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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y 07. 2023

행복해서 퇴사하고 싶어진 날

 휴무일이었지만 챙겨야 할 업무가 있어 아침에 2시간 정도 재택근무를 했다. 그동안 아내는 요즘 재미를 붙인 베이킹을 했고, 아내의 빵이 완성되는 시점과 내 근무가 마무리된 시점이 잘 맞은 덕분에 함께 빵과 커피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집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 여의도로 향했다. 바람은 선선했고 햇살은 따스했고 하늘은 맑았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산 뒤에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지난 일주일간 찌들었던 마음을 펼쳐 상쾌하게 일광건조 했다. 


 벤치에 앉은 김에 가져간 책을 보다가 배가 고파 식사를 하러 갔다. 라멘 집이었는데 음식이 무척 맛있었다. 처음 가 본 음식점에서 성공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밖이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다시 책을 보다가. 책이 주는 재미와 창 밖 풍경이 주는 여유를 느끼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평소에 가보려고 알아두기만 했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도 자리가 있어서 별도의 웨이팅도 없이 편히 식사를 하고 올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백화점에 들러 낮에 봐두었던 와인 한 병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평소 같았으면 아직도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을 시간. 그에 비하면 오늘은 너무나도 충만하고 여유로운 하루였다. 아이유의 노래 속 가사인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하루였다. 만족스러웠고 행복해서 하루하루를 오늘처럼만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문득 퇴사가 하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 즉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과 든든한 경제력이 생겼으니 마음을 비우고 취미로 회사를 다니겠다는 사람. 직장이라는 소속감이 필요해서인지 직장 동료라는 사람들이 필요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뭐라도 하면서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다는 상황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후자의 답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복권에 당첨될 일도 없는데 그런 상상을 해서 뭐 하나, 어차피 계속 다니게 될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이루어질 리 없는 상상 속에서라도 얼른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 것이다. 


 너무  충만하고 행복해서 퇴사가 하고 싶어 지다니. 이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그동안은 일이나 사람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이런 타이밍에 이런 느낌으로도 올 수 있구나 - 하는 깨달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결론은 같지만 그동안엔 "아 모르겠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였다면 오늘의 감정은 "퇴사 후의 삶을 잘 준비해서 회사와 빠른 시일 내에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에 가까웠다. 어느 이별이 이토록 달콤할 수 있을까. 나는 또 아이유의 노랫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회사 생활은 힘들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 퇴근하고 나면 잔뜩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정도다. 어디 회사뿐인가. 공부도 힘들고 장사도 힘들고 먹고살기는 다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친 몸을 끌고 일어나 운동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한다. 이직을 하거나 자격증을 딴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오늘 하루가 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친 몸을 움직일 동력은 어디에서 난 걸까. 


 평소에는 그들이 남들보다, 특히 나보다 강한 의지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하루를 겪어보니 어쩌면 그들은 일상에서 자유로워진 후 본인이 살고 싶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 덕분에 그렇게 힘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해서보다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 더 기운도 날 테니까. 더 행복할 그 순간을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라도 움직이는 것이다. 아, 또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일이 되고 연휴가 끝나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이 깨달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정성스레 오늘 한 생각을 적어놓고 자주 돌이켜봐야겠다. 일을 그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나는 퇴사가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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