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AI가 모든 것을 답해주는 시대가 왔다'며 하나같이 열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내놓는 이 신기술은 사람들의 관심도에 비례해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회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누군가는 놀라울 정도로 업무 효율을 높였다더라, 어느 부서에서는 이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유출의 위험이 있는 데이터를 함부로 챗 GPT에 학습시키지 말라'는 회사 차원의 가이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챗 GPT의 파급력은 이처럼 어마어마했다.
그야말로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기세의 챗 GPT지만, 이것은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영국 해협을 걸어서 건넌 세계 기록은?"이라는 질문에 - 물 위를 걸을 수 없으니 기록이 있을 리 없는데도 - 자연스럽게 "xx 시간 xx 분입니다."라고 거짓 대답을 하는 등 아직 다양한 오류가 남아있다고 한다. 때문에 챗 GPT를 사용해 본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문가의 의견을 더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무엇이 정답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잘하는 것이다.
- 엣지 있는 답변을 받고 싶으면 엣지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 질문의 깊이가 곧 답의 깊이다.
이런 말을 들었으니 지성인으로서 아무 질문이나 던질 수는 없는 법. 이제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답을 받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챗 GPT 말고 사람한테 질문할 때도 저렇게 고민하고 물어봐 주면 좋을 텐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질문이 어려운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 뭐라도 하나 질문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인가?',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겠지?', '나만 못 알아듣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면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들이 입을 무겁게 만든다. 이런 감정들을 한마디로 단순화해 보자면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인 셈인데, 이를 극복하려면 그냥 질문을 많이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뿐이야. 이 질문을 한다고 쪽팔릴 것 전혀 없어.' 같이 머리로는 아는 그것을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질문을 하지 않아도 어려운 곳이므로, 회사에서 질문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장소나 관계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어려움 + 어려움'이 아니라 '어려움 x 어려움'이랄까. 심지어 회사에서는 질문이라는 행위를 질문을 받는 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그러다 보면 회의나 보고 자리에서 상대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매너가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자리가 끝난 후에 따로 묻고 궁금증이 잘 해결되면 좋지만, 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그 질문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을 경우에는 보고 자리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잘 넘어갔던 안건이 모두 뒤짚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질문이 아니라 답을 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 당장 선생님의 "질문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반응한 적이 많은지 "오늘 4일이니까 14번이 대답해 봐."라는 말에 반응한 적이 많은지만 떠올려 봐도 명확하다. - 질문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답하는 능력으로는 AI를 이길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므로 질문을 잘하는 것이 꼭 필요해졌다. 앞에서 든 예시처럼 질문을 미뤘다가 모든 것이 뒤짚히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질문은 꼭 해야 한다. 특히나 회사에서, 사람에게 하는 질문은 챗 GPT에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챗 GPT에겐 아무리 질문을 해도 그것을 공격으로 느끼거나 같은 질문을 한다고 화내지 않지만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질문을 해야 잘하는 것일까.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된 '좋은 질문을 이루는 요소'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를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끔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라 막연한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질문은 결국 답을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정답을 위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어내려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알고 싶은지 명확해야 한다. 막연한 질문에는 막연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두 번째는 질문에 자기 생각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에 질문자의 생각이 담기면 답변에도 답변자의 생각이 담겨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글쎄?"라는 답이 자연스럽지만,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으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답이 따라 나온다. 질문에 내 생각이 담기면 상대에게 더 좋은 답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도 남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의 있게 물어보고 상대의 답을 경청하는 것이다. 챗 GPT는 우리에게 "예의를 갖추어 질문하십시오 휴먼."이라고 하지도,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서 들으십시오 휴먼."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대답해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네?" 라면서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상대가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경우를 다 고려해야 한다. 굳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예의는 기본이다. 사실 앞의 두 개를 잘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그래도 이것만 잘하면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꽤 있다.
사내 공모를 통해 조직 이동을 고려 중인 지인이 메신저로 "어디 갈만한 좋은 팀 없나요?"라는 질문을 보내왔다. 당장 조직을 옮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내 공모에 어느 팀이 올라왔는지도 몰랐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xx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궁금한데 혹시 아시나요?"라거나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혹시 그런 일을 하는 팀을 아시나요?"라고 물어봤다면? 그 팀에 대해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서라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질문을 잘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람이 아니라 챗 GPT에게도 하지 않을 질문을, 일이 아니라 스무고개에서도 하지 않을 태도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원하는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말귀도 못 알아듣고 다른 소리를 한다.'며 답답해하곤 한다. 혹시 주위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다르게 해 보라고 말해주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회사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