만들기였다. 다른 팀은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를 '빨리'만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빨리 만들어진 다리는 그만큼 엉성했고, 게임 도중에 발판이 빠지면서 군데군데 구멍이 생겨 중간에 보수를 하느라 시간이 더 지연되고 말았다.


 그러나 스턴트 배우인 그녀는 '승부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다리를 '빨리'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발판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설치해서 만든 그녀의 다리는 상대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훨씬 튼튼했고, 그 덕분에 팀원들은 다리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며 모래를 나를 수 있었다. 결국 그녀가 만든 다리가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눈앞의 목표에 시선을 뺴앗겨 기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장면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이 빛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각자가 그 역할을 잘 해냈을 때 팀이 승리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가 증명되는 것을 보며 느낀 카타르시스는 덤이었다.


출처 : ⓒ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마지막은 성공 경험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1.5톤짜리 배를 끌어야 하는 퀘스트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에피소드 기준으로 이 배 끌기 퀘스트를 수행한 것은 총 2개 팀이다. 추성훈/조진형 조가 한 팀(이하 A팀), 윤성빈/마선호 조가 한 팀(이하 B팀). 이 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리적인 힘, 즉 근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A팀보다는 B팀의 역량이 더 우수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모래사장에 흩어져 있던 오크통을 배에 싣고 배를 끌기 시작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비교하면 B팀이 A팀보다 더 빨랐다. 게다가 A팀과 달리 B팀은 출발지에 놓여 있던 배를 끌어 움직이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2톤에 달하는 배 밑면이 모두 땅에 닿아있어 마찰력이 컸을 텐데도 그것을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B팀은 이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배를 계속 '끌었다'. 출발지에서도, 통나무를 이용하는 모래사장에서도, 마지막 정박지의 경사로에서도 B조가 선택한 방법은 오로지 선수에 묶인 줄을 열심히, 다 함께 '끄는' 것이었다.


 반면에 A팀은 출발지에 놓인 배를 움직이는 것에 실패했다. 그들의 힘으로는 2톤짜리 배의 무게를, 그리고 마찰력을 이겨낼 수 없던 것이다.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한 A팀은 배 양 옆으로 난 노를 하나씩 맡아 살짝이나마 들어서 미는 방법으로 이 실패를 해결했다. 통나무 구간에서는 밀고, 정박지의 경사 구간에서는 일부는 선수의 줄을 끌고 일부는 뒤에서 배를 미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직전의 순간에 A팀은 3~4명만 줄을 끌고 있고, B팀은 거의 전원이 줄을 끌고 있는 모습이 두 팀이 선택한 전략의 차이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A조는 B조보다 빠른 속도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실패를 겪으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던 A조가, 힘도 더 세고 하나의 성공경험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B조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분에서, 슬프게도 회사를 떠올렸다.


출처 : ⓒ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회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종종 있다. 딱히 실패를 경험한 적 없이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일을 밀어붙인 조직보다 이런저런 실패를 겪으며 다양한 시도를 한 조직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 처음의 성공경험 덕분에 그 방법이 '통한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더 아쉬운 성과를 내는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이 성공을 한 명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조직 모두가 함께 경험했을 때가 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조직원 모두 같은 성공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다른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큰 성공을 위해서는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대로라 할지라도, '세상'은 그대로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 '우리의 역량'또한 그대로가 아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성공했던 방법이라도, 설령 그 방법을 한 번 더 시도했을 때 유사한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그 방법이 언제까지나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나 성공으로 이어지는 불변의 공식은 없는 셈이다. 그런 것이 있으면 달달달 외우기라도 할 텐데. 세상은 끊임없는 자기 검증을 원하는 것만 같다.






 회사 생각을 하기 싫어서 보기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또 회사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뼛속까지 직장인이 된 것 같아 슬프기도 하지만... 다음엔 어디서 무엇을 보고 회사 생각을 하게 될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생각한 것을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빨리 <피지컬: 100>의 다음 에피소드가 공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무조건 칼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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